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불기 2562 (2018).9.25 화

사이드바 열기
상단여백
HOME 복지&상담
곰팡이 핀 반지하, 무허가 건물…천개의 눈과 손으로 보듬다집수리 봉사 펼치는 ‘천수천안회’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집수리봉사팀 ‘천수천안회’이 지난 8일 서울 망우동 주택가를 찾아 집수리 봉사를 하고 있다. 재단된 도배지에 풀을 바르고 있는 봉사자들.

지난 8일 서울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망우동 다세대 주택가, 페인트통과 벽지를 손에 들고 공구를 옆에 둘러멘 10여 명 사람들이 조용하던 골목길 적막을 깼다. 일요일 아침부터 모여든 한무리 사람을 발견한 동네 주민들 이목도 금세 집중. “오늘 여기 무슨 일 있대요?” “아~ 그 외국인 아기 엄마네 집 고쳐주러 왔구만” “지켜보기 안타까웠는데 아침부터 좋은 일들 하시네”하는 소리에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집수리봉사팀 ‘천수천안회’ 회원들이 설명 대신 웃음으로 답했다.

집주인이 마련해준 임시 거처에서 2주째 지내고 있던 몽골인 잉카이(26·가명) 씨도 집수리 봉사팀 방문 소식에 오랜만에 월세방을 찾았다. 한국에 온 지 5년, 교환학생으로 온 몽골인 남편과 결혼해 아이까지 둘이나 낳고 장밋빛 미래를 꿈꿨지만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 부부에게 타지에서의 삶을 녹록지 않았다. 알바비로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기에도 벅찬 삶, 햇빛도 잘 들지 않는 반지하, 곰팡이가 빼곡이 들어찬 집에서 잉카이 씨 부부는 매일 기침을 하고 가려움증을 호소하는 연년생 갓난아기들과 불쾌한 장마철을 3년째 견디고 있었다.

봉사팀을 따라 들어간 다세대 빌라 반지하 집에선 퀴퀴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봉사팀이 들어오기 전 이미 짐을 빼고 벽지와 장판을 모두 걷어냈음에도 곰팡이가 오랫동안 묵어있었기 때문인지 눅눅함과 악취가 여전히 강하게 느껴졌다. 수리를 시도한 흔적에 집안은 이방 저방 성한 곳 하나 없이 뜯기고 찢긴 상처로 가득. “하수구가 역류해 물이 방까지 들어 왔었대요. 두 살짜리랑 세 살짜리랑 살기엔 완전 악조건이었지. 오늘 우리가 도배도 새로 싹 하고 장판도 다 교체하면 그래도 좀 살만해 질거에요.”

시공 현장을 둘러본 사용배 봉사팀장이 한 마디 툭 뱉더니 능숙하게 일을 분담하기 시작했다. 첫 팀이 방마다 크기를 잰 뒤 천장과 벽, 바닥 크기에 맞춰 도배지와 장판지를 알맞게 재단하면 그 다음 팀이 풀을 먹이고 30분가량 벽지를 숙성시킨 뒤, 방마다 붙이기 시작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봉사자들 간 손발이 척척.

“벽지는 차라리 처음부터 여유있게 잘라주는 것이 좋아요. 자칫 짧게 자르면 종이가 겹쳐서 더 지저분해 보인다니까. 그리고 천장보다는 벽면을 바르는 게 더 어렵지. 천장은 폭만 잘 맞추면 되는데 벽은 무늬를 맞춰야 하니까. 종이가 울어도 안되고 울퉁불퉁해도 안되고...” 

도배지를 능숙하게 잘라내던 봉사자 박정숙 씨에게 도배를 해 본 적 있냐 묻자 “내가 이 힘든 걸 왜 해요~!”라는 웃음 섞인 농담이 돌아왔다. 봉사팀에 합류한 지 1년, 매월 하루 주말을 고스란히 반납하고 도구를 드는 잡일에서부터 페인트칠, 도배지를 자르고 붙이는 일 등을 하다보니 이제 웬만한 기술자 못지않게 됐다는 박 씨다.

매월 하루 주말을 고스란히 반납하고 도구를 드는 잡일에서부터 페인트칠, 도배지를 자르고 붙이는 일 등을 하다보니 이제 웬만한 기술자 못지않게 됐다는 박정숙 씨.
앞 팀이 도배지를 재단하면 그 다음 팀이 도배지를 방마다 붙인다.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 봉사자.
집안으로 장판을 나르는 봉사팀.

박 씨와 마찬가지로 집수리 봉사팀은 건축기계설비 전문가인 사용배 팀장과 정기섭 총무를 제외하면 모두 아마추어들이다. 사진작가, 요리사, 가정주부 등 집수리와 전혀 연관 없는 직종에서 종사하는 30여 명이 활동하는데 2015년 6월 사용배 팀장 강권으로 발족한 이후부터 3년째 매월 1회 장애인, 독거노인, 저소득 가정을 방문해 그간 20여 채 집을 수리해왔다. 평균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냉·난방 시설 점검을 시작으로 도배, 장판 및 화장실 타일 교체, 집안 청소까지 몸 사리지 않고 고군분투. 작업이 늦어지면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도배를 한 다음날이 되면 목이 아파 아침에 고개를 들지도 못한다”고 할 정도로 그야말로 중노동이지만 스스로 마음을 내 하는 활동이니 불평이나 불만은 찾을 수 없다. 

이렇다할 후원이 없어 봉사팀은 집수리에 필요한 장판 등 바닥재부터 도배지, 페인트, 공구까지 모두 자체 회비로 충당하고 있다. 건축 관련 업계에서 일하는 사 팀장이 직접 발로 뛰며 수소문해 몇몇 곳에서 자재 및 지원금을 받고 있지만 자금 부족으로 ‘비까번쩍’한 에어컨, 보일러 등 대신 중고품을 놓아주고 돌아 나설 때면 안타까운 마음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기는 마찬가지.

뙤약볕 아래 잉카이 씨 집수리를 하던 이날도 회원들은 자장면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지난해까지 회비가 만원이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그것도 안 받아요. 요즘엔 워낙 먹고 살기 힘드니 만원도 크게 느껴질 수 있잖아요. 공구나 자재는 제가 어떻게든 구해오면 되고 밥은 라면이든 끼니는 때울 수 있으니, 그냥 젊은 사람들이 좀 많이 와서 같이 힘 좀 보태줬으면 좋겠어요. 간혹 우리가 정부나 복지관 지원으로 돈 받고 일하는 줄 아는 사람도 있는데, 그럴 땐 좀 섭섭하긴 하지.”

사 팀장 말에 봉사자 신현아 씨가 애정어린 면박을 줬다. “우리가 뭐 남 위해 일하나. 깨끗해진 집 보고 ‘와~ 살만하다’ ‘고마워요’하는 모습 상상하면 즐겁고 행복하니까 하는 거지. 이런 거 하고 싶어도 건강 때문에 못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 생각하면 그저 감사하죠.”

사용배 집수리 봉사팀장.

“받은 만큼 봉사하겠다”

■ 사용배 집수리 봉사팀장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이 수해를 입었거든요. 그때 대한적십자사에서 라면 두 박스랑 냄비를 줬는데 그게 어린 마음에도 너무 고맙더라구요. 교과서는 막 물에 흥건히 젖어 다시 쓸 수도 없지, 당장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어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데 그 때 그 구호품이 엄청 도움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생각했죠. 커서 꼭 ‘받은 만큼 갚아줘야지’라고.”

집수리 봉사단을 창단한 사 팀장은 1972년 대홍수 당시 서울 가양동 집이 물에 잠겨 겨우 몸만 빠져나왔다. 15년 뒤 또 한 번 태풍 피해가 발생했을 때 사 팀장은 이 때다 싶었단다. “제가 그 때 기계설비 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때가 됐다 싶었죠. 뉴스를 보고 직원들하고 보일러와 자재, 공구들을 싸 짊어지고 거제로 내려갔어요. 망가진 집들을 수리하고 오면서 그렇게 뿌듯할 수 없더라구요. 그게 집수리 봉사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열린사회시민연합 구호지부’에 들어가 집수리 봉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사 팀장이 조계종 사회복지재단과 인연을 맺은 건 2006년, 조계사 앞을 지나다 가족들과 함께 플랜카드를 보고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했고, 이어 2015년에는 그토록 염원하던 집수리 봉사팀을 만들었다. 이름은 ‘천수천안회’.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으로 중생을 구해주는 관세음보살님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곳, 도움이 절실한 곳을 찾아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은 마음을 담았습니다. 얼마 전에는 뜨거운 양철지붕 아래 생활하는 할머니께 에어컨을 놔드렸는데 자꾸 눈에 밟혀요. 9월중에 우리 봉사팀과 함께 조금 더 시원하고 쾌적한 공간을 선물할 생각입니다.” 

※ 집수리 봉사팀 ‘천수천안회’는 냉난방 시설이나 도배, 장판 등 수리 물품을 후원 받는다. 집수리 봉사팀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면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으로 연락하면 된다.

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경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뉴스
여백
여백
여백
여백
icon
"SNS에서도 불교신문
뉴스를 받아보세요"

kakaostory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