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은

풀과 나무와 흙과 바람과 물과 햇빛으로

집을 지으시고

그 집에 살며

곡식을 가꾸셨다.

나는

무엇으로 시를 쓰는가.

나도 아버지처럼

풀과 나무와 흙과 바람과 물과 햇빛으로

시를 쓰고

그 시 속에서 살고 싶다.

-김용택 시 ‘농부와 시인’에서

농부인 아버지는 풀, 나무, 흙, 바람, 물, 햇빛이 집이다. 거기서 산다. 거기서 작물을 키운다. 씨앗을 심고, 자라나게 돕고, 열매를 얻는다. 시인인 나는 그런 아버지의 삶을 살고 싶다. 풀과 나무와 흙과 바람과 물과 햇빛 속에서 생각의 푸른 싹이 움트고, 줄기처럼 조금씩 뻗어 가고, 한 편의 시를 끝맺고 싶다. 땅을 갈아서 농사를 짓듯 시도 그처럼 쓰고 싶다. 내 몸으로, 내 땀으로 시를 짓고 싶다. 김용택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농부들은 헛짓을 하지 않습니다. 괭이 끝은, 호미 끝은 정직합니다”라고 말한다. 정직하면 무서울 게 없다. 정직하면 부러워할 것도 없이 당당하다.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그 배운 대로만 하면, 시키는 대로만 하면 그르치는 일이 없다.

[불교신문3414호/2018년8월11일자]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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