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시대에 도척이라는 큰 도둑이 있었다. 하루는 부하가 도둑에게도 도가 있느냐고 묻자, 그는 어디엔들 도가 없겠느냐며 도를 논했다. “먼저 남의 집안에 무엇이 있는지 짐작하는 게 성(聖)이고, 집안에 먼저 들어가는 게 용(勇)이고, 집안에서 맨 뒤에 나오는 게 의(義)이고, 집안에 도둑질할 물건이 있느냐 없느냐를 알아내는 게 지(知)이고, 도둑질한 물건을 골고루 나누는 게 인(仁)이다”라고 했다.

살아오면서 백수로 지낸 시절이 더러 있었다. 돌이켜보니 절대 무익한 시절이 아니었다. 나름 도를 실천하는 시간이었다. 약탈을 일삼는 도둑에게도 도가 있는데 하물며 남에게 아무런 해도 주지 않고 하루하루가 무위자연인 백수에게 도가 없으랴. 부모 형제의 처지가 어떤지 짐작하고 손을 벌리는 게 성(聖)이고, 백수라고 주눅들지 않고 대소사 자리는 씩씩하게 나가서 얼굴을 보이는 게 용(勇)이고, 궁한 처지인데도 때에 따라 한 번씩 지갑을 여는 게 의(義)이고, 지출이 있을 법한 불필요한 자리는 미리 알고 피하는 게 지(知)이고, 한낮에 후줄근한 추리닝 차림에 삼선 슬리퍼를 신은 다른 백수를 보면 동병상련을 갖는 게 인(仁)이다. 

그런데 백수일 때 실천하기 좋은 진짜 도는 따로 있다. 바로 독도(讀道)다. 돌이켜보니 백수 때야말로 활자를 흡수하듯이 독도에 빠져들어 그윽한 문향(文香)에 취했다. 읽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두꺼운 책도 모두 백수 때 읽었다. 우리말 팔만대장경이나 금강삼매경론을 읽은 것도 그 시절이었다.

책 욕심 때문에 사놓기만 하고선 아직 못 읽은 책이 꽤 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읽으려고 하니 마치 밥을 먹다가 딴 일을 보고 다시 먹는 것처럼 내키지가 않는다. 감흥이 떨어져 읽는 맛이 안 난다. 백수(白手). 사직서 한 장만 쓰면 되는데, 그러면 책을 실컷 읽을 수 있는데, 구상 중인 소설을 멋지게 써보고도 싶은데, 도무지 사직서를 낼 용기가 나지 않는다. 과거에 사직서를 툭 내던지던 그 기개가 꺾여 나도 이제 조심성만 늘어가는 나이가 됐다. 아 백수가 되고 싶다. 백수의 그 무구한 손으로 이 부조리한 세상의 배면(背面)을 담고 있는 종잇장들을 한없이 넘기고 싶다.

[불교신문3417호/2018년8월22일자] 

김영민 소설가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