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가 세존께 의지해 머물거나, 

혹 스승과 장로에 의지하거나, 

혹 지혜와 범행에 의지해 머물되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내며 

사랑하고 공경하면 이를 법을 이루는 첫 인연이라 한다. 

- <불설장아함경9권> 중에서

서울 가던 날이었다. 졸음이 도로의 황색 점등처럼 깜빡거렸다. 고속버스를 타면 봄볕 겨운 눈을 좀 붙일 요량이었다. 늦을까 드러낸 조바심도 아지랑이처럼 노글거렸다. 얼마나 갔을까. 고속버스 안 TV에서 재벌가 갑질에 대한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테레비에서 자꾸 저런 방송을 하는 이유가 뭐꼬? 아니꼬우면 일 안 하면 될 낀데…”

누군가의 둔탁한 목소리가 고요한 고속버스 안의 정적을 깨뜨렸다. 멀끔하게 차려입은 앞좌석에 앉은 노인네였다. 노인네라고 표현하는 건 그로 인해 화가 은근 돋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대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언쟁이 날 게 틀림없으니 그냥 눈을 찔끔 감았다 떴다. 그리고 창밖을 보니 차창으로 유채꽃밭이 흘러가고 있었다. 애기똥풀이 밭두둑을 따라 하늘거리고 있었다. 노란나비가 날고 꿀벌이 날아다니는 건 자세히 보지 않아도 알겠다. 사람도 행복한 삶을 사는지 불행한 삶을 사는지 훤히 드러나 보일 때가 있다. 

[불교신문3407호/2018년7월11일자] 

도정스님 시인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