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늘 문득 나의 살아온 삶이 부끄러워서 큰 돌 뒤에 숨어서 나오기 싫었습니다.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세밀한 마음들을 미처 받아주지 못한 나의 무딘 감성이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나의 옹색한 마음 탓으로 사는 것이 서글펐을지도 몰랐을 어느 시절 어느 인연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습니다. 미안했다고. 잘못했다고. 몹시도 부끄러워서 어디 멀리 도망 가 버리고 싶기만 합니다.

폭염의 긴 시간 후에 자태를 드러낸 분홍빛 상사화 앞에서 나의 부끄러움은 색이 더 깊어집니다. 이런 조건, 저런 조건들을 재고 가늠했던 나의 이기심이 측은합니다. 그게 인연이었다고 위안하여도 나의 부끄러움은 숨죽지 않고 소금에 절여지지 않은 배춧잎처럼 살아서 얼음에 베이듯 아픕니다. 밤하늘 북두칠성처럼 자신의 소임을 아무런 불평 없이 해내는 꿋꿋한 생명들이 내게 위로입니다. 오늘 폭염을 이기고 빛나게 피어난 상사화처럼요. 

삶은 그렇게 흘러가는 거라고. 그렇게 부족한 듯 부끄러운 듯 흘러가는 거라고. 너의 부끄러움은 이미 흘러가 버리고 없다고. 내게 귓속말로 말해주고 나를 따스하게 봐주기를 무더운 여름밤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나도 상사화의 분홍처럼 곱디곱게 뜨거운 대지를 뚫고 나오기를. 그간 모질었던 나의 각박했던 삶을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바랍니다. 

[불교신문3422호/2018년9월8일자] 

선우스님 서울 금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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