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공양 후 신도 몇 분과 시내 야외음악회에 갔다. 삼척시에서 매달 후원하는 음악회의 이번 공연은 다섯 명으로 구성된 밴드였는데 실력들이 꽤 탄탄했다. 오백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관동제일 누각인 죽서루를 배경으로 펼쳐진 음악회는, 별빛과 어우러져 여름밤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특히 굵직한 첼로의 저음과, 간장을 녹이는 듯한 해금의 절절한 음색이 앙상블이 되어 음악회 내내 심금을 울렸다. 

선방 다닐 때다. 경주 덕동호 최상류에서 초가집을 짓고, 수행자처럼 살아가고 있는 거사님과 인연이 있어 가끔 들렀었다. 음악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생각난 듯 지난 이야기를 해주셨다. 어느 달빛 환한 여름날 밤, 촛불 하나 밝혀놓고 카잘스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첼로 조곡’을 LP판으로 듣고 있는데, 주변이 반짝거려서 둘러보니 수많은 반딧불이가 몰려와 같이 음악을 듣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명연주가 반딧불이의 심금을 울려 불러 모으지 않았겠냐는 것이었다. 

부처님의 제자 중에 ‘스로오나’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고행을 통한 수행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깨달음의 길이 보이지 않자 몸이 지치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를 본 부처님께서 그에게 ‘거문고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거문고의 줄은 팽팽해도 너무 느슨해도 소리가 잘 나지 않는다. 수행도 이와 같이 몸과 마음이 어울려 알맞게 해야 하느니라” 심금을 울리는 부처님의 말씀에 스로오나는 닫혀있던 마음이 열리게 되었다. 

‘심금(心琴)을 울리다’라는 말은 ‘마음의 거문고’를 울린다는 말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과연 몇 번이나 심금이 울린 적이 있는가? 또한 누구에게 심금을 울린 적이 있는가? 알맞게 조율이 잘된 거문고가 심금을 울리듯이, 살아가면서 인연되는 모든 것이 내 마음의 조율에 따라 심금을 울리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영혼의 떨림, 그 ‘설렘’과 ‘울림’이 많을수록 우리 삶은 더욱 다채롭고 넉넉해질 것이다.

[불교신문3408호/2018년7월14일자] 

동은스님 삼척 천은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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