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밥맛

이규항 지음/ 동아시아

이규항 前 KBS 아나운서
불교공부로 인생 2막 열어

그 동안 보고 듣고 사유한
불교 참맛 담은 철학에세이

“밥맛은 순수한 맛의 상징
단·쓴맛 아닌 중도의 세계”

원로방송인 이규항 전 KBS 아나운서가 자신의 인생 2막을 열어준 불교공부 이야기를 담은 철학에세이 <부처님의 밥맛>을 내놨다. 사진은 스포츠캐스터로 활동할 당시 저자의 모습. (사진 앞줄 왼쪽)

1970∼80년대 씨름과 야구를 중계하며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원로방송인 이규항 전 KBS 아나운서가 자신의 인생 2막을 열어준 불교공부 이야기를 담은 특별한 철학에세이 <부처님의 밥맛>을 내놨다.

저자는 35년간 KBS 아나운서로 재직하면서 프로야구 중계방송을 천직으로 삼아왔다. 퇴임 후엔 일본 프로 야구에서 뛰던 선동열, 이종범, 이상훈 선수의 경기를 중계하기도 했다. 저자는 “야구는 둥근 공 하나에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경기”라며 “그리고 중계방송은 공 하나에 울고 웃는 ‘지금 여기’의 현장을 생생하고도 객관적인 말로 그려내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런 저자의 직업적 특성은 단맛(승)과 쓴맛(패)을 무차별(無差別)하게 품어 중도(中道)를 지향하는 불교의 철학과 맥을 같이 한다.

때문에 이 책에는 스스로 ‘돈키호테 불자’라고 칭하는 저자의 독특한 불교관이 녹아 있다. 그는 먼저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밥맛’과 숫자 ‘0’을 강조한다. “밥맛은 둥근 타원형과 미색을 지닌 순수하고 담백한 맛의 상징이다. 즉, 단맛(쾌락)의 양(+)의 세계도 쓴맛(고통)의 음(-)의 세계도 아닌 0(중도)의 세계를 뜻한다. 양과 음, 양극단의 세계를 거쳐야 도달할 수 있는 밥맛(0)의 세계가 바로 ‘행복의 황금률’이다.”

부처님 역시 고행을 통해 양극단을 경험하며 스스로 깨달음을 구했다. 다만 저자는 부처님의 깨달음이 고행의 결과로 설명하는 경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잘 알려진 대로 태자로 태어난 붓다는 6년 넘게 극한의 고행 수도를 한 뒤 고행 중단을 선언했다”면서 “붓다가 세속에서의 최고의 단맛과 출가 후 최고의 쓴맛을 본 뒤에야 비로소 밥맛(0)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부처님의 깨달음의 핵심을 밥맛과 숫자 0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이를 위해 각 음식의 맛을 +0.9에서 -0.9까지 배치한 음식도표를 그렸다. 도표에서 +0.9 쪽으로 갈수록 단맛에 가까워진다면 -0.9 쪽으로 갈수록 쓴맛에 가까워진다. 저자는 호박, 고수, 씀바귀, 과일, 버섯, 붉은 살 생선 등 온갖 음식들의 맛을 숫자에 대입해 재미있게 풀이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수풀은 -0.9에 배치된 쓴맛의 극치로 고수만이 향유할 수 있는 맛이라고 한다. 붉은 살 생선이 고수와 가장 거리가 먼 +0.9에 배치된 점도 눈에 띈다.

또한 붉은 살 생선이 식물성을 띤 동물성 음식으로 육류를 제외하고 가장 큰 양수로 보았다. 그는 “음식도표는 붓다의 심신일여(心身一如)의 깊은 뜻을 떠올리게 한다”면서 “좌우대칭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사람의 몸을 통해 모든 사물도 균형 있게 운영하라는 조물주의 묵시를 읽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숫자 0에 부처님의 괴로움이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도 눈길을 끈다. “부처님은 인류를 위해 중도, 즉 0이란 신세계를 발견한 인생의 콜럼버스라 할 수 있다”면서도 당시 인도에서는 숫자 0이 존재하지 않았다. 양수도 음수도 아닌 0을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에 부처님은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자신의 깨달음을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부처님의 괴로움을 저자는 조선의 명의 허준의 괴로움에 비유하고 있다. 당시 허준이 콜레스테롤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그 본질을 설명할 수 없었던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또한 산스크리트어, 음식의 맛, 수학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은 물론 저자가 만난 스님들과 학자, 가족 등 여러 인연들과의 일화들도 책의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그는 “죽음은 붓다 같은 깨달음을 얻는 성인도 피할 수 없는 필연의 길이지만 삶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면서 “마찬가지로 고급음식의 첫 맛은 보통 쓴 법이지만, 다음에 오는 맛은 달콤할 수 있는 만큼 이 책의 첫 맛이 쓰게 느껴지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곱씹어 음미해 보길 바란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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