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강원(승가대학) 도반들을 오랜 만에 만나 정겨운 대화를 나누었다. 강원에서 4년이란 세월을 동고동락해서인가? 십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이물 없이 쏟아내는 이야기 속에는 어떤 형식과 법칙에 의해서 움직여지지 않는 관계의 감수성을 잘 익힌 구수한 맛이 났다.

어찌 보면, 각자 다른 꿈을 꾸는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것은 각기 다른 재료를 써서 음식을 만드는 일과 흡사하다. 재료의 특성에 맞게 어느 것을 먼저 볶고 어느 시점에 데치고 얼마나 푹 우려내고 등등. 상대보다 너무 뜨거워 있어도, 상대보다 너무 시들해 있어도, 상대보다 너무 빨리 끓어도 대화의 맛이 죽는다. 자신의 대사를 치고 들어가는 시점도 중요하다. 대화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며 양념을 추가하며 맛을 살려내야 훌륭한 대화가라 할 수 있겠다. 그러려면 먼저 상대의 얘기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자신과의 독백은 사골음식처럼 진국의 맛을 내는 기초 작업이다. 그렇게 자신만의 맛을 잘 우려내어 깊은 맛을 간직해도 좋겠다. 또는 장시간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치면서 언제든지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밑반찬이 되어도 좋겠다. 그래서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아! 맛있는 대화라고 느낄 수 있도록, 게다가 깊은 맛의 여운까지.

훌륭한 일품요리에 잘 된 밥과 김치와 나물은 절대적인 콜라보레이션이니까 굳이 메인 요리,일품 요리가 되려 할 필요는 없다. 밑반찬의 역할을 잘 해내는 수수함의 공헌이 더 독보적일 수 있다. 그런 대화의 흐름은 서로에게 힘이 된다. 맛난 밥을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불교신문3412호/2018년7월28일자] 

선우스님 서울 금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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