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채소를 정리한 후 
구겨지고 눅눅해진 신문을 
손바닥으로 펴가며 첫 면부터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읽었다 

조각보처럼 곱게 기워놓은 제주 
곳곳 소식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간간이 눈에 익은 인물 소식 
장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 기쁨은 배가 되었다 …

며칠 전 제주도에서 택배가 왔다. 어머니가 텃밭에서 키운 호박, 가지, 오이를 보내셨다. 상자에는 하나하나 신문지로 포장된 애지중지가 가득 담겨 있었다. 낱개 포장된 채소를 신문지로 두툼하게 깔고 덮어 흠집 하나 없이 배달되었다. 포장에 쓰인 신문은 날짜가 지난 제주에서 발행된 일간지였다. 제주라는 활자를 본 순간 얼마나 설레던지. 참 오랜만에 보는 제주 신문이었다. 서둘러 채소를 냉장고에 정리한 후, 구겨지고 눅눅해진 신문을 손바닥으로 펴 가며 첫 면부터 마지막 면까지 꼼꼼하게 읽었다. 조각보처럼 곱게 기워놓은 제주 곳곳 소식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간간이 눈에 익은 인물의 소식이나 장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 기쁨은 배가 되었다. 

이런 향수를 여러 사람에게 전해주는 사업가가 있다. 일본에서 한복을 판매하는 분인데 한국에서 발행되는 신문으로 상품을 포장해 주는 것이다. 상품을 받는 손님들 대부분 재일동포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한다. 그분의 요청으로 나는 신문을 모아두었다 두세 달에 한 번 일본으로 보낸다. 그 신문은 제주 어머니가 채소를 포장하여 보내는 것과 다르게 의도적이기는 하지만, 고국의 소식을 모국의 활자로 접한다는 기쁨, 얼마나 클 것인가. 처음에는 우연히 신문 포장을 해 보냈는데 뜻밖에도 반응이 좋아 지금은 모든 주문 상품을 신문지로 포장한다고 한다. 판매자의 입장에서 단순히 서비스라고 하겠지만,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에게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의 시 ‘향수’ 중에서)

향수는 정지용의 시 ‘향수’에서처럼 성장기를 보낸 곳의 산, 강, 바다, 독특한 향, 소리, 사람, 말 등 많은 매개체로 인하여 젖어 들게 된다. 이런 것들에 대한 그리움은 고향과 멀리, 오래 떨어져 있을수록 더 애잔하다. 이럴 즈음 고향 사람을 만나거나, 고향에서 물건이 오거나, 고향 소식을 듣게 된다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더욱이 고향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만나는 즐거움은 무척 색다르다. 다른 곳보다 제주가 고향인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제주 사람들끼리 교류하는 방언이나 독특한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문을 읽다 보면 분명히 표준어로 활자화된 소식들이 간혹 제주도 사투리로 쓰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들의 고유한 문자를 가지고 있다. 그 문자를 공유하는 집단은 교집합으로 묶이게 된다. 같은 문자를 사용하는 공동체 의식 때문이다. 오래전에 떠난 공동체의 소식을 신문으로 읽는 즐거움은 당사자들이 아니면 선뜻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만, 누구라도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 문자의 소중함과 공동체 의식을 다시금 되새긴다. 우리의 정신이 면면히 이어지는 것은 문자라는 매개체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천 년 역사도 문자로 기록되어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이란 사이버 세상에서 과거, 현재의 모든 소식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고국, 고향에서 늘 곁에 두고 보던 신문을 어느 날 뜻하지 않게 만나 읽게 된다는 것은 단순한 신문 그 이상일 것이다. 아마 그것이 날짜가 지난 헌신문지일지라도 쉽게 버리지 못할 만큼. 나무 그늘에서 돗자리 대신 신문지를 펴 도시락을 먹으며 활자 하나하나가 살아서 노래가 되고 춤이 되고 밥이 되는 여유를 만끽하며 무더위를 건넌다. 

[불교신문3417호/2018년8월22일자] 

김양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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