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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에세이] 구슬이야기 

 

황제가 구슬을 잃어버린 날과 
스님이 얻은 날이 같았다 
황제는 구슬을 두고 가라 했다 
다음부터 사람들이 스님을 
믿고 아끼는 일이 없어졌다

차라리 처음부터 없었다면 …

동네 사우나에 가면 이발까지 하고 온다. 단골인 나와 이발사는 이런저런 신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젊은 시절, 그러니까 1970년대 무렵, 그는 서울역 앞 장사 잘되던 목욕탕에 고용된 이발사였다. 중학교에 다니던 주인 아들이 있어서 늘 머리를 깎아 주었는데, 서울의 명문 치과대학에 입학하여 학교를 마칠 때까지 그 세월이 무려 십 년이 넘었다. 당연히 공짜였다. 주인 아들이 졸업할 무렵, 그는 “그동안 네 머리를 깎아주었으니, 내가 나중 늙거든 내 이빨은 네가 맡아주겠니?”라고 물었다. 물론 아들은 그러겠노라 대답했다. 

그것이 벌써 삼십 년 전 일이라 했다. 주인 아들은 서울의 강남에서 돈 많이 번 의사가 되었다. 더욱이 이미 아주 부자인 동기생 아가씨와 결혼하고 차린 병원은 예약 없이 못 갈 정도라고 한다. 그렇듯 간간이 소식은 들었지만, 정작 그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고 했다.

일연스님이 쓴 <삼국유사>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신라 원성왕 때, 법회에 참석한 한 스님이 공양이 끝나고 바리때를 씻자면, 자라 한 마리가 우물 안에서 잠겼다 올랐다 하였다. 스님은 남은 음식을 먹이며 놀았다. 그것이 무려 쉰 날이었다. 법회가 끝나갈 즈음 스님이 “내가 너에게 덕을 베푼 지 여러 날인데 무엇으로 갚아주겠니?”라고 자라에게 말했다. 며칠이 지나, 자라가 작은 구슬 하나를 마치 스님에게 주려는 것처럼 뱉어냈다. 스님이 그 구슬을 가져다가 허리띠 끝에 달고 다녔는데, 그런 다음 여느 사람은 물론 왕조차 스님을 보고 매우 아껴, 내전에 불러들여 곁에서 떠나지 않게 하였다. 

이 이야기가 생각나 나는 이발사에게 말했다. “한번쯤 찾아가보지 그랬어요. 약속도 했고, 공짜로 치료 받으면 더 좋고.” 그러자 그는 “뭘 얼마나 대단한 걸 했다고요”라고 했다. 왠지 그 말이 쓸쓸하게 들렸다. 옛날과 달리 요즈음 사우나의 이발사는 벌이도 시원치 않다. 나이 들어 이도 부실한데, 가서 도움 받을 만도 하련만, 그는 그것이 궁상스러운 모양이었다. 

따지고 보면 주인 아들인 치과의사는 ‘구슬을 가진 자라’이다. 덕을 입은 자라가 구슬을 주듯, 아들은 치과의사라는 기술을 구슬처럼 줄 수 있다. 굳이 이발사가 찾기 전, 돈도 많이 벌고 성공한 다음, 아들이 먼저 옛날의 이발사를 찾았다면 더 좋았으리라. 그랬으면 참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 뻔 했다. 단호하게 옛 주인 아들을 찾지 않은 이발사의 속마음을 다 헤아릴 길은 없다. 그런데 예의 삼국유사 이야기의 뒷부분을 읽어보면 잘했다 싶다. 

원성왕의 신하 한 사람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면서 앞서 소개한 스님과 동행하였다. 당나라에 이르자 황제 또한 스님을 보고 총애하니, 주변의 정승들이 우러러마지 않았다. 다만 점을 치는 신하 한 사람만이, “이 승려를 살펴보니 하나도 좋은 관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남들로부터 존경과 믿음을 받으니, 반드시 특이한 물건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사람을 시켜 검사해 보자 띠 끝에 작은 구슬이 나왔다. 그것을 보더니 황제는 “지난 해 잃어버린 내 여의주 네 낱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지 않는가. 황제가 구슬을 잃어버린 날과 스님이 얻은 날이 같았다. 황제는 그 구슬을 두고 가라고 했다. 다음부터 사람들이 스님을 믿고 아끼는 일이 없어졌다. 구슬의 힘이었던 것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없었다면 좋았으리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발사는 주인 아들의 구슬을 탐내지 않았다. 그래, 잘 한 일이었다. 

[불교신문3407호/2018년7월11일자] 

고운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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