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제자라면 세상을 불교로 보아야
불교로 보는 것은 연기로 바라봄을 말해
수많은 인연 어우러져 임시적 결과 낳아
힘들수록 불교 관점 세상을 보아야 풀려

내가 동국대에서 불교학 박사과정에 있을 때 어떤 대학 물리학과 교수가 역시 동국대에서 불교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수업을 같이 들었다. 그분과 나는 대학교수라는 동업자 신분이라 서로 호감을 느끼고 가끔 대화를 나누었는데 나는 그분이 물리학자로서 왜 불교를 공부하는지 궁금했다. 아마 그분도 내가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왜 불교를 공부하는지 궁금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분은 물리학이란 세상을 보는 관점인데 불교의 세상을 보는 관점과 물리학이 서로 통한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나는 그분의 이 말씀이 오래 귀에 남는다. 물리학은 어떤 결과를 도출하는 원인을 찾아내려고 한다. 불교는 모든 결과가 인과 연의 작용이라고 주장한다. 인이란 요인이고 연이란 환경, 조건, 상황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불자가 자주 ‘인연’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사실 알고 보면 세상을 보는 눈인 셈이다. 불교의 세계에서 ‘인연’만큼 중요한 단어도 없다.

아인슈타인은 일본 물리학자를 통해 물리학을 접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부처님의 말씀을 접하고 감탄하여 “석가모니 부처님은 과학의 아버지”라고 했다. 오늘날 물리학의 양자역학의 이론과 불교가 서로 통하는 점이 있음은 이미 과학자에 의해 밝혀졌다. 불교는 공부할수록 불교의 과학성에 매료된다. 무엇보다도 불교의 과학성은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내말이라고 무조건 믿지 말고 생각한 뒤에 타당하면 믿으라’고 하신 것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과학은 무조건 믿는게 아니라 검증하여 이론을 도출한다. 부처님은 당시에 유행했던 여러가지 신흥 종교인들의 주장을 하나씩 반박하셨는데 자세히 그 내용을 보면 모두 과학적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가 진정 부처님의 제자라면 이 세상을 불교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불교의 눈으로 본다면 연기사상으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연기사상은 수많은 인과 연이 어우러져 임시적 결과를 낳는다고 본다. 부처님은 연기사상이 당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발견하신 것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다. 물리학에서 원인과 결과를 인과관계로 엮어 이론을 만들어내는 행위는 이미 있는 것을 발견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이 세상을 불교의 눈으로 본다면 그동안 우리가 무심코 잘못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교육문제를 해결하려면 입시제도를 고치면 될 것 같이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대부분 한 두개의 원인을 고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한다. 물리학의 복잡계 이론은 모든 문제가 복잡하다고 생각하며 불교의 연기사상도 모든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연기의 세계에서는 수많은 요인과 조건, 상황, 환경이 어우려져 교육문제를 낳기 때문에 교육문제를 해결하려면 수많은 요인과 조건, 상황, 환경을 고쳐야 하고 결국 세상이 조금 더 좋아져야 한다. 

우리는 과연 이런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있을까? 아무리 절에 열심히 다녀도 불교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온전한 불자가 아니다. 삶이 힘들 수록 불교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아야 삶이 풀린다. 일이 안 풀릴 때 우리는 자칫 한 두가지 원인을 탓하기 쉽다. 수많은 인과 모든 연이 문제를 만들어내기에 인연을 풀어나가는 부처님의 지혜가 필요하다. 수행과 아울러 불교교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불교신문3414호/2018년8월11일자]

윤성식 논설위원·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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