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고, “세 치 혀가 사람 잡는다”는 말도 있듯이 할 말과 못할 말을 가려서 말을 참답게 하라고 하는 말씀 잘 새겨들었어요. 그런데 거짓말은 어떤 거짓말이나 참답지 않은가요?

사실을 깨우쳐 슬픔을 떨치고 
살아갈 수 있게 한 거짓말은 
더없이 참다운 말이 아닐까…

A 꼭 그렇지만은 않아.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 코살라국 수도 슈라바스티에 말라깽이 고타미라는 여성이 살고 있었어. 이 여성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어. 좀처럼 아기가 생기지 않아 오래도록 마음고생을 하다가 아주 어렵사리 얻는 아이였지. 그랬기에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끔찍이 아꼈어.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여운 아이가 갑자기 죽고 말았던 거야. 고타미는 아이 주검을 쓸어안고 아이를 살려달라며 미친 듯이 거리를 쏘다녔어. 어떤 이가 부처님이라면 어쩌면 아이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했어. 이 말을 듣고 단걸음에 부처님을 찾아간 고타미는 아이를 살려달라고 빌었어. 부처님은 아이를 살려줄 테니 아이에게 먹일 약에 쓰일 겨자씨를 얻어오라고 하셔. 다만 그 씨앗은 이제까지 죽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집에서 얻어 와야 한다고 했어. 

고타미는 마을로 내려가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물었어. “혹시 집안 식구들 가운데 죽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데 어느 집을 가릴 것 없이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은 없었어. 어떤 이는 남편이 죽고, 어떤 집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떤 집은 아이가 죽었다고 했어. 하루 종일 헤매고 다니는 사이에 고타미는 마음이 조금 조금씩 누그러졌어. 슬픔에 겨워 몸부림치는 사람이 저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거야. ‘아, 사람들은 너나들이 저마다 아픔에 겨워하며 슬픔을 삭이면서 살아가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터덜터덜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왔어. 

“겨자씨를 얻어가지고 오셨소?”

“아니오,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이제 약은 없어도 됩니다. 이 아이를 다비(화장)하겠습니다.”

아이를 다비한 고타미는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어. 

여기서 짚어보자. 아이를 살려주겠다는 부처님 말씀은 참말이었을까? 부처님은 고타미에게 사람은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어 슬픔을 떨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려고 하얀 거짓말을 하신 것이야. 그렇지만 더없이 참다운 말씀이 아닐 수 없어. 이처럼 말하기는 소리라는 그릇에 마음을 담아 듣는 이에게 건네는 연장이야. 윤리를 담은 고운 마음을 양심이라고도 하고 사람됨이라고도 해. 윤리가 담기지 않은 말하기란 얼빠진 말하기이지. 

[불교신문3410호/2018년7월21일자] 

변택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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