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버려 ‘부처님 마음’ 드러내다

우리가 색안경을 바꿔 쓰면 
세상 모든 색깔이 달라지듯 
생각을 바꾸면 우리가 보던 
세상의 모습도 달라지는 것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는 말은 우리 일상에서 보통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의미로 많이 쓰입니다. 말길이 끊어졌다는 겉의 뜻만 가지고, 말문이 막혀 어이가 없어 말하려고 해도 말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로 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가(佛家)에서는 ‘들끓는 마음을 쉬어 마음의 분별이 사라진 곳’을 뜻하는 말로 오롯한 부처님 마음자리를 가리킵니다. 

원문번역: 문) 경(經)에서 “중생의 말길이 끊어진 것은(言語道斷) 중생의 마음 갈 곳이 사라졌기 때문(心行處滅)”이라고 하였는데, 그 이치가 무엇입니까. 답) 말로 이치를 드러내지만 이치를 얻게 되면 말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 이치란 공(空)이요 공은 부처님의 도(道)이다. 부처님의 도는 말로 설명할 길이 다 끊어졌기 때문에 “말길이 끊어졌다(言語道斷)”고 말하며, “마음 갈 곳이 사라졌다”는 것은, 공(空)이라는 실제 이치를 얻었으므로 다시 어떤 이치를 알고자 하는 생각을 내지 않으니 곧 생멸하는 마음이 없다(無生). 생멸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곧 모든 색의 근본 성품이 공(空)인 줄 알고, 모든 색의 성품이 공이므로 온갖 인연이 다 끊어지며, 온갖 인연이 다 끊어진다는 것은 마음이 갈 곳이 사라졌기 때문이다(心行處滅). 

강설: 부처님 마음자리는 중생의 생각으로 헤아려 알 수 있는 곳이 아니며, 중생의 알음알이로 표현할 수 있는 곳도 아닙니다. 이것을 ‘말로 설명할 길이 다 끊어진 곳’이라고 해서 언어도단이라고 하며, ‘중생의 마음 갈 곳이 사라진 곳’이라 하여 심행처멸(心行處滅)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불가에서는 언어도단 심행처멸이란 말을 함께 써서 중생의 시비분별이 다 끊어진 부처님 마음자리를 드러냅니다. 이는 중생의 알음알이로 쉽게 이렇다 저렇다 분별할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상스님은 <법성게>에서 부처님 마음자리는 “오직 부처님의 지혜로만 알 수 있는 곳이지, 다른 중생의 알음알이로는 알 수가 없다(證地所智非餘境)”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든 그것은 모두 자신이 만들어내는 망념일 뿐입니다. 그것은 철저히 전생 과거부터 축적된 망상덩어리 ‘나’의 지식과 경험에 의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을 잘 들여다보면 괜히 하는 소리가 없습니다. 말속에 어떤 의도가 담겨 있고 무언가 지향하는 뜻이 있습니다. 내 생각 내 의도가 들어 있기에 그 말속에 망상덩어리 자기중심적인 ‘나’란 놈이 숨어 있습니다. 이로 인해 나와 너, 이익과 손해, 선과 악 등으로 분별하는 이분법적 사고로 살다보니 우물 안 개구리처럼 다툼 속의 좁디좁은 자기 소견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리가 색안경을 바꿔 쓰면 세상 모든 색깔이 달라지듯, 우리 생각을 바꾸면 우리가 보던 세상의 모습도 달라집니다. 색안경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달라지는 세상을 망상덩어리 ‘나’의 관점에서 영원히 변치 않는 진실이라 고집하고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색깔로 보는 세상만 옳다고 주장한다면, 정작 진실은 알지도 못한 채 상대방과 갈등만 일으키니, 아귀다툼의 세상이 내 앞에 펼쳐집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깨달음에는 이미 결정된 법은 없다(無有定法)”라고 말씀하십니다. ‘결정된 법이 없다’는 말은 ‘이 세상 모든 것은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다’는 공(空)의 뜻과 같습니다. 이 뜻을 체득해 아는 자리가 부처님의 마음자리로서 ‘나’가 사라진 텅 빈 마음에서 있는 그대로 아는 ‘앎’만 있을 뿐, 경계에 집착하는 생멸의 마음이 없습니다(無生). 집착하고 분별하는 생멸의 마음이 없는 것은, 곧 모든 색의 근본 성품이 공(空)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색의 근본 성품이 공이므로 여기서는 온갖 인연이 다 끊어지고, 온갖 인연이 다 끊어졌다는 것은 마음 갈 곳이 다 사라졌다는 것입니다(心行處滅). 

이기적인 자기 생각을 놓고 시비하는 마음을 버려 부처님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 그것이 마음 닦는 이가 지니는 ‘언어도단 심행처멸’입니다. 

[불교신문3422호/2018년9월8일자] 

원순스님 송광사 인월암 삽화=손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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