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깨끗하여 그 무엇도 없을 수 없다면…

반야의 텅 빈 고요한 바탕에는 
갠지스강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오묘한 쓰임새를 다 갖추고 있어 

등각과 묘각의 ‘텅 빈 마음(眞空)’은 ‘부처님의 크나큰 마음(摩訶)’이니, 이 마음은 ‘모든 번뇌가 차단된 곳(雙遮)’입니다. 모든 번뇌가 차단되어 ‘온갖 시비분별이 사라진 고요한 마음자리(空寂)’입니다. 이 텅 빈 마음자리에서 부처님의 반야지혜가 저절로 흘러나오고(般若), 이 지혜의 광명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을 비추어(雙照), 온갖 존재의 실체가 묘하게 드러나니(妙有) 저절로 이 모든 것을 신령스럽게 알게 됩니다(靈知).

원문번역 : 문) <금강경>에서 “설할 만한 어떤 법도 없는 것 이를 일러 법을 설한다”라고 하였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답) 반야지혜의 바탕이 맑고 깨끗하여 그 무엇도 얻을 수 없는 것, 이를 일러 ‘설할 만한 어떤 법도 없다’라고 한다. 반야의 텅 빈 고요한 바탕에 갠지스강 모래알만큼 많은 오묘한 쓰임새를 다 갖추고 어떠한 일도 알지 못함이 없는 것, 이를 일러 ‘법을 설한다’고 한 것이니, 그러므로 “설할 만한 어떤 법도 없는 것, 이를 일러 법을 설한다”라고 한다.

강설 : ‘나’라는 모습에 집착하여 온갖 다툼 속에 살아가는 것이 중생의 삶입니다. 이런 삶은 언제나 고통과 함께하니,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비분별을 일으키는 뿌리를 철저히 끊어내야 합니다.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은 마음의 뿌리인 아상(我相)과 아상에서 비롯된, 쌍으로 대립하는 모습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끊어낸 것을 쌍차(雙遮)라고 합니다.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속으로 유입되는 온갖 시비와 번뇌를 남김없이 다 차단하여, 온갖 번뇌가 사라져 버린 텅 빈 부처님의 마음을 진공(眞空)이라고 합니다. 이 텅 빈 마음은 온갖 시비분별로 일어나는 갈등과 혼란이 사라져 고요하고 편안할 수밖에 없으니 이것을 공적(空寂)이라고 합니다. 

온갖 번뇌를 쌍차하여 텅 빈 마음인 진공이 되고, 그 마음은 편안하고 고요한 부처님의 마음인 공적이 되는 것이니, 결국 쌍차와 진공과 공적은 부처님의 마음을 드러내고자 하는 똑같은 말입니다. 중생의 분별심이 사라진 텅 빈 부처님의 마음은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중생의 언어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곳이며, 중생의 사량 분별로 헤아려 짐작할 수 있는 곳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마음자리는 설할만한 어떤 법도 없습니다. 이런 뜻을 드러내려고 <금강경>에서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수보리야, 그대는 여래께서 ‘내가 설한 법이 있다’라고, 이렇게 생각한다고 짐작하여 말하지 말라. 이런 생각을 내지 말아야 하니,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법이 있다고 하면 이는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며, 내가 말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비가 사라진 텅 빈 마음속에서는 부처님도 중생도 그 무엇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없느냐 하면 묘하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 마음속에 어떤 인연이 주어지면 인연이 주어지는 산하대지 삼라만상 온갖 것을 환하게 드러내는 묘한 쓰임새가 있습니다. 이 마음자리에서 부처님의 반야지혜가 저절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이 지혜의 광명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비추므로(雙照), 이 빛 속에서 산하대지 삼라만상 세상의 온갖 모습이 빠짐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묘하게 있게 되니(妙有) 세상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하나하나 신령스레 알게 되는 것입니다(靈知). 

이런 내용을 대주스님은 “반야지혜로 드러나기 전 마음자리의 바탕은 맑고 깨끗하여 그 무엇도 얻을 수 없으니, 이를 일러 ‘설할 만한 어떤 법도 없다’라고 한다. 하지만 이 반야의 텅 빈 고요한 바탕에는 갠지스강 모래알만큼 많은 오묘한 쓰임새를 다 갖추고 있어 어떠한 일도 알지 못할 게 없다.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어 온갖 법을 다 말할 수 있으니, 이를 일러 ‘법을 설한다’고 한다”라고 정리한 것입니다. 이런 뜻을 한마디로 금강경에서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수보리야, 설할 만한 어떤 법도 없는 것, 이를 일러 법을 설한다고 한다.”

[불교신문3408호/2018년7월14일자] 

원순스님 송광사 인월암 삽화=손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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