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 애환과 삶의 모습 효과적으로 표현

 

양나라 무제 때 수륙재 시작돼
송대 이르러 수륙화 다수 제작

고려 광종 수륙도량 처음 개설
선종 때 보제사에 수륙당 건립
고려부터 감로도 조성했을 것

현재 16세기 이후 작품만 전해
인간세 적나라하게 담아내어
불화와 달리 풍속화 연상시켜

1701년 조성된 남장사 감로도에는 창칼과 활은 물론 총으로 싸우는 장면이 묘사돼 있는데 임진왜란 등 전쟁의 공포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커다란 제상 위에 수북하게 차려진 오곡백과와 백미, 밥그릇을 들고 먹을 것을 간청하는 아귀, 술에 취하여 술병을 휘두르며 싸움질하는 남정네들, 호랑이에게 밟혀 죽어가는 사람, 높은 장대 위에 올라가 줄타기하는 광대와 죽방울놀이하는 사람들, 굿판을 벌여놓고 한창 신명이 나서 춤추는 무당, 독경하고 승무를 추며 재 지내는 스님들, 봇짐지고 아이를 업은 채 허름한 수레 위에 살림살이를 싣고 길 떠나는 가족… 풍속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러한 모습은, 그러나 풍속화 속의 한 장면이 아니다. 바로 대웅전이나 극락전 등에 봉안되어 있는 감로도(甘露圖)의 한 장면이다. 

중앙에 그려진 본존을 중심으로 많은 권속들이 둘러싸는 형식의 일반 불화와 달리 마치 풍속화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장면들로 구성된 이 불화는 감로도이다. 지옥에 빠진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고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는 영가천도 의식인 수륙재(水陸齋)의 모습을 묘사했다. 아귀도(餓鬼道)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중생에게 감로미(甘露味)를 베풀어 극락에 왕생케 한다는 뜻에서 감로도라고 하며, 영혼을 위무하는 내용을 그렸다고 해서 영단탱화(靈壇幀畵)라고도 부른다.

중국에서는 양나라 무제(재위 502〜549) 때 처음 수륙재가 시작되었으며, 송대에 이르러 동천(東川)이 <수륙문(水陸文)> 3권을 지어 널리 보급함으로써 수륙재가 크게 성행하였으며, 이에 따라 수륙화가 다수 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광종 21년(970년) 갈양사에서 수륙도량이 처음 개설되었으며, 선종(재위 1083~1094) 때에는 최사겸(崔士謙)이 수륙재의 의식절차를 적어놓은 <수륙의문(水陸儀文)>을 송나라에서 구해 온 것을 계기로 보제사에 수륙당을 새로 세웠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고려시대에 감로도가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오늘날 전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16세기 이후의 것들이다. 

조선시대는 불교를 억압하여 많은 불교 의식들이 중단되거나 축소되었지만, 태조는 진관사를 국행수륙재(國行水陸齋)를 여는 사찰로 지정하여 크게 재의를 행하였다. 수륙재는 대체로 1515년(중종 10)경까지 크게 변동됨이 없이 계속되었다. 특히 중종대(재위 1506〜1544년) 이후 상류계층에 배불(排佛)의 풍조가 대두되면서, 민중들 사이에 성행하기 시작한 시식(施食), 존시식(尊施食) 등의 제사문화가 불교의례에 영향을 주면서 무주고혼(無主孤魂)의 영가천도를 위하여 열리는 수륙재도 활발하게 개설되었다. 절에서 이러한 의식을 행할 때는 감로도를 걸어놓고 그 아래에서 재를 지내곤 하였으므로, 조선 중기 이후 감로도의 제작이 성행하였다. 

감로도는 보통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단에는 극락의 아미타불 일행과 7여래(다보여래·보승여래·묘색신여래·광박신여래·이포외여래·감로왕여래·아미타여래) 또는 5여래가 지옥중생을 맞으러 오는 장면이 표현돼 있다. 화면 좌측에는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이 천의(天衣)를 휘날리며 번(幡)을 들고 극락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는 장면, 우측에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구름을 타고 하강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중단에는 성대하게 차려진 성반(盛飯)을 중심으로 그 아래에 목이 가늘어 먹을 것이 있어도 먹지 못하는 아귀와 범패승(梵唄僧)들이 시식의례(施食儀禮)를 행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아귀는 1쌍 혹은 1구가 묘사되곤 하는데, 목련존자가 자신의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귀도에 빠져 먹지 못하는 고통을 당함에 밥그릇에 밥을 담아 공양하였더니 음식이 모두 불꽃으로 변하였다는 <우란분경>의 장면을 보여주는 듯, 입에서 불꽃을 내뿜고 있다. 때로는 목이 가늘고 배가 산만한 아귀들이 밥그릇을 들고 서로 다투며 먹을 것을 청하는 모습도 보인다. 

보통 화면의 왼쪽에 그려지는 의식장면은 스님들이 모여 독경을 하거나 법고·요령·바라 등을 들고 의식을 행하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남장사 감로도(1701년)에는 작법승의 바라춤을 중심으로 소금(小金)과 북을 두드리는 비구들이 늘어서 있고 앞쪽에는 금강령을 쥐고 염불하는 승려들이 그려져 있는데, 그 옆에 ‘용상대덕갈마회(龍象大德哲摩會)’라는 방제가 적혀있어 이 의식이 밀교의례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1939년에 제작된 흥천사 감로도에는 바라춤을 추는 작법승과 흰 옷에 노란 고깔을 쓰고 승무를 추는 승려를 실감나게 묘사하여 마치 현장에서 그 모습을 보는 듯하다.

감로도에서 가장 흥미 있는 부분은 바로 하단부분이다. 하단부에는 지옥(地獄)ㆍ아귀(餓鬼)ㆍ축생(畜生)ㆍ아수라(阿修羅)ㆍ인간(人間)ㆍ천상(天上) 등 육도(六道)의 세계가 묘사되고 있다. 이는 중생들의 육도윤회 과정을 표현하면서 이들에게 법식을 베푼다고 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육도중생의 묘사기법과 표현양식이 그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어 주목된다. 여수 흥국사 감로도(1741년)에는 무려 66가지의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다. 집이 없어 정처 없이 떠돌다가 죽는 모습을 비롯하여 침을 잘못 놓아 죽는 모습, 자신을 칼로 찔러 자살하는 장면, 재물을 지키다가 죽는 장면, 간통죄로 벌 받아 죽는 모습, 노비가 주인을 죽이고 주인이 노비를 죽이는 모습, 남사당이 줄 타다 떨어져 죽는 모습, 들불에 타서, 강물에 빠져, 우물에 빠져, 말에 치여 죽는 모습 등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여러 형태로 죽은 망령과 지옥에서 고통 받는 망령들이 중단의 천도의식을 통해 불보살의 영접을 받아 극락에 왕생한다는 정토왕생사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목이 가늘어 먹을 것이 있어도 먹지 못하는 아귀.해인사 감로도 부분.

수국사 감로도(1832년)를 비롯하여 수락산 흥국사 감로도(1868년), 불암사 감로도(1890년), 흥천사(1939년) 등 서울, 경기지역에서 19, 20세기에 제작된 감로도는 전 시대에 비해 더욱 더 풍속적인 장면이 많이 눈에 띈다. 흥국사 감로도(1868년)에서는 대장간의 모습을 비롯하여 무당의 굿 장면, 엿장수, 생선장수, 참외장수, 포목장수, 칼 가는 사람, 주막집 등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속장면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대장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조선후기 풍속화가 김득신(金得臣)의 대장간 그림을 연상케 하며, 2~3사람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주막에서 술을 마시며 환담하는 모습이라든가 음식을 가득 차려놓고 굿판을 벌이는 모습, 한량과 기생의 모습 등은 당시 서민들의 일상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대부분 등장인물들은 중국식 복식이 아닌 한복을 입은 사람들로 그려져 마치 조선후기 풍속화를 보는 듯하다. 서울 흥천사의 감로도(1939년)는 시대적 상황을 가장 잘 반영한 작품 중 하나이다. 근대서양화기법을 이용하여 20세기 전반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표현하였다. 기존의 감로도에서 보이는 죽음의 장면 이외에 꽁꽁 얼은 강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 양복을 입은 직원이 전봇대 위에 올라가 일하는 모습, 많은 방청객이 운집한 가운데 재판정에서 재판하는 모습, 전당포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조련사의 채찍에 따라 묘기를 부리는 코끼리와 이를 지켜보는 많은 관람객들, 여행을 떠나기 위해 자동차를 기다리는 가족, 신식건물이 늘어선 길거리에 전차가 지나는 모습 등 그야말로 1930년대의 근대화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인간세의 다양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아냄으로써 풍속화적인 성격을 짙게 띠고 있는 감로도는 그야말로 한국적 불화이자 풍속화이다. 아울러 연면히 이어져 온 서민들의 애환과 삶의 모습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불교신문3413호/2018년8월8일자] 

김정희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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