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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2 (2018).10.1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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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에세이] 한낮의 연꽃

언제나 떠날 수 있고 
멈출 수 있는 삶의 여정에 
애착이라니 
온실에서 피어난 꽃은 
들판에서 비바람을 
견뎌내지 못한다

한낮의 연꽃은 물길을 걷고 
나는 길 위에 서 있다… 

연잎이 흔들린다. 바람소리에 놀랐나? 아니 뜨거운 태양에 몸을 데었을 것이다. 분홍빛 꽃잎은 불길을 피워내는 듯 펄럭인다. 작은 꽃봉오리들도 불을 머금은 듯 움츠린다. 깊은 수렁에서 꽃잎은 스러지고 꽃봉오리는 피어난다. 연꽃을 보면 우리의 삶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어 늘 마음이 애잔하다. 그런데 오늘은 애잔한 마음보다는 뜨거움에 놀라 가슴에 손을 댔다. 순간, 근래에 들어 소식을 끊은 영선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가끔 딸에게 전화를 걸어보지만 반응이 없다. 무엇에 서운함을 느꼈는지, 10년 넘게 살갑기만 하던 아이가 지금은 아예 인연을 끊고 살자는 것 같다. 이제는 혼자 살 수 있는 능력이 되었다 싶어 한 편으로는 잘 된 일이라고, 애써 태연한 척 하면서도 오늘처럼 새벽에 문득 잠을 깨고 나면 부질없는 걱정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자식 일이라 누군가에게 터놓고 하소연을 할 수도 없고, 다른 자식들과 상의할 수도 없다. 그 아이들이야 자기들 사는 일이 급하다 보니 나와의 소통은 건성일 것이다. 나 역시 부모님 살아생전에 내가 했던 일을 생각하면 내 자식들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냥 인생이 덧없음만 느낄 뿐이다.

일찍이 아들 내외와 함께 살다가 서로의 마음을 다치는 일보다는 각자 사는 일이 현명할 것 같아서 독립선언을 외쳤다. 서울에서 가까운 강화도에 터전을 잡았지만 가끔은 혼자라는 게 쓸쓸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읊조리며 서운한 마음을 금방 털어버리곤 하다가도 슬그머니 핸드폰을 열어보고, 괜히 전화라도 걸어볼까 하다가는 그쪽 사정을 이런저런 눈치로 시간만 제보다 포기해 버릴 때도 있다.

요즘은 혼족이 유행이라지만 막상 혼자 지내다 보면 스스로의 마음을 갉아먹는 일이 많다. 사람이 소심해지고 미루어 짐작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엉뚱한 상상력으로 아이들을 원망하게 된다. 그때마다 산책을 핑계로 집 밖을 나서면, 다행히 강화는 산과 바다와 들판이 함께 어우러져 일단 눈이 풍요롭다. 한밤중에도 어둔 밤하늘에 홀로 반짝이는 별을 보면 내가 빛나는 것처럼 마음이 맑아진다. 더구나 자연이 주는 선물은 나를 깨우치는 지혜여서 ‘혼자’가 느끼는 텅 빈 그 자리의 여운에 새로운 삶의 질서를 나열하게 된다. 그 질서 속에서 ‘사랑이 아름다운 건 슬픔 때문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오늘도 새벽오솔길을 걸으며 신발에 붙어 엉키는 엉겅퀴를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하찮은 풀 한 포기도 소중하게 여겨지는 마음의 풍요가 하늘로 향하고 그 눈길은 저절로 바다에 머문다. 때로 갯벌에 이를 때면 지나온 내 삶의 여정을 보는 것 같아 놀랍고 신비로워 가슴이 뭉클해진다.

오늘을 산다는 것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라 했던가, 나에게도 오늘이 중요하니 내가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도 내 생의 단면이며 내 마음의 소리가 분명할 것이다. 불교에서의 깨우침도 우주와 자연, 사물과 내가 둘이 아닌 하나, 일여(一如)의 경지를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한낮의 연꽃은 물길을 걷고 나는 길 위에 서 있다. 언제나 떠날 수 있고 멈출 수 있는 삶의 여정에 애착이라니, 온실에서 피어난 꽃은 들판에서 비바람을 견뎌내지 못한다. 설사 자식이 진흙탕 길을 건넌다 해도 이제는 손을 내밀 수도 없는 처지가 아닌가, 정작 내민다 한들 내 손은 이미 오그라들어 그 손을 잡지 못할 테니까…. 

[불교신문3411호/2018년7월25일자] 

안혜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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