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불교조각 연구 기준작

장곡사 하대웅전에 봉안된 보물 337호 금동약사여래좌상.

1346년에 조성된 청양 장곡사 하대웅전에 봉안된 보물 337호 금동약사여래좌상은 14세기 불교조각 연구의 기준작으로 평가된다. 높이 88cm의 불상은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왼손에 약합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임을 알 수 있다.

불두를 보면 나발에 육계가 둥글고 크며 수정을 박아 중간계주를 표현했다. 갸름한 얼굴에 반원형 눈썹 사이에는 백호가 있다. 눈은 반개했으며 눈동자는 아래쪽을 향하고 있다. 눈썹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콧대가 또렷하며 인중이 비교적 길다. 꽉 다문 입술은 코에 비해 작아 보인다. 편삼 위에 양쪽 어깨를 법의로 덮은 변형통견의를 하고 있다. 가슴 왼쪽에는 장식이 섬세하게 표현돼 있는데 정면에서는 약합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가슴 아래는 내의 위에 리본처럼 묶은 매듭도 있다.

장곡사 금동약사불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복장유물 때문이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복장유물조사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지나, 상대웅전에 봉안된 철조약사여래좌상과 하대웅전 금동약사여래좌상의 복장이 비슷한 시기에 개봉되고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원 복장물이 그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복장유물 조사 당시 수습된 발원문과, 지정6년(至正六年)이 적힌 백지묵서에서 1346년(고려 충목왕 2)에 불상이 조성됐음이 확인됐다. 특히 세로 47.8cm, 가로 1058cm에 달하는 붉은 비단에 쓰인 발원문은 약사여래 조성의 의미와 함께 1000여 명이 넘는 시주자 이름이 수기로 적혀 있다. 발원문 끝부분에는 시주자 이름과 발원을 적은 천을 붙이기도 했는데 여느 발원문에서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형태라 눈길을 끈다. 정은우 동아대 교수와 신은제 동아대 박사가 쓴 <고려의 성물, 불복장>에 따르면 시주자들은 대체로 5품직 이하인 하위관직자이며 전체 관직자 13명 가운데 9명이 무신이다. 29명의 군부인(郡夫人)이 참여했는데, 최소 6품 이상 관직자의 모친이나 부인이 발원자로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10m가 넘는 복장발원문은 <직지>를 편찬한 백운화상이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연식 동국대 교수는 논문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의 신앙내용과 제작 주체’에서 발원문 내용과 발원문을 작성한 백운스님에 주목했다. 최 교수는 “불상 조성에 참여한 사람들은 개인의 장수와 극락정토 왕생을 가장 적극적으로 소망하고 있었다”며 “당시 고려인들이 약사여래에 대해 생전과 사후의 중요한 어려움을 의지하는 친근한 신앙 대상으로 파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발원문 말미에 적힌 ‘친전사(親傳師) 백운(白雲)’의 주인공을 백운경한스님으로 봤다. 백운스님은 고려말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을 엮은 스님이기도 하다. 

정은우 교수는 논문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과 복장유물의 내력과 특징’에서 “금동약사여래좌상은 고려적으로 정형화된 여래상으로 우수한 조형성을 보이는 점에서도 그 가치가 인정되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몸 안에서 나온 복장물을 통해 1346년이라는 제작연대가 밝혀졌기 때문”이라며 “고려 후기 14세기의 불상 편년에 기준작이 되고 있으며 불교조각 연구에 가장 기준이 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불교신문3413호/2018년8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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