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이 2011년에 발간한 자료집 <한국사지총람>에 따르면 전국에 산재된 폐사지(절터)는 모두 5393개소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자료는 각종 고문헌과 사지 관련 보고서 등을 종합검토해서 정리한 숫자다. 이중 103개소는 사적(35개소) 지방문화재(68개소)로 지정되어 보존 관리되고 있다. 나머지는 문화재분포지도 등에 표시되어 개발사업으로부터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받고 있다. 그러나 이는 드러난 자료를 정리한 것일 뿐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때 번창하던 절이 폐사지가 되는 이유는 대략 서너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한국전쟁 등 수많은 전란으로 사찰이 불타고 복원되지 못한 경우다. 두 번째는 조선시대 극심한 억불의 영향으로 스님들이 떠나고 절이 무너진 경우다. 세 번째는 사찰건물이 목재로 이루어져 실화와 같은 화마를 피하지 못한 경우다. 네 번째는 산중에 위치한 입지적 조건 때문에 불자들이 찾아가기 어려워 폐사가 된 경우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앞서 가장 중요한 원인은 불교 자체의 쇠퇴다. 현재 남아있는 사찰이라고 해서 전란이나 실화, 국가의 억불이나 양반의 수탈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다시 복원된 것은 그때 그 절에 살던 스님들과 불자들의 신심과 원력 때문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 희망의 운력(運力)이 모든 사찰에서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새롭게 일어서고자 하는 열망이 없으면 어떤 명산대찰도 잡초 무성한 폐사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불교의 흥망성쇠는 여기서 갈라진다.

오늘의 한국불교는 여기서 배워야 한다. 현실은 포교의 부진과 신도수의 감소, 사회적 영향력 축소 등으로 날로 어두운 그림자가 짙어가고 있다. 세속에서는 불교의 거룩함보다는 입에 담지 못할 민망한 얘기로 화제를 삼는다. 불자들은 이웃들에게 같이 절에 나가자고 권하기가 부끄럽다. 이대로는 미래가 뻔하다. 한때는 번창하다 문을 닫은 폐사지가 주는 쓸쓸한 교훈을 되새길 때다.

[불교신문3417호/2018년8월22일자] 

홍사성 논설위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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