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 무렵 불경을 처음 접한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사성제, 팔정도, 연기법…. 부처님께선 인간이 괴로운 이유와 그 괴로움을 소멸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하나씩 풀어 알려주셨다. 마치 어려운 수학 방정식의 해(解)를 보는 것 같았다. 몸 안에서 꿈틀대는 인간의 욕망을 모두 깨달으시고 진여의 세계로 이끌어 주신 드높은 분 세존! 

불경 속 부처님의 설법에 탄복하다보면 가끔 이런 상상에 빠진다. 만약 내가 세존께서 살아계시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부처님을 따라나섰을까. 따라나설 것이다. 현재 어딘가에 부처님 같은 분이 계시다면? 따라나설 것이다. 하지만 이내 곧 이런 질문과 답을 하는 나 자신에게 가증스러움을 느낀다. 

전에 불자의 기준이 오계를 지키는 여부에 따라서 판가름된다는 글을 보았다. 아무리 불경을 읽고 부처님을 찬탄해도 오계를 지키지 않으면 그는 불자가 아닌 것이다. 이 기준대로라면 나는 불자가 아니다. 우선 술을 마신다. 처음엔 왜 하필 술을 마시지 말라고 했는지 몰랐으나 이젠 알겠다. 술을 마시니 본심이 흔들리고 삼독에 빠지고 유혹에도 시달린다. 그래서인지 누가 종교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불자라고 대답하기가 머뭇거려진다. 왠지 불자라는 대답이 거룩하신 부처님을 훼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부처님 같은 분이 계시다면? 사실 부처님은 지금도 우리 옆에 계신다. 몇 백 미터 떨어진 도서관에, 저기 역 근처 서점에 수많은 부처님들이 꼿꼿하게 서서 무명(無明)의 중생들이 와서 손을 뻗기만을 기다리고 계신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들기 전 마지막 설법을 하셨다. 그런데 2500여년 후에 법과 계보다는 부처라는 상(像)에 매달리는 나 같은 우매한 중생이 나타날 줄 아셨나보다. 마지막 설법은 잘 알려진 대로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이다. “너희들은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에게 의지하라. 또한 법을 등불로 삼고 법에 의지하라. 이밖에 다른 것은 의지하지 마라.” 

TV를 보니 교단 안팎으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이런 때일수록 부처님의 마지막 설법이 절실한 것 같다. 오직 자신과 법에 의지해서 나아가야 한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같이 혼자서 가라.’ 

[불교신문3409호/2018년7월18일자] 

김영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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