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출간한 거창 죽림정사 주지 일광스님

거창군삶의쉼터 관장소임 살며
울고 웃었던 에피소드 담아내
불안 우울 어르신들 마음치유
사회적 약자 보듬는 ‘낮은 포교’

거창 죽림정사 주지 일광스님은 올해로 10년째 노인·여성, 장애인복지시설인 거창군삶의쉼터에 몸담으며 복지포교에 전념하고 있다. 사찰과 복지관을 오가며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스님의 삶에서 수행자의 향기와 불교의 진면목을 느낀다.

하루평균 500명 넘는 어르신과 장애우들이 머물다 가는 경남 거창군삶의쉼터. 시골마을 한낱 작은 복지시설에 불과했던 이 곳은 개관 10년만에 강산 변하듯 거창사람들 삶의 소중한 도량이자 쉼터가 됐다. 가난하고 외롭고, 병들고 상처받은 이들에게 괜찮다 다독이며 신명나게 살만한 세상을 안겨줬다. 

“여기 못와보고 죽었으면 억울할 뻔했다”며 행복에 겨워하는 할머니도 있고, “참말로 오래 살고 볼 일”이라며 복지관이 극락이라고 엄지척 세우는 할아버지도 많다. “뭐 별거 있나요? 어르신들 만날 때 내 어머니처럼, 내 어머니도 그런 삶을 살다 가셨으니까 마음으로 들어주고 안아주면서 그분들 삶으로 쑥 들어가는 거죠.”

작은 체구에 맑고 검은 눈동자가 빛나는 비구니 일광스님은 또렷하고 분명하게 말하고는 안개꽃처럼 환한 눈웃음을 보였다. “옛날이야 ‘복지’ 하면 빈민구제가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사회복지의 개념 자체가 달라졌어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자식과의 불통, 노부부간의 갈등과 폭력으로 심리적 우울감에 시달리는 어르신들 마음을 잘 풀어줘야 해요. 심리상담을 접목한 사회복지가 필요한 까닭입니다.” 거창군삶의쉼터 관장 일광스님이 동국대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뒤에도 다시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에서 명상심리학 박사과정을 밟은 이유다.

스님의 남자친구

글 일광스님  그림 손정은

 불교신문사

스님은 올해부터 복지관 어르신 대상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어르신 한 분을 여덟차례씩 만나서 상담절차를 거친다. 한 사람의 고단하고 힘겨웠던 삶 전체를 하염없이 들어주고 포인트를 잡아 마음 편안한 상태로 치유하는 과정이 결코 녹록치는 않다. 첫 상담에 녹취록만도 A4용지 서른여섯장에 달한다. 

“어르신들과 소통은 경청과 공감만으론 부족하죠. 60년 70년 평생 시집살이 하면서 몸도 마음도 병들어 화병이 난 어머님들이 복지관 관장님이고 게다가 여성이니까 안전하다 믿는다며 마음에 감춰둔 상처들을 드러낼 때면 그저 감사하죠. 너무나 깨끗하고 순수한 어르신들이라서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부터는 몰라보게 달라지고 좋아집니다. 하얀 도화지처럼….”

일광스님이 최근 낸 산문집 <스님의 남자친구>는 대부분 스님이 만난 어르신들 이야기다. 그 분들이 걸어온 빛바랜 삶이 스님과 인연으로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사연들이다. 거창 출신인 일광스님이 다섯 살배기 때 절에서 봤던 올해 아흔여덟 연이할매는 스님의 조모와 친구다. 연이할매에게 복지관 관장 스님은 친구 손녀딸인 셈이다. 

연이할매는 잊을만하면 스님에게 전화를 걸어 ‘스님 안부’를 묻고, 행여 돌아가시려나 염려하는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가면 몇 안되는 치아를 내놓고 해맑게 웃으며 ‘찬은 없지만 한그릇 잡숫고 가라’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밥을 차려주신다. 스님은 그 밥내음을 평생 잊지 못한다.

“우리 할멈이 며칠 전 세상을 떠났다”며 잔뜩 부아가 난 노거사 역시 스님에겐 선지식이나 다름없었다. 기도 안내문은 잘도 보내면서 나오던 신도가 안보이고 기별 없으면 전화라도 한번 줘야 하는 것 아니냐 꾸짖자 스님은 얼음물을 뒤집어 쓴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살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전화를 다시 걸자 “집사람이 스님의 염불소리를 그렇게 좋아했다”며 울먹이는 노거사 앞에서 스님은 두 어르신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풀어드릴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49재를 모시고 염불로 위로를 올렸다. 스님은 “은사 스님 돌아가시고 오랜만에 듣는 매운 꾸짖음이 장군죽비의 경책으로 아픔으로 와닿는다”고 고백했다.

거창군삶의쉼터 관장 일광스님은 직원들을 볼때마다 설렌다고 말한다. 스님은 “하나쯤은 분명하게 갖고 있는 직원들의 ‘천재성’이 너무나 멋지다”며 늘 자랑한다.

5년여를 하루같이 날마다 복지관 셔틀버스로 ‘출근’하는 법수화 보살은 그야말로 무주상 보시행을 실천하는 자원봉사자다. 몸이 아파 사경을 헤맨 적도 있었지만 내일 죽더라도 밥값을 하고 복이라도 짓자는 생각으로 복지관 식당봉사를 시작한 그녀는 되레 “고맙다, 잘 먹었다 인사해주는 분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하다”고 말한다. 

스님은 지난 7월19일 복지관 개관 10주년 기념식에서 법수화 보살에게 명예 직원증을 수여했다. 여든셋에 초급 영어를 배우고 아침마다 스님을 만나면 “하이, 관장 스님, 굿모닝 해브 나이스 데이”라고 경쾌하게 인사하는 순남할매도 스님에겐 활력소다. 기타반 수업을 마친 순남할매가 물결무늬 원피스를 찰랑거리며 중국어교실로 향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르신, 너무 매력적이시다”며 스님이 찬탄하면, 할머니의 두 뺨은 금세 만추 홍엽처럼 물든다.

<스님의 남자친구>에 등장하는 ‘출연진’ 모두다 때로는 연인처럼, 도반처럼 가족이나 식구처럼 애틋하고 아련한 스님의 남자친구들이다. 어르신들 뿐 아니라 19개월 걸음마 부처님도 있고 엄마보다 먼저 떠난 가슴 시린 동진씨도 있고 사계절 요양원을 지키는 철순이도 있다. 물론 진짜 남친도 있다. 

스님이 사는 절 죽림정사 아랫마을에서 날마다 “스님~”하며 뛰어들어오는 중학생 영준이다. 일광스님의 남자친구로 유명한 녀석이다. 자기 말을 들어준 유일한 분이 스님이라며 시시때때로 절에 와서 조잘조잘대는 수다쟁이다. “스님 남자친구는 잘 커가고 있나요? 호호.” 일광스님의 절친한 도반이 어느날 카톡으로 남친의 안부를 물었단다. 일광스님은 지체없이 ‘칼답’을 날렸다. “그 놈 군대갔어요. 그래서 새 남친 물색중입니다. 흐흐.”

▬ <스님의 남자친구> 속 ‘명대사’

“가난하고 서러운 삶의 구비마다 부처님은 친정어머니였고 남편이었고 스승이었다”

“지금 바로 내 앞에 있는 사람. 언젠가는 볼 수 없을 그 사람에게 오늘 마음을 다해야겠다”“내가 경험했듯 말랑말랑한 청소년기에 부처님을 만나고 자기 내면을 바라보는 일은 그 어떤 이성 친구를 사귀는 일보다 더없이 설레고 찬란한 일이다”

“윤달 가사불사 한다는 소식에 그저 가사만 넙죽 받아 입을 것이 아니라 수행과 정진력에서 풍기는 위엄과 자비로움을 드리우고 있는지 다른 이의 복전이 되고 있는지 점검할 일이다”

“이 세상 부모님들은 어째서 자식에게 만사가 다 미안하고 죄인이어야 하는가. 그 어려운 시절 살아오면서 자식을 내치지 않고 키운 공(功)은 자취도 없고, 보고 싶으니 한번 다녀가란 기별조차 무엇이 미안해 못하시는 걸까”

“차는 폐차 처리된다고 통보해 왔다. 나는 살리고 너는 가는구나. 수십만 킬로의 길 위에서 묵언과 독백을 들어준 어진 동무였는데”

“김치 한 조각 얹어 식구들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일, 내 손으로 내 몸을 씻고 닦을 수 있는 사사로운 일, 평소와 다름없이 출퇴근을 하고 별다를 것 없는 지루한 일상을 허투루 여길 일이 아니다”

“살면서 내 생각만 가지고 곡해(曲解)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혼자 괜한 번뇌 망상으로 속 끓이지 말고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면서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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