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성자

배우식·김형중·강규 지음/ H

한국현대시조 지평 연
신흥사 조실 무산스님

생전 인연 깊은 문인들
뜻 모아 추모문집 출간

“큰스님의 깊은 가르침
남녀노소에 쉽게 전하길”

배우식 시조시인과 ‘강규 시인, 문학평론가인 김형중 동국대 부속 여자중학교 교장이 무산스님의 49재를 맞아 스님의 문학세계를 기리는 추모문집 <아득한 성자>를 출간했다.

“해 바라는 어둠처럼/ 우리 여기 기다려요./ 얼굴 감싼 손바닥이/ 젓는 줄도 모르고// 아들한 우리들의 성자님,/ 지금 우리 기다려요.// 달 바라는 암흑처럼/ 우리 지금 기다려요.// 땅에 디딘 발바닥이/ 아픈 줄도 모르고/ 아득한 우리들의 성자님./ 여기 우리 기다려요…” (배우식 시조시인의 시 ‘우리들의 성자님’ 중에서)

지난 5월 현대불교사의 큰 족적을 남기고 시의 세계로 홀연히 떠난 제3교구본사 신흥사 조실 설악 무산스님. 우리나라 현대시조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무산스님은 필명인 ‘오현스님’, ‘조오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문인이다. 특히 스님이 쓴 시조는 형이상학적 탐구가 빈약하기만 한 우리 시단에서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세계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깊은 형이상학적 사유의 극점을 펼쳐 보여줘 불교계 안팎의 귀감이 되고 있다. 지난 13일 신흥사에서 무산스님의 49재가 엄수된 가운데 스님과 인연이 깊은 문인들이 뜻을 모아 추모문집을 펴내 주목된다.

중앙대에서 무산스님 시조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배우식 시조시인과 ‘설악산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강규 시인, 문학평론가인 김형중 동국대 부속 여자중학교 교장은 최근 무산스님 추모집 <아득한 성자>를 출간했다. 지난 5월29일 무산스님의 영결식 전날 처음 인사를 나눴다는 이들은 스님과의 인연을 공유하다 십시일반으로 정성을 모아 추모집을 내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강규 시인은 “배우식 시인과 김형중 평론가와 객잔에 앉아 스님의 7재에 맞춰 추모집 발간을 결의했다”면서 “나는 원고의 수집과 발간까지 소임을 맡았는데, 두 학자의 원고를 보면서 큰스님의 가르침을 심득할 수 있었던 만큼 이번 추모집이 저자거리의 남녀노소에게도 쉽게 전해지리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출간 배경과 의미를 밝혔다.

추모집 제목은 무산스님의 입적소식을 접한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SNS를 통해 언급하기도 했던 시집 <아득한 성자>와 같다. 수행자로서 문인으로서 스님의 삶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세 문인의 추모시와 추모사, 무산스님 선시조 따라 읽기, 무산스님의 영결식과 다비장 모습을 담은 사진 등이 실려 있다. “설악의 안개처럼 고요하시다/ 가늠할만한 기쁨과 슬픔을 넘어 고요하시다// 아리랑이로 허수아비로 이름 짖지 않아도// 무명의 매듭조차 보이지 않아 더더욱 고요하시다/ 할아비의 눈빛으로 고요하시다…” (강규 시인의 시 ‘고요하시다’ 중에서) “동자승이 배가 고파서 문둥이 동굴에서 살았데요/ 할매 문둥이 고름도 짜주고/ 문둥이 뒤치다꺼리 하다가/ 진짜 문둥이 되었데요…동자승은 손톱이 빠지고/ 발톱이 빠지고/ 눈썹이 빠지고/ 삼독심이 빠지고/ 더 이상 빠질 것도 비울 것도 없는 걸사(乞士) 비구(比丘)가 되었데요/ 설악산 진문둥이 큰스님이 되었데요.”(김형중 평론가의 시 ‘설악 오현 큰스님’)

문인들의 추모시와 함께 무산스님이 배우식 시인과 승속을 초월해 ‘부자의 연’을 맺은 일화도 눈에 띈다. 배 시인은 고백의 글을 통해 “2013년 9월 어느 날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산책을 하는 중 큰스님께서 갑자기 나의 손을 잡으면서 ‘이제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얼떨결에 ‘네’하고 대답하고는 큰스님의 그 말씀을 얼른 마음속 연꽃잎으로 싸서 가슴 깊숙이 묻어두었다“면서 ”지난 5월 큰스님과 마지막 이별의 순간에 큰스님께서는 나의 귀에 대고 ‘그동안 고마웠다. 아들아…’라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나는 그 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터트리며 작은 목소리로 ‘아버지’라고 불렀다”고 애틋한 사연을 전했다.

이어 “큰스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분별대상이 없는 평등불변의 무연자비를 베푸신 분”이라며 “그런 자비를 나에게도 베푸셨고, 큰스님께서 내게 말씀하신 ‘아들’이라는 말은 무연자비의 대상 중에서 그래도 조금은 각별한 존재로 생각하신 나를 상징하는 ‘내 이름’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남다른 의미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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