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의 의자와 붓다의 방석
서양 정신분석학의 핵심
프로이트 사상 중심으로
불교심리학과 접점 찾아
인간의 고통 해법 제시
“정신분석과 불교 원리
여러가지 측면서 맞닿아”
불교수행에 뿌리를 두고 있는 명상은 과학적으로 그 효능이 입증돼 종교와 국경을 초월해 우리의 삶을 한 단계 향상시키는 방편으로 자리 잡았다. 서양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불교사상을 기반으로 한 명상이 심신 안정에 효과가 있음을 주목하고 관련 심리치료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됐던 태국 유소년 축구팀 소년들과 코치의 기적적인 생환에 명상이 큰 도움이 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또 다시 명상의 가치가 입증됐다.
이런 가운데 서양의 저명한 정신분석학자와 불교학자 등 전문가 8명이 각자의 방식으로 정신분석과 불교심리학의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프로이트의 의자와 붓다의 방석>을 내놨다. 이 책은 심리학일반, 심리치료, 정신분석 분야에서 독보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프로이트의 사상을 중심으로 마음에 대한 불교적 이해가 서양의 지배적인 사유체계와 어떻게 통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동양과 서양을 관통하는 최고의 심리학적 논의와 지식을 담아 두 영역이 서로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풀어내며, 현대인들이 “왜 명상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 주목된다.
이 책은 정신분석 분야에서 40년 넘게 임상경험을 쌓은 액셀 호퍼 미국 하버드의대 교수를 비롯해 불교와 심리치료의 접점에 관한 다수의 책을 펴낸 마크 엡스타인 미국 뉴욕대 교수, 25년 동안 배리불교연구소를 이끌며 불교에 대한 학문적 이해와 명상적 통찰을 연구해온 앤드루 올렌즈키 박사, 미국의 정신분석가 니나 사벨-록클린, 10년 넘게 불교연구에 몰두한 심리학자 델리아 코스트너, 미국의 오리건 정신분석연구소 창립멤버인 제럴드 포걸 박사, 미국에서 명상학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는 세라 웨버 박사, 영국의 저명한 정신분석학자 니나 콜타트 박사의 논문을 수록했다. 저자들은 정신분석을 전공한 의사 또는 불교학자로 불교수행을 겸하고 있다.
때문에 이들은 “정신분석과 불교심리학은 태생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지만,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다는 점에서는 하나의 목표를 지향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리고 불교와 정신분석에 대한 자신들의 폭넓은 경험, 생각, 느낌들을 서술함으로써 독자들이 두 분야의 핵심적인 특징들을 세밀하게 비교할 수 있도록 이끈다.
먼저 이 책은 액셀 호퍼 교수의 “정신분석가로서 소파 뒤에서 환자의 말을 듣는 내 행위와 내가 상상하는 불교 수행자들의 명상 사이에 공통점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이는 곧 서양의 정신분석학자들이 명상과 불교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중에 하나다. 사실 서구에 명상 붐이 인 것은 꽤 오래전부터다. 명상은 이제 정신건강은 물론 의학 전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두 영역은 마음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마음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과정을 거치다보면 자연스레 마음을 알아차리게 되고 집착이 얼마나 큰 장애를 일으키는지를 깨닫게 된다. 불교 또한 정신분석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정신분석과 불교의 원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맞닿아있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이를 위해 이 책은 정신분석의 정의부터 기법, 정신분석에 대한 오해들까지 정신분석에 대한 기본적인 얼개와 구조를 보여준다. 그리고 알아차림으로만 획일화되어 있는 불교심리학의 숨은 의미와 가르침들을 면밀하게 탐구한다. 또한 ‘정신분석과 불교는 어떻게 서로를 풍요롭게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불교와 정신분석에서 가장 첨예한 논쟁거리들을 짚어본다. 그러면서 두 분야가 서로를 탐구함으로써 찾을 수 있는 인간 고통의 궁극적 해법을 제시한다.
이 책을 감수한 윤희조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 책은 정신분석과 불교의 방법론만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인 분석과 변화를 추구한다”면서 “서구심리학과 상담학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는 새 활로를 보여주고, 불교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불교의 현대적 모색을 가능케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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