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지홍스님

지난달 서울아산병원에서 지도법사 지홍스님 27년 회향을 축하하는 자리가 열렸다. 사진 가운데 꽃다발을 들고 있는 스님이 지홍스님이다.

1992년 지하1층 법당서 시작
많게는 하루 50여 차례 상담
“혼자 숨죽여 울던 시간 많아”

서울아산병원 법당 지도법사 지홍스님 일과는 오전10시 시작됐다. 법당에 찾아오는 환자와 가족 그리고 병원 직원들까지, 하루에도 수십번 법당을 찾는 객들을 위해 찻잔을 닦고 찻잎을 준비하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오전 쾌유 발원 기도가 끝날 때쯤 법회 참석 인원이 어느 정도 찼다 싶으면 법문 준비에 들어갔다. 오랜 투병 생활로 답답한 병실 생활에 지친 이들이 맑고 아름다운 부처님 말씀으로 하루는 열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점심 때가 지나도 쉴 틈은 없었다. 스님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멀리 지방에서 찾아오는 불자는 물론 거동이 힘든 환자를 위해 병실 수백개를 돌기 일쑤였다. 병간호로 지친 가족들 마음고생까지 토닥이다 보면 하루가 가는 줄 몰랐다. 한창일 때는 상담이 하루 50여 차례 이어질 때도 있었다. 그렇게 지낸 세월이 27년, 1만 여일에 달한다.

“대학원을 준비하던 중 당시 개원 한 지 얼마 안 된 아산병원에서 봉사를 하게 됐죠.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1년만 해보자’ 했는데 봉사를 하는 도중 법당이 서관에서 동관으로 자리를 옮겼어요. 법당이 자리잡을 때까지 조금만 더 있어보자 했는데 그게 지금까지 온 거죠.”

우연히 시작된 아산병원과의 인연은 1992년 6월 지하1층 2평 남짓한 병원 법당에서 시작됐다. 1989년 개원한 아산병원에는 3개 종교 시설이 입주할 수 있었는데, 당시 승가대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던 지홍스님이 소식을 듣고 불교 법당 자원 봉사활동을 나오게 된 것. 대학원을 준비하다 개원 후 처음 생긴 아산병원 법당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한 지홍스님에게는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졌다고 한다.

그때부터였다. 365일 중 월화수목금 법당 문을 열었다. 단지 몸이 아픈 환자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서울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저 먼 시골 동네서 올라와 외롭게 병원 생활을 하며 소외감을 느끼는 경증 환자, 기나긴 병간호로 지쳐가는 가족들, 고된 노동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병원 직원들이 때마다 스님을 찾았다. 누구에게도 쉽지 풀지 못한 고단함을 귀가 아프도록 들어줬다. 따뜻한 차 한잔 내주며 가만히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위로받는 이들이었다. 입원 환자보다 외래 환자가, 환자 옆에 붙어있는 보호자들이 스님을 더 많이 찾은 까닭이었다.

“겉으로 보면 몸이 아픈 사람이 제일 힘들 것 같지만 사실 그 고통을 지켜보는 보호자들도 그보다 더 괴로우면 괴롭지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니거든요. 환자를 위해 괜찮은 척 하지만 속은 썩어요. 몸이 정말 아픈 분을 위해서 병실을 직접 찾아가 기도를 올려주기도 했지만 법당을 지키고 있는 시간이 많았던 것도 그 때문이에요. 몸 만큼 마음이 괴로운 사람들 소리를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더라구요.”

병마와 싸우는 가녀린 중생들 아픔을 어루만지던 지홍스님은 지난달 소임에서 물러났다. 젊은 후배 스님들에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병원 법당은 우리 같은 수행자들이 마음 수행하는 데 최고의 도량이거든요. 젊은 스님들이 봉사하고 수행하는 마음으로 그늘진 곳에 와서 아픔 이들을 보듬는 법을 몸으로 직접 배웠으면 좋겠어요. 환자들과 웃고 울고 하다보면 27년은 금방 간답니다.”

40년 지기 도반 심제스님은 지홍스님 27년 회향을 축하하며 보낸 편지에서 다음 같이 썼다. “지난 27년간 불평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기에, 환우들 눈물과 가족들 절망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음에 자책도 많이 했을 것이 분명하기에, 매일 출근해야 하는 무거운 발걸음을 가벼이 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하루하루를 걸어왔을 지난날에 감사하고, 인내와 고뇌로 자기성찰의 시간 속에 실천하는 수행자로써 표본이 돼 주셨습니다.” “아파서 쓰러진 환자를 볼 때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가끔 혼자 울었다”는 지홍스님을 두고 한 말이다.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