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재 소설가

우리 반만년 역사를 통틀어 가장 존경할만한 인물을 꼽으라하면 단연 세종임금이 으뜸일 것이다. 한글을 창제하고, 학문을 숭상해 인재를 양성하고, 여러 과학기구를 발명해내고, 정치 사회적인 제도를 정비해 조선왕조의 기반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밑바탕에는 애민정신이 있었기에, 우리에게 그 존경심의 핵심적인 가치를 부여해줬던 것이다. 

하지만 한 학자가 자신의 저술을 통해 그런 세종의 치적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 대표적인 예로, 노비제 확산을 들고 있다. 조선사회에는 노비가 전체인구의 3분의 1이 넘었는데, 저자는 그게 세종 때 양반의 권익을 위해 노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정책의 구조 때문이라고 본다. 세종은 노비를 온전한 인격제로 여기지 않았다. 노비는 주인을 고발할 수 있는 권리가 없고, 어미의 신분이 노비이면 자식도 그 신분을 따라야만 했다. 물론 사회신분제도가 엄격했던 그 시대상황에 맞춰 이해할 필요가 있겠지만, 기분이 씁쓰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보다 2000년 전에, 왕궁에서 동화 같은 삶을 버리고 ‘인간의 평등’을 주장한 분이 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오늘날에도 인도사회는 신분제도인 카스트가 시퍼렇게 살아 있어 4계급에도 못 드는 3억 명의 아웃카스트, 즉 불가촉천민은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 하물며 2500년 전 때는 어떠했겠는가. 천민이 브라만을 쳐다봤다는 이유로 눈알을 뽑아버리기까지 했다는데. 그런데 부처님은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고행자의 길을 나서 큰 깨달음을 얻은 후, 모든 생명체의 존귀함과 인간평등을 주창하지 않았던가. 사람은 출생신분으로 천하고 귀한 게 아니라 그 행위로써 구분지어진다고 역설하면서, 신분제도를 타파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2500년 전의 부처님이야말로 인간 삶의 개혁가요, 혁명가라는 생각이 든다. 관념적인 사고로 진리를 구하는 게 아니고 인간의 삶을 직시하고 인간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 몸소 실천함으로써 그걸 깨우쳐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내가 불교의 관념적이고 불가지적인 면에서는 온전히 수용하지 못하면서도, 부처님의 ‘인간평등 사상 ’만큼은 존경하고 받드는 이유이다. 

[불교신문3407호/2018년7월11일자] 

이선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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