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 주택가 골목에서 싸우는 소리가 났다. 화가 난 남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하도커서 건너편 우리 아파트까지 진동했다. 무슨 큰일이 났나 싶어 나도 베란다에서 목을 빼고 내다봤다. 언뜻, 흥분한 남자가 트럭에서 내려 연립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였다. 뭐가 그리 분한지 남자는 내 쪽에선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소리를 지르며 큰 사단이라도 낼 듯 으르렁 거렸다. 가만 들어보니 이유인즉, 좁은 골목에서 트럭과 승용차가 딱 마주쳤는데 어느 한쪽도 후진해서 양보할 생각이 없는 것이었다.

“내가 먼저 진입했다.” “네가 빼라. 싫다, 나도 못 뺀다.” “그럼 맘대로 해라. 날도 더운데 너 오늘 잘 걸렸다.” 대강 이런 성난 말들이 오갔다. 말의 수위는 점점 높아가고 골목길 분위기는 아슬아슬했다. 두 차는 몇 분이 지나도 여전히 팽팽하게 맞섰고 결국 멱살잡이 직전에야 경찰까지 출동한 후 상황은 수습되는 듯 했다.

나는 그날 오후가 되어도 두 차가 팽팽히 맞서는 장면이 가시지 않았다. 누가 이겼는지 결과도 모른다. 죽어도 후진하지 않겠다던 트럭과 승용차 주인들의 분노. 당신의 차가 내 앞을 가로막은 것. 그것이 과연 그렇게까지 분노할 만한 일인가 나는 알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삶은 늘 이런 상황 속에 내던져져 있다. 실상 내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하다못해 골목에서 만난 차까지 이런 지경이라니. 인생의 많은 변수 중 그 아무 것도 아닌 일을 두 차는 결국 ‘큰 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과연 차를 후진해서 양보하면 지는 걸까. 좁은 골목에서 두 차가 마주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가정이겠지만 어쩌랴, 일단 상황은 일어나고야 만 것을. 그렇다면 그 인연을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을까. 상대방이 비켜주면 감사한 일이고, 만약 그가 그럴 의사가 없다면 내가 비키면 된다. 그랬다면 상황 종료! 진리는 언제나 쉽고 단순하다. 

작은 양보가 우주를 돌고 돌아 오히려 절대적으로 이긴다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더 많은 것이 그 아름다운 양보를 지켜봤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면. 그 하나 때문에 그들은 열 가지, 스무 가지,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수천만 가지를 잃었다. 좋건 싫건 오늘 만난 인연을 저항하지 않고 편안히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부처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인연과보가 아닐까. 작은 일에도 부르르 떨며 분노하는 순간마다 업은 자꾸 쌓여간다. 그들이 대치한 시간은 골목을 이미 수천 번은 지나가고도 남았을 시간이기도 했다.

[불교신문3413호/2018년8월8일자] 

전은숙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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