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집착 놓고 보니 밝은달 두둥실

선정의 힘만 많으면 무명 못 벗고 
지혜만 많으면 삿된 소견만 늘어
선정과 지혜 함께 쓸 때 곧 해탈

‘맑고 밝은 향기가 나는 지혜로운 삶’은, 분별이 없어 어디에도 집착이 없는 고요하고 행복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이런 향기로운 삶은 선정과 지혜를 고루 함께 쓸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임을 대주스님은 말합니다. 

원문번역: 문) <열반경>에서 “선정의 힘이 많고 지혜가 적으면 무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선정의 힘이 적고 지혜가 많으면 삿된 소견만 늘어난다. 선정과 지혜를 빠짐없이 고루 함께 쓸 때 곧 이를 해탈이라 한다”고 하였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답) 선(善)이나 악(惡)의 온갖 경계를 마주하여 이 모든 것의 실체가 빠짐없이 환하게 드러나 저절로 아는 것이 지혜이고, 환하게 드러나 저절로 아는 곳에서 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는 마음을 조금도 일으키지 않아 오염된 경계에 따라가지 않는 마음이 선정이니, 곧 이것이 선정과 지혜를 빠짐없이 고루 함께 쓰는 것이다.

강설: 망념을 없애는 선정은 고요한 마음 상태를 말하고, 밝고 행복한 삶을 이루는 지혜는 그 마음이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아직 망념이 남아있다면 중생의 마음이니, 이 마음에서 드러나는 것은 다만 중생의 모습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중생은 선정의 힘이 크더라도 지혜가 없다면 아직 망념이 남아 있으므로 무명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또한 지혜가 있더라도 선정의 힘이 적으면 외도처럼 삿된 소견만 늘어나니 중생의 삶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런 중생의 삶을 벗어난 부처님의 선정과 지혜는 한몸이니 둘로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비유하면 선정과 지혜는 불과 불빛의 관계와도 같습니다. 불은 불빛의 바탕이 되고 불빛은 불의 쓰임새가 되듯, 선정은 지혜의 바탕이 되고, 지혜는 선정의 쓰임새가 되는 것입니다. 선정과 지혜는 부처님 삶의 근본입니다. 분별이 없어 망념이 없는 선정은 부처님 마음이며 이 마음에서 드러난 것이 부처님 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선정이 있고 나중에 지혜가 생긴다거나, 우선 지혜를 닦고 난 뒤에 선정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선정과 지혜를 나누어 각각 닦아야 한다면 부처님의 법에 두 가지 모습이 있다고 분별하는 것이니, 입으로는 그럴듯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선정과 지혜에 집착하는 것이므로 부처님 마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선정과 지혜가 차별 없이 평등한 그 근본 자리가 부처님 세상입니다. 

수행자라면 스스로 깨우쳐 공부하는 데 전념할 일이지 선정과 지혜, 너와 나, 옳고 그름을 가리느라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됩니다. 이것저것 중생의 알음알이로 분별한 것을 내세워 나만이 옳다고 우기고 다투기만 하면 부처님 삶과는 멀어질 뿐입니다. 평생 시비 분별로 마음이 들끓어 편안할 날이 없으니 ‘나 잘났다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 잘났다는 마음이 사라진 곳에 맑고 밝은 마음만 남습니다. 이 마음이 부처님의 선정이니, 여기서 선이나 악의 온갖 경계를 마주하여 이 모든 것의 실체가 빠짐없이 환하게 드러나 저절로 아는 것이 부처님의 지혜입니다. 환하게 드러나 저절로 아는 곳에서 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는 마음을 조금도 일으키지 않으므로 어떤 경계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되니, 이것이 부처님의 선정입니다. 이를 일러 ‘선정과 지혜를 빠짐없이 고루 함께 쓰는 것’이라고 대주스님은 말하고 있습니다. 선정과 지혜를 두루 갖춘 삶이 번뇌에서 벗어난 부처님 삶 곧 해탈입니다. 

“선정 속에 들어가니 깊은 계곡 가로질러 흰 구름이 걸쳐 있고, 모든 집착 놓고 보니 맑고 시린 물속에서 밝은 달이 두리 둥실.”(야부스님 ‘금강경 게송’)

[불교신문3416호/2018년8월18일자] 

원순스님 송광사 인월암 삽화=손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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