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49재를 지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젊은 나이에 병으로 돌아가신 청신사의 안타까운 재였다. 아들을 먼저 보낸 노모는 할 말을 잊고 하염없이 눈물만 닦아내고 있었다. “영가시여, 삶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고, 죽음 또한 그 구름이 사라짐과 같습니다. 뜬 구름 자체가 허망한 것이니, 우리네 삶과 죽음도 역시 그러합니다.” 우리말로 풀어놓은 의식집의 구구절절한 법문이 재주들의 마음을 더욱 애달프게 하여 추모의 마음을 더하게 했다. 

주지 소임을 보면서 49재를 지내는 일은 당연한 업무 중의 하나이다. 천수를 누리다 편안하게 임종을 하신분도 있고, 뜻하지 않은 사고나 병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는 분도 있다. 이런저런 사연들을 가슴에 안고 의식을 진행하다 보면 그 자체가 수행의 일부임을 새삼 느끼곤 한다. 무상법문의 정수들이 49재 의식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재주들은 그 의식문을 같이 읽으면서 영가에 대한 안타까움과 서러움, 혹은 생전에 다하지 못한 감정들을 쏟아내며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49재는 결국 망자와 유족들에게 용서와 화해,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주며 치유의 시간을 가지게 해주는 마지막 선물인 셈이다. 

사실 삶과 죽음은 한 몸이다. 매일 산다는 것은 매일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삶’만 생각하고 허둥대지만 ‘죽음’에 대한 이해나 준비는 부족하다. 아니, 죽음에 대해서는 아예 이야기 자체를 금기시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충격을 받아 절망에 빠지곤 하는 것이다. 천상병 시인이 했던 것처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 할 수 있으려면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어찌 죽음을 소풍가듯이 맞이할 수 있으랴만, 아무리 안타까운 죽음도 어느 정도의 애도기간이 지나면 영가를 마음에서 보내드리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산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살 때는 기적처럼 살아 숨을 쉬고, 죽을 때는 소풍가듯 가볍게 옷을 바꿔 입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불교신문3420호/2018년9월1일자] 

동은스님 삼척 천은사 주지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