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

강우방 지음/ 다빈치

한국미술연구 매진
원로 미술사학자

폄하된 ‘민화의 가치’
바로 세우는 연구서

“세계미술사 유례없는
회화의 새지평 열었다”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이 민화의 영토를 확장시킬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민화>를 최근 출간했다. 사진은 책에 수록된 의성 수정사 소장 의성 수정사 소장 ‘지장시왕도’.

민화(民畵)는 한 민족이나 개인이 전통적으로 이어온 생활습관에 따라 제작한 대중적인 실용화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유행했으며, 흔히 민화를 두고 전문교육을 받지 않은 무명 화가가 ‘정통’ 또는 ‘전통’ 회화를 모방해 실용을 목적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민화의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화가의 이름이 쓰여 있지 않은 그림은 모두 민화로 뭉뚱그려지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 민화는 넓고도 깊은 한국회화사의 바다에 외로운 섬처럼 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불쑥 나타난 근대의 산물이라 여겨지던 민화에는 놀랍게도 고대 고구려에서 조선까지 면면히 이어져온 조형과 상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국립경주박물관 관장 등을 지내며 한평생 한국미술연구의 최전선에 서온 미술사학자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은 최근 펴낸 <민화>에서 민화의 영토를 확장시킬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민화를 비롯해 고구려 무덤 벽화, 백제와 신라의 유물, 고려불화, 조선의 의궤, 나아가 고대 인도와 중국의 조각까지 수많은 작품을 들여다보며 민화의 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궁중화나 문인화 등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폄하되어온 민화야말로 한국회화사 2000년의 전통 위에 우뚝 솟은 금자탑”이라고 역설한다.

불교조각을 전공하고 석굴암 연구로 일가를 이룬 저자는 민화에서 고대의 조형 예술과 이어지는 일관된 흐름과 양식을 발견했다. 고구려 무덤의 사신(四神)이 조선 궁중 화원의 손에서 되살아나고, 궁궐에서 뛰쳐나온 청룡과 백호는 민화에서 한결 자유로운 모습으로 노닐고 있었다. 민화는 단순히 모방하는 것으로 담아낼 수 없는, 과거의 전통을 익힌 훈련된 화가가 아니면 그려낼 수 없는 상징들로 가득한 세계였다.

때문에 저자는 이러한 조형분석을 바탕으로 “민화가 화원 또는 화승 출신 화가의 그림”이라는 주장을 펼쳐 나간다. 고대부터 연면히 이어져온 전통적 표현 원리가 궁중의 제재에서 벗어난 화가의 붓 끝에서 집대성되는 동시에 창조적으로 발전한 것이 민화라는 것이다. 이로써 궁중화, 문인화 등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폄하돼온 민화의 정의를 새로 쓰고 나아가 그에 걸맞은 위상을 부여한다. 그러면서 “수천 년의 세월을 넘어 계승된 독창적 표현 양식으로 고차원의 상징을 그려낸 민화는 세계 미술사에 유례없는 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극찬했다.

더불어 우리에게 익숙한 까치 호랑이 그림, 곧 백호도(白虎圖)에서 출발해 농기(農期), 만병도(滿甁圖), 책거리,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 문자도(文字圖) 등 6주제를 중심으로 민화 속 조형들이 잃어버린 본래 의미를 찾는다. 새해를 맞이해 문에 붙이는 그림 세화(歲畵)의 주요 소재, 까치 호랑이의 호랑이는 까치에게 조롱당하는 ‘바보 호랑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호랑이 조형의 유래를 고대 고구려 무덤에 잠든 성스러운 백호에서 찾아 새로운 해의 탄생을 뜻하는 상징”이라며 의미를 격상시킨다.

또한 그림의 배경 장식쯤으로 여겨지던 무늬와 각종 조형을 중심 조형으로서 읽어낸 점도 눈길을 끈다. 대표적인 것이 만병(滿甁)이다. 의성 수정사 소장 ‘지장시왕도’ 속 만병 등 불화와 민화의 만병을 비교한 것은 물론 민화의 만병에서 서기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부터 나타나는 우주목(宇宙木), 생명의 나무의 조형을 찾아냈다. 이들 민화 속 조형이 시대와 장소를 넘나드는 것은 물론 책거리, 문자도 등 여러 갈래에서 폭넓게 활용되는 다양한 작품들은 민화의 세계를 한층 풍요롭게 보여준다.

저자는 “민화는 인류 공통의 본성과 인간의 무의식 세계를 기적적으로 드러낸 우리의 전통 회화로, 가장 궁핍하고 암울한 시대에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면서 “이제 민화는 홀로 격리된 섬이 아니라 광대한 한국회화의 대륙과 이어진 영토로 읽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잊혔던 민화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 안에 담긴 한국회화사 2000년의 전통을 익힌다면, 더 이상 외딴 섬이 아니라 한국미술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등대가 될 것”이라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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