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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도전해 나눔 실천하는 CEO 되겠다”대구 고려건설 장세철 회장 - 제9교구 동화사신도회장
  • 대구 = 여태동 기자
  • 승인 2018.07.1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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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을 통해 나오는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는 고려건설 회장이자 동화사 신도회장을 맡고 있는 장세철 회장. 사진 = 박광호 대구경북지사장

경북 청도 출신의 모태 불자
대구서 성장하며 사찰과 인연
우연한 인연으로 경영과 정치
CEO로 돌아와 건설회사 경영
기업이익 사회 환원과 보시
‘一切唯心造’ 등불로 삼아
‘풀비체’ 한국 제1브랜드 만들어
불교와 사회발전 일조하고파

사무실은 그리 넓지 않았다. 건물 3층 일부와 6층 전부를 사용한다고 했다. 8600억여 원의 매출을 내는 그것도 6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회사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일하는 직원들의 눈빛은 형형(熒熒)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군율이 살아 있는 야전사령부 같았다. 이 곳이 제9교구본사 동화사 신도회장인 장세철 회장(蔣世哲, 57)이 일하고 있는 공간이었다.

산문 밖의 대표 명함은 고려건설 회장이다. 두 곳에서 회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지만 사회에서는 독도 바르게 알기 운동본부 회장, 한국 생활문화예술단체 총연합회 회장, 대구광역시 씨름협회 회장, 경북경영자총연합회 부회장, 영남대학교 총동창회 부회장, 과학선현 장영실선생 추모재단 성역화사업 추진위원장 등 명함도 여럿 있었다. 그만큼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수행비서들의 안내에 따라 회장실을 찾았다. 그곳에는 회사 관계자들과 외부 관련업체 실무자들이 미팅을 위해 줄을 서 있었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회장실의 문이 열렸다. 장 회장을 보는 순간 왜 직원들의 눈빛이 왜 형형한 지 알 것 같았다. 태권도 4단의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외모와 안광(眼光)은 기업 CEO의 품격을 느낄 수 있었다. ‘명장 아래 졸장 없다’는 말처럼 회사 오너를 닮은 직원들의 업무태도는 닮아 있었다.

장 회장의 일성은 “잘 오셨다”였다. 또 “불교신문에서 오셨으니 2시간은 비워 놓았다”고 했다. 시간은 15분 단위로 끊어 쓴다고 밝힌 장 회장은 인터뷰에 특별한 의미를 두는 듯했다. 기업인으로서 경영과 더불어 교구본사 신도회장인 불자로서 삶도 그만큼 비중을 두고 있다는 증거였다.

동화사 신도회장이니 불교와의 인연이 궁금했다. “부모님이 독실한 불자신자였어요. 고모님은 비구니셨어요. 청도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때부터는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늘 갓바위(선본사)와 동화사를 드나들었어요. 당시에는 고개 넘어 터널을 지나 백안삼거리에 내려 한참을 걸어야만 동화사를 갈 수 있었고, 갓바위를 다니는 길도 엄청나게 멀었어요. 그때의 지중한 인연이 지금 동화사 신도회장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숙세의 인연공덕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기업인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 디뎠다. 금오공대를 졸업한 뒤 우연히 필리핀을 다녀오면서 가방을 들어 준 인연으로 알게 된 김진석 모 회사 회장에게 발탁돼 뜻을 세우는 나이(而立)인 30세에 자동차 관련회사의 대표이사를 맡았다. 그 후 그는 김 회장과 교분이 있었던 이수성 전(前) 총리를 운명처럼 만나 90년대 중반 정계에 입문해 한동안 ‘이수성의 그림자’로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정치는 고독했다. 2등은 없었다. 항상 절대포식의 1인자만 살아남는 먹이사슬 속에서 장 회장은 모태신앙인 불교를 찾았다. “불교교리를 잘 몰라 책을 사서 공부하고,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많은 사찰과 스님들을 만나는 인연을 맺었어요. 총리님은 특히 지난달 원적에 든 신흥사와 백담사 조실이었던 오현 큰스님을 자주 찾아 가르침을 배웠어요. 그 자리에 항상 함께하며 부처님의 큰 가르침과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웠어요.”

서울과 지역을 오가며 개인적인 신행활동도 했다. 소위 ‘정치 판’에 있으면서 많은 생각을 해야 하는 터라 조용한 산사를 혼자 찾아 선지식으로부터 지혜의 가르침을 얻기도 했다. 일찍이 봉암사에 주석했던 서암스님을 친견하고 화두를 받아 참구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조계종 종정을 역임했던 서암스님은 장 회장에게 ‘청록(靑鹿)’이라는 불명(佛名)을 내려주기도 했다.

자주 찾았던 사찰은 영천 청하사였다. 이곳에는 지난해 입적한 직지사 출신의 법심스님이 주석했다. 법심스님은 전문 차인으로 차 수행을 통해 가르침을 주기도 했다.

“마음이 흐트러지면 찾았어요. 비가 오는 날은 빗소리를 들으며 밤새 법담을 나누기도 했어요. 스님께서는 세상의 무상(無常)한 진리를 자주 설파해 주시곤 했어요. 그러면서 ‘불교는 별것이 아니야. 마치 허공과 같으니 너가 가진 생각을 내려 놓으라’며 아집과 아상을 버리는 마음비우기 연습을 하라고 경책해 주셨어요. 처음에는 그 뜻을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니 차츰차츰 이해가 됐어요.”

현재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동화사 주지를 역임했던 지성스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2000년 초로 기억합니다. 어느 행사에 스님을 초청해 가르침이나 덕담을 해 달라고 청을 올렸더니 스님께서는 일원상이 그려진 그림을 한 점 내어 주셨어요. 스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허허 이 사람아, 이 안에 모든 게 다 있네’라며 화두를 주셨어요. 구경의 경지인 열반과 여여한 진리의 본체에 들어가면 모든 일이 원만성취 된다는 가르침이었던 거죠. 그 이후로 개인적인 정진의 죽비를 자주 치게 됐습니다.”

지난해에는 팔공총림 방장이자 조계종 종정인 진제 종정예하로부터 ‘고경(古鏡)’이라는 불명을 받고 자주 가르침을 받고 있다. “고경을 마음에 비유하여 청정한 거울에 온갖 사물이 다 비치지만 거울은 거기에 걸리지 않기에 더러운 것이 비친다고 해서 거울이 더러워지는 법이 없고, 무거운 것이 비친다고 해서 거울이 무거워지는 법이 없듯, 마음은 본래로 청정하고 자유자재하니 하는 만사형통하리라는 뜻으로 내려준 불명대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장 회장은 중요한 일이 없으면 매주 산행을 한다. 주로 대구 인근의 팔공산이나 비슬산 등을 다니며 건강도 챙기고 신선한 경영 아이디어도 생각해낸다. “산을 오르면서 지난 한 주에 했던 일들을 차분하게 생각하며 바둑을 복기하듯이 평가를 합니다. 내려 올 때는 지난 한 주를 거울삼아 한 주 동안 해야 할 일을 구상해 봅니다. 주변의 사찰을 들러 부처님을 친견하기도 해요. 가끔은 동행한 직원들과 떨어져 조용히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장세철 회장이 자신의 좌우명인 ‘일체유심조’가 쓰여진 사무실 액자 앞에 섰다.

장 회장의 좌우명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기업인과 정치인을 오가며 ‘오직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강한 신념으로 ‘무에서 유’를 창출해 냈다. “원효스님이 당나라 유학을 하다가 공동묘지 근처에 유숙(留宿)을 하면서 밤에 맛있게 마신 물이 해골물이었음을 알았던 원효스님의 깨달음을 생각하고 이 세상에 못 이룰 것은 없다는 각오로 도전하고 노력하고 성취하려고 합니다.”

정치인으로 살면서도 기업인의 자리를 놓지 않았던 장 회장은 다시 기업인의 자리에 안착했다. 이순목 우방건설 회장의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조언과 건설업에 대한 많은 경험전수도 큰 도움이 됐다. 정치보다 기업인은 덜 삭막하다고 했다. “정치는 2등이 위치할 자리가 없어요. 하지만 기업은 2등도 있고 3등, 4등, 5등도 있지요. 물론 업계의 1등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2등도 3등도 4등도 자기만의 노하우를 쌓아가며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기죠.”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업경영에 접목해 우리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해 나가는데 정진하고 있는 장 회장은 불자와 CEO로서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대구지역에서 출발한 고려건설의 브랜드 ‘풀비체’를 과거 우방이나 청구가 쌓았던 전국 인지도를 넘어서는 기업으로 만들어 갈 계획입니다. 아울러 기업을 통해 나오는 이익을 지역불교계는 물론 지역민들에게 환원되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고자 합니다.”

장 회장은 성공한 기업인으로 보기 충분했다. 하지만 그 자신은 성공한 기업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혁신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냈다. “배움과 도전, 그리고 나눔을 실천하려고 합니다. 기업은 빠르게 변하는 사회트랜드를 이해해야 합니다. 마치 요즘 기차가 KTX로 시속 300Km가 넘게 달리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저희 고려건설은 시공과 시행을 동시에 하는 믿음이 가는 탄탄한 기업으로 이름이 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장 회장은 끝없이 배움터를 찾는다. 평소에 끊임없는 교육과 배움을 통한 혁신경영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자신 스스로 영남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글로벌 최고경영자 과정과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 글로벌 최고경영자 과정을 공부하기도 했다. 지금도 공부하고 있는 장 회장은 영남대학교 도시재생공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장 회장은 성실하게 기업활동을 통해 얻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고 있다. 이는 그가 평소 신행해 오고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그의 보시정신은 지역사회에 고려건설을 ‘선행을 잘 하는 기업’으로 각인시켰다. 개인적으로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설립한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모임 에 올해 대구지역 회원으로는 첫 번째가 되기도 했다. 이전에도 장 회장은 매년 7억여 원을 배해 사회공헌에 사용해 왔다. 우리시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진자의 사회적 책무)’를 실현하고 있었다.

“이익은 나눠야지요. 나와 이웃은 둘이 아닌 연기(緣起)적인 존재라고 불교에서 말하잖아요. 기업을 통해 나오는 이익은 내 개인의 것이 아니기에 우리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봐요.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회향과 보시를 통해 상생(相生)하는 길과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장세철 회장은...
1961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대구로 이사해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동화사와 갓바위 등 사찰을 다녔다. 구미 금오공대를 졸업한 뒤 우연한 기회에 김진석 삼양사 회장을 만나 기업인으로서의 길을 걸었다. 김 회장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은 장 회장은 30세에 24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자동차 관련회사의 대표이사를 맡아 CEO로서의 리더십을 배웠으며 IMF의 금융위기를 겪으며 기업의 위기대처법도 익혔다. 김 회장을 통해 이수성 전 총리를 만나 정계에 입문해 한동안 활동해 오다가 이 전 총리와 친구사이였던 이순목 우방회장을 만나 건설업에 대한 눈을 떴고 1996년 창립한 대구지역 토종기업 고려주택 권상진 회장과 인연을 맺으며 주택사업에 뛰어든다.
고려주택 권 회장의 건강문제로 2006년 고려주택의 대표이사를 승계한 장 회장은 사세를 확장해 6개 회사를 거느린 대한민국의 중견건설업체인 고려건설 회장에 오른다. 20여년의 주택사업 노하우를 집약시킨 대구지역 토종 브랜드인 ‘풀비체’를 베스트 반열에 올려 놓았다. 틈틈이 사찰을 찾은 그는 김천 직지사, 문경 봉암사, 대구 동화사, 갓바위(선본사) 등을 찾아 기도를 올리는 불자로 살았다. 유년의 추억인 있는 고향의 사찰 적천사 신도회장을 맡아 불사에 힘을 보탰다. 2018년에는 제9교구본사 동화사 신도회장을 맡아 팔공총림 동화사의 발전에 진력하고 있으며 진제 종정예하가 원력이 깃들어 있는 진제선 세계화회 후원회장과 남해 성담사 창건추진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 1월 동화사 신도회장으로 취임한 자리에서 동화사 주지 효광스님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후 기념촬영 모습.

대구 = 여태동 기자  tdye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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