폭염 태풍으로 힘겨웠던 여름가고
가슴 저미는 아름다운 추억 간직한
인생이 깊어지고 종교를 찾는 계절
9월에는 깊은 사색과 시를 쓰리라

구월이다. 해마다 맞아서 매년 새로운 9월이다. 폭염과 여름 태풍이 걱정돼 경북 문경 산골 암자에 있는 스님께 안부 전화를 했다. 오랜만에 듣는 스님의 음성은 언제나처럼 반가운 음성이다. 작년 이맘때 스님은 절마당에 물을 뿌리다가 전화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폭염으로 산골에 물이 귀해 고생했다는 얘기부터 던지더니, 또다시 태풍 소식에 속된 말로 웬 나라가 이리 난리법석을 떠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뿐인가. 부처님을 받드는 일조차 절밥 먹는 이들 끼리 생각이 달라 벌어지는 종단 일에 헛웃음이 난다고 했다. 산중에서 홀로 지내는 스님도 지난 여름 폭염과 태풍은 중요한 화제였다. 산 속 스님도 세속 우리도 사는 일은 언제나 그렇듯 일상의 연속이다. 그 스님은 졸시 ‘흰소. 9’에 등장하는 스님이다.

“산은 산이다// 백년여관도 보인다/ 시냇가에 심은 교회도 보이고/ 고려수산도 지척이다// 가까이 호남탕 굴뚝도 보인다/ 인근 초등학교 교정에서 뛰노는/ 아이들 소리가/ 삼천대천세계를 울린다./ 한때는 처녀였고/ 한때는 어머니였던/ 연지암 비구니 스님이 절마당에/ 물을 뿌리고 있다.// 물은 물이다.” <흰소 9>전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도 떠오른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시고/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고, 그래서 이제 들에다 많은 바람을 풀어놓으라는 릴케의 간절한 시적 희망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올해 2018년 여름을 산 우리들에게 너무 낭만적 울림이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고, 짙은 포도주의 완성을 위해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원한다. 그래도 릴케의 시는 우리들 가슴 속을 맴돈다. 릴케의 시는 경건하다. 읽는 이로 하여금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 인생의 잠언같은 울림을 주는 시들은 언제나 먼 지평처럼 아득하다. 감성이 충만한 젊은 날과 달리 나이가 들면 인생이 깊어지고 종교가 솔깃해진다. 

9월에는 괜스레 사람들과 풍경들이 투명하게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일까. 햇살이 투명하게 비추고. 먼산도 가까이 이마에 와 닿는 이즈음, 낯 모르는 이들 조차 반갑다. 유명화가들의 그림전이 열리는 갤러리의 커피와 멋진 음악회, 가난한 이들을 위한 연극조차 기쁨에 넘친다. 하늘이 점점 더 높아지고, 세상의 모든 고통과 고뇌조차 달콤하다. 

스님과의 전화통화가 끝나자 때마침 아름다운 멜로디가 귓전을 맴돈다. 샹송풍의 슬프면서 감미로운 발라드곡 <9월의 노래>. 이 노래를 부른 가수 패티김도 자신의 평생 가수 생활에서 부른 수많은 히트곡 중 가장 애정이 가는 곡이라고 한 바 있다. 9월은 누구나 저마다 가슴 저미는 추억과 아름다움들이 마음 깊이 괴어올 것이다. 어느 시인은 “젊은 날 9월이 오면 사색이 깊어지고 눈을 들어 먼 산을 바라보는 일이 잦아지면서, 그야말로 ‘많은’ 시를 쓰기도 했고 그만큼 ‘많은’ 시를 버리기도 했다.”고 한다. 9월이 주는 의미는 이렇듯 인생론적이고 서사적이다. 오래된 필름 속에도 9월이 있다. 그 옛날 ‘주말의 명화’에서 상영하던 <9월이 오면>스크린에는 헐리우드 명배우 록 허드슨과 이태리 여배우 지나 롤로브리지다의 멋진 연기가 오버랩된다. 

[불교신문3422호/2018년9월8일자] 

백학기 논설위원·시인·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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