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 피는 우물은 나만의 보물창고

우물 속 깊이 얼굴을 묻고, 아무개야 소리치면

아무개야 메아리지며 달려오는 발소리,

아무개야 아무개야 아무개야 부르면

우물 속 낮달 거울에 어리는 얼굴,

아무개야 아무개야 아무개야 목이 메이면

내 가슴 속 우물에도 참방참방 솟아오르는

그리운 얼굴, 

살구꽃 황홀한 꽃잔치 한마당.

-박제천 시 ‘첫사랑 엽서’에서

활짝 핀 살구꽃이 우물의 수면에 비친다. 꽃의 빛깔로 눈이 부시도록 환한, 또 차갑고 맑고 푸른 우물물이 샘솟는 그 공간은 첫사랑의 기억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공간이다. 아직도 아무개야, 하고 부르면 그 첫사랑 아무개가 우물의 수면에 설핏 비치어 보인다. 첫사랑 아무개의 얼굴이 어른어른한다. 그 얼굴은 어릿어릿할 정도로 찬란하다. 

그리하여 아무개야, 하고 부르면 내 가슴은 아직도 감정이 북받쳐 솟아오른다. 이렇듯 첫사랑의 이름은 우리들의 가슴에 오래 간직된다. 잊히지 않고, 그때 그 풋풋한 얼굴로 우리들을 설레게 한다. 첫사랑의 이름이 우리들의 가슴 속에 간직되어 있는 한, 우리는 꽃 핀 살구나무요, 깨끗한 물이 마르지 않는 깊고 큰 우물이다.

[불교신문3412호/2018년7월28일자]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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