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철 작가, 8월말까지 ‘설리구진(雪裏求真)’ 展

'눈속에서 참 진을 찾는다' 8.

몽골 초원 테렐지 머물며
5월 이른 새벽 설원에서
만난 찰라의 눈(雪) 풍경 보며
‘진리의 눈(目)’ 뜨며 대상 포착
앵글에 담은 20점 선보여

폭염이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는 요즘 서울 강남에 가면 설원에서 진리를 찾아 나선 중견 사진작가의 구도행으로 탄생한 사진을 감상하며 더위를 날릴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영주 부석사의 사계를 앵글에 담아 온 중견 사진작가 이규철씨가 자신의 일곱 번 째 개인전 ‘눈 속에서 참 진을 찾는다 - 설리구진(雪裏求真)’전을  8월 31일까지 서울 논현동 라이카스토어강남에서 열고 있다.

이 작가는 2011년부터 세 차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북동쪽 75㎞의 테렐지를 찾았다. 몽골의 국립공원이기도 한 이 곳은 삼림과 괴석, 강물과 야생화 군락지를 품은 드넓은 초원지대다. 그 곳에서 머물던 5월 어느 날 게르에서 나오면서 설원(雪原)을 만난다.

“우여곡절의 사건들로 테렐지에 숨어들었다. 적막의 테렐지, 고요의 테렐지, 별들의 테렐지 몽골리아는 거의 그러하다. 오월의 이른 새벽 게르 문을 열어 내다본 눈 덮인 테렐지. 어제 보았던 그곳이 아니었다. 비현실의 이불로 포근히 잠자고 있었다. 살금살금 다가가 말의 지친 걸음, 포르르 날아오르는 새들의 지저귐, 어미를 찾는 어린 양의 간헐적 울음, 나무와 나무 사이에 머무른 낙타들, 사람이 그 풍경으로 살며 스쳐가는 극명함(!)을 훔친다. 훔치려 하지 않았건만 훔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풍경 속에 있지 않았기에 길 떠나와 머물다 가는 지친 사진가이다. 오월의 눈은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풍경은 이내 겨울에서 봄으로 돌아와 풍경이 있고 풍경이 없음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남기고 갔다.”

몽골 설원에서 그의 눈(目)에 맞닥뜨린 눈(雪)은 초원의 단순한 눈(雪)이 아니었다. 찰라에 멸(滅)하고 찰라에 생(生)하는 삼라만상의 이치였다. 모든 존재는 대지와 우주와 서로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가 한 순간 눈(雪)의 형태로 결정지어 대지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 그가 설원에서 만난 찰라의 눈(雪)은 이 세상의 모든 진리가 ‘순간에 생하고 순간에 멸한다’는 ‘진리의 결정체’였다.

'눈속에서 참 진을 찾는다' 1.

그 진리를 만난 사진작가의 가슴은 뛰었고, 대지에 경의 표했다. 마치 불자들이 부처님 전에 삼배의 정례를 올리고, 기독교 신자들이 하나님 성전에 예배를 올리듯이 진리를 온 몸으로 받아들였다. 사진작가에게 종교적인 의식과도 같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작업은 셔터를 누르 일. 

그 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사진작가의 셔터는 수 없이 눌러졌다. 그러한 성스런 의식(?)으로 나온 사진이 이번에 출품된 20점이다.

“‘눈에 보이는 이면에 무엇이 있지 않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특히 몽골에서는 그런 생각이 더욱 들었어요. 왜냐면 거기에 가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아무것도 없으니 존재하는 것들이 의미 있게 다가왔어요. 꽃 한송이 말똥 하나가 소중히 보였어요. 그 사건을 계기로 사진작업을 하는 생각이 달라졌어요. 보이지 않는 이면을 보려고 노력하면서 그만큼 영역이 넓어졌다고 봐요.”

이규철 사진작가가 전시장 앞에 섰다.

이 작가는 특정 재적사찰을 둔 불자(佛子)는 아니지만 부모님이 불자고 자신도 사찰을 많이 다니는 직업특성상 불교를 마음 한 켠에 품고 다니는 반(半) 불자다. “사진작업을 하다 보면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이 전생부터 이어져서 내 눈앞에 마주하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불교를 잘 모르지만 숙세의 업으로 연결된 인연으로 지금 사진작가라는 직업으로 살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 작가는 사진으로 밥벌이(?)한 세월이 20여년을 훌쩍 넘는다. 그동안 그렇게 수없이 사진을 찍었으면서도 사진 찍는 일은 언제나 처음인 듯 새롭고 마음이 설렌다. “대상에 새롭게 눈을 뜨는 것 같습니다. 제 눈(眼)을 덮고 있던 막이 한 꺼풀 벗겨지는 느낌입니다. 이게 ‘사진쟁이’로 살아가게 하는 에너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작가는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며 숙세의 업으로부터 연결된 사진작업에 대한 감회를 다음과 같이 썼다. “불면의 밤이다. 지난 밤, 또 지난 시간들을 들추어본다. 무엇이 어떠하여 여기에 있나? 무엇을 찾고 있나? 송곳의 날들은 심장을 비켜가 고통으로 내몬다. 아프고 아프다. 아리고 아리다. 아직도 직업 사진가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나는 오월의 눈을 찾아 가을을 헤매고 겨울도 헤맨다.”

이규철 작가는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줄곧 사진작가의 길을 걸었다. 입대한 청년들의 생생한 병영생활을 역동적으로 담은 ‘군인, 841의 휴가’(2002), 증도의 소금밭에 어른거리는 노동과 생태를 교차시킨 ‘달빛, 소금에 머물다’(2007), 굿이라는 무속의식의 현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발원과 긴장을 포착한 ‘굿-징소리’(2014) 등 역동적이고 민초들의 땀이 배인 현장을 감수성 어린 사진작품으로 승화시켜 세상에 내놓았다. 지난 몇 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산지가람인 영주 부석사의 사계를 담으며 친 불교적인 감성을 앵글에 담아 내며 마음 다스리는 수행 아닌 수행을 하기도 했다.

'눈속에서 참 진을 찾는다' 20.
'눈속에서 참 진을 찾는다' 4.
'눈속에서 참 진을 찾는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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