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라 할 만한 것

오시이 마모루 지음·장민주 옮김/ 원더박스

‘공각기동대’ ‘이노센스’
불교적 세계관 공유한
애니메이션 연출한 감독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개인적, 일상적인 답변

‘애니메이션의 거장’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바라본 인생과 영화에 대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 <철학이라 할 만한 것>가 최근 우리말로 번역돼 출간됐다. 사진은 그의 각본을 원작으로 김지운 감독이 실사영화로 옮긴 영화 ‘인랑’ 속 한 장면.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걸작 SF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를 비롯해 ‘이노센스’, ‘인랑’ 등을 연출했거나 각본을 쓴 일본 출신 영화감독 오시이 마모루. “애니메이션을 철학의 경지로 끌어올린 거장”이라는 극찬을 받고 있는 그는 자신의 작품에 불교적 세계관을 불어넣고 있는 감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인간과 사이보그의 대립을 다룬 ‘공각기동대’와 ‘이노센스’는 불교의 중심사상인 무아(無我)를 바탕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화두를 던진다. 또한 ‘공각기동대’를 보고 만든 미국 영화 ‘매트릭스’도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오시이 마모루가 바라본 인생과 영화에 대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 ‘철학이라 할 만한 것’가 최근 우리말로 번역돼 출간됐다. 감독이 아닌 저자로 대중 앞에선 그는 어떤 생각으로 일을 하고, 관계를 맺고, 영화를 만들며 영상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다소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답변을 들려줘 눈길을 끈다.

지독한 현실주의자인 저자는 삶이란 자기실현의 과정이며 인간은 계속 변화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철학을 그대로 영화에 반영시킨다. “본질적으로 관객을 속이는 것이 영화라는 장르이지만, 그렇더라도 감독의 철학이라 할 진실의 작은 파편 하나라도 담아내는 것, 그리고 계속해서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여 관객에게 좋은 꿈을 꾸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을 영화감독으로서의 우선순위로 삼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그가 영상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가 연출한 작품들의 대화 속에서 작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더 오래 존재하기 위해 복잡해지고 다양해지지만, 때론 버릴 것은 버려야만 하지…인간은 계속 변화하는 존재고, 지금의 너로 남으려는 집착은 너를 끝없이 제약할 거다.”(영화 ‘공각기동대’) “인간과 인연을 맺은 짐승의 이야기는 반드시 불행한 결말로 끝나지. 짐승에겐 짐승만의 이야기가 있어.”(영화 ‘인랑’)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인간이 어른이 될 필요가 있을까?”(영화 ‘스카이 크롤러’)

이와 더불어 저자는 “행복이란, 아니 행복뿐 아니라 인생에서 필요한 것은,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 오직 하나”라고 강조한다. 자신의 우선순위, 즉 가치관에 따라 순간순간 선택을 하고, 그 선택들의 연속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이렇듯 삶이란 자기로부터 비롯된 것들이 실현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는 존재인 만큼 대개의 경우 우선순위 역시 계속 수정해 나갈 수밖에 없다. 바로 ‘후회’라는 신호가 들어올 때 수정하는 것이다. 후회를 한다는 건 자신의 우선순위가 틀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선순위가 철저했다면 후회 따위 할 리가 없으며, 후회를 할 정도라면 그 우선순위를 만든 ‘자신’ 같은 건 거의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동안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자세로 결과를 받아들인 다음, 우선순위를 고쳐 다시 그에 따라 살면 그뿐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고정하고 절대화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상실하는 길이다. 어딘가에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에 의해서 삶은 실현된다”는 그의 철학이 바로 자신의 애니메이션을 관통하는 주제다.

1978년 애니메이션 ‘일발 칸타군’으로 데뷔한 오시이 마모루는 ‘기동 경찰 패트레이버’ 시리즈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살아있는 우상으로 떠올랐다. 이어 그의 작품세계는 ‘공각기동대’에서 절정의 모습을 보인다. 그는 이 작품에서 감독과 함께 그림 콘티까지 맡아, 자신이 그리고자 하던 상상의 모습을 풀어내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보였다. 제임스 카메론, 코엔 형제, 뤽 베송 등 헐리우드의 많은 흥행감독들의 작품에서 그의 오마쥬를 쉽게 찾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또한, 그의 창작활동은 애니메이션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실사영화, 소설, 만화원작, 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 넓게 활약하고 있다. ‘인랑’에서는 원작과 극본을 담당하고 ‘Blood the last vampire’에서는 기획 협력을 맺는 등 후진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현재 극장용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2’를 제작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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