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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정부도 버린 아이들 보듬은 한국불교'굿월드 자선은행', 대표 덕문스님 등 자비행
  • 필리핀 산페드로=박부영 기자
  • 승인 2018.07.0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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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수도도 없는 비좁은 집
10여 가족, 쓰레기 주워 연명
침출수 흐르는 마을 악취 진동

다른 구호단체 포기하고 떠난
최빈지역에 유일한 희망 꽃피워
한국불자 후원 봉사자 헌신 덕분

입학식에 참석한 아이들의 밝은 모습

현지 지부장으로부터 사전에 정보를 들어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현장을 보니 상상 이상이었다. 쓰레기 위에 집을 짓고 쓰레기로 뒤덮인 골목에서 놀고 물 대신에 쓰레기 침출수가 마을을 휘젓고 흘러내렸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아이 둘이 앉으면 꽉 들어차는 집안에 10여명의 식구들이 살고 있었다. 눈에 초점을 잃고 멍하니 선 어린 소녀의 목 뒤에는 종양이 자라고 있었다.

침출수가 흘러 악취를 품기는 마을

필리핀 산페드로시 사우스 사이드 마을 이야기다. 이 마을은 1970년대 서울 난지도의 마닐라 판이다. 수도 마닐라에서 나온 쓰레기를 매립하는 곳에 시골에서 올라온 주민들이 터 잡고 살면서 마을을 이뤘다. 마을이 생긴지 30년이 넘었다. 필리핀 전역에서 맨 몸으로 올라온 이들은 쓰레기를 주워 팔아 생계를 연명한다. 

한 사람이 하루 꼬박 주워 팔면  한국 돈으로 4천원 가량 번다.  쌀 1kg, 한 가족 한 끼 밥값이다. 한 명 벌이로는 하루 먹기도 힘드니 코흘리개 아이 까지 동원 된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도 깡통 등 쓰레기를 주워 팔며 쓰레기 더미 위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다가 간다. 지옥 같은 세상을 벗어나는 길,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와 다른 삶은 오직 교육 밖에 없다.

어린 소녀 목 뒤에는 종양이...

이 아이는 목에 종기가 자라는 병을 앓고 있다. 굿월드에서 치료를 했다. 아이의 언니도 굿월드 도움으로 건강을 되찾아 상급학교에 진학했다.

정부 마저 버린 사람들을 한국 불교가 품었다. 지리산 화엄사 주지 덕문스님이 대표인 국제구호단체 ‘굿월드 자선은행’이 취학 전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일 나간 부모를 대신해서 돌보는 데이케어센터, 우리나라로 치면 어린이 집을 만들어 지난해 7월 개교했다. 학교 이름은 ‘문덕데이케어센터’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을 꿈꿨던 선원 수좌 문수스님의 정신과, 속초 보광사에서 평생을 가난한 사람을 돕고 함께 했던 이순덕 보살의 자비 정신을 담아 지은 이름이다. 지난 2일 두 번 째 입학식을 열었다.

덕문스님은 “이 나라는 졸업은 거창하지만 입학식은 열지 않는다. 하지만 현지 아이들에게는 꿈을 심어주고 한국의 후원자들에게는 자비행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우리가 설립한 모든 학교에서 한국식으로 입학식을 연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연 입학식에는 한국의 불자와 후원자들이 준비한 가방 교과서 공책 필기구 등을 아이들에게 안기며 함께 웃었다. 굿월드 대표 덕문스님을 비롯하여 속초 보광사 거사림회 ‘하심회’ 회원, 한국에서 온 신도들, 굿월드 김종선 필리핀 지부장, 김규환 사무국장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작년 120명에 이어 올해 118명이 입학했다.

입학식 모습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가는 좁은 골목에 침출수가 흘러내리는 골목 안에 들어선 학교지만 이 마을의 미래이며 보배다. 입학식에는 온 마을 사람과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김종선 지부장은 “부지가 좁아 원하는 아이들을 모두 못 받는 것이 가장 마음 아프다”고 했다. 

경쟁률이 3대1 4대1을 넘는다. 오전 오후로 나눠 2부제로 열며 최대한 수용하려 했지만 역부족이다. 더 가슴 아픈 일은 필리핀에서 가장 극빈층인 아이들을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집 아이’와 ‘세상에서 ’진짜‘ 가장 가난한 집 아이’로 구분해서 탈락시키는 일이다. 

김 지부장은 “서류로 합격자와 탈락자를 가려야하는데 사실 아무 의미 없다. 그래도 10명이 신청하면 3명 밖에 받을 수 없으니 눈물을 머금고 추려야한다. TV가 있길래 탈락 시켰더니 부모가 쫓아왔다. 탈락 사유를 말했더니 다짜고자 손을 잡고 자기 집으로 데려가더라”. 그 TV는 쓰레기 장에서 주운 형체만 있는 껍데기였다.

선물을 전달하는 후원자들

가장 가난한 아이와 진짜 가장 가난한 아이

입학식은 웃음과 울음이 함께하고 혼란하지만 질서정연하게 거행됐다. 100명이 넘는 아이들과 이들의 가족들, 구경하는 마을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40도를 오르내리며 교실 천정을 달구는 태양의 열기와 쓰레기가 썩으면서 내뿜는 바닥 지열이 실내를 찜통으로 만들었다. 아이들은 열기를 못 이겨 이 곳 저 곳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마을 주민들의 표정은 밝았고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놀았다. 

마을 잔치가 열렸다.  덕문스님의 장삼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스님은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땀을 아랑곳 않고 가방에 책 공책 연필 등을 넣어 일일이 등에 매어주며 인사를 건넸다. 함께 온 신도들과 후원자들도 함께 했다. 행사를 마치고 밖을 나온 스님은 마을 주민들과 인사를 건네고 아이들을 안아주며 앞길을 축원했다. 학교를 설립하고 입학식을 준비한 굿월드 현지 관계자들도 격려했다.

쓰레기 더미 위에 집 짓고 사는 사람들
골목에서 만난 아이들

문덕 케어센터 입학식에 앞서 빈민가에 자리한 명궁데이케어센터에 들러 책가방 공책 필기구 등도 전달하고 사우스빌의 스테파노 데이케어센터에서 5회 입학식을 열었다. 부지를 사고 학교를 지어 교육청에 기증한 이 곳은 굿월드 1호 학교 답게 시에서 가장 우수하고 모범적으로 운영된다. 시설도 훌륭하다. 이 학교에도 한국의 불자와 후원자들이 마련한 책가방 책 공책 필기구를 전달했다. 스테파노 데이케어센터에는 이 지역 주민들을 위한 보건소 역할을 하게 될 굿월드메디컬클리닉도 운영한다. 

김규환 굿월드 사무국장은 “공사가 거의 끝나 곧 문을 연다”고 밝혔다. 보건소가 문을 열면 굿월드가 필리핀에 발을 디디면서 필리핀 주민들과 한 약속 5가지 중 네 가지를 이행하는 셈이다. 김규환 사무국장은 “처음에 지역 진출을 하면서 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꼭 필요한 5가지가 무엇인지 설문조사를 했는데, 첫 번째가 데이케어센터였고 차례로 물, 고등학교, 성당, 보건소로 나왔다. 성당 빼고 약속을 지키는 셈”이라고 말했다.

명궁케어센터에서 학용품을 전달하는 덕문스님

가톨릭 국가에 간 불교 구호단체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에 한국의 구호단체로는 유일하게 뿌리 내린 굿월드자선은행은 쓰레기 더미 위의 아이들이 기댈 유일한 희망이며 미래다. 이들은 유령이다. 실제로는 있지만 없다. 이들이 사는 집도 이들도 무허가이다. 아이들이 입학을 하려는데 출생신고가 돼있지 않아 140명 호적부터 만들었다. 사망 신고를 해야 하는데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출생신고와 사망신고를 함께 했다. 이 모두 굿월드 활동가들의 역할이다. 

지난 8년간은 사방의 적과 싸우는 시간이었다. 자신을 도우러 온 활동가들을 주민들은 무시하고 정부는 배척했다. 야심차게 들어왔다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떠났던 다른 국제구호단체가 남긴 후유증이며,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주민들과 무엇이든 챙기고 보는 공무원들의 생존법이었다. 가장 힘든 대상은 쓰레기였다.

입학식에서 아이들 공연을 보고 즐거워하는 스님과 김종성 지부장

수 십년 간 켜켜이 쌓인 쓰레기는 난공불락 요새였으며 파면 팔수록 그 끝을 알 수 없는 늪과 같았다. 삽이 들어가지 않아 손으로 하나 하나 걷어내야 했다. 인분과 뒤섞인 쓰레기를 전부 맨손으로 파냈다. 화장실 한 곳 치우는데 3개월이 걸렸다. 김종선지부장은 “수 십 년 묵은 쓰레기를 우리 자원봉사자들이 일일이 손으로 파냈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오직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학교를 지어야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일을 했다”고 말했다. 

스테파노 데이케어센터가 깨끗한 이유는 이들의 노력과 헌신 덕분이다. 회의하고 도망치려는 자신과도 싸워야했다. 편견 관습 자신과의 사투를 이겨낸 결과 쓰레기 위에 희망의 꽃을 피웠다. 주민들은 반갑게 맞이하고 속내도 곧 잘 털어놓는다. 시장은 조선시대 암행어사 마패처럼 무슨 일이든 해결 가능한 카드를 내주었다. 교육청은 가장 유능한 교사를 이들 학교에 파견했다.

굿월드를 돕는 한국의 후원자들도 입학식에 함께 했다

김종선 지부장의 기여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인 골프여행객을 상대하는 호텔을 운영하는 사업가인 김 지부장은 굿월드 자선은행과 인연을 맺은 뒤 가장 돈이 되는 유흥 가이드 일을 접었다. “수입이 줄더라도 명색이 구호 활동을 하는 지부장이면서 유흥을 주선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 이유다. 덕분에 사업은 반 토막 났다. 그래도 그도 그의 아내도 새로운 일을 아주 좋아한다. 두 딸은 헌신적으로 돕는다. 

호텔이 있는 카비테주 망가한시 우드힐 지역의 지나데이케어센터는 시설 개원 까지 가장 열심히 도운 감사의 표시로 스님이 그의 맏딸 이름을 붙였다. 이 마을 역시 시골에서 올라온 주민들이 하천 둑에 지은 무허가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이 서있기도 힘든 경사지에 비바람만 막은 집들이 전기도 수도도 없이 다닥 다닥 붙은 곳에 보육시설을 만들었다. 

굿월드의 2호 학교였다. 그러나 시청이 붕괴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폐쇄하는 바람에 얼마 전 문을 닫았다. 일당을 벌기 위해 마닐라로 간 부모를 대신해 돌보고 교육하던 이 마을 유일의 보육센터가 문을 닫자 아이들은 예전처럼 마을에서 놀기만 한다. 닫힌 것은 학교가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다.

스테파노 입학식

정부 마저 포기한 ‘유령’

정부 마저 손 놓은 필리핀 최빈 마을을 품은 한국불교와 불자들은 종교를 떠나 부처님의 자비를 실현하는 원력 하나로 그 어떤 수고도 마다않는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이사장 덕문스님이 중심이 된 한국불자들의 후원을 의지한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지난 6월 굿월드 자선은행은  국제구호단체 협회에 정식 가입했다. 사업업적, 년 3억원 이상의 후원금 모금, 지속성, 신뢰 등 모든 면에서 합격점을 받아야 가입 가능하다. 아직 10년이 되지 않은 굿월드는 1년 후원금이 모자라지만 지속성과 헌신성 열정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만장일치로 가입 승낙을 받았다.

문닫은 진아데어 케어 센터 아이들이 골목에서 놀고 있다

덕문스님은 “역사도 짧고 예산도 적지만 우리 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사람도 많은 기독교 단체도 하지 못한 일을 김종성 지부장 등 현지 봉사자들과 한국 불자들의 후원으로 필리핀 어린이들의 밝은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 굿월드 데이케어 센터는 필리핀의 미래인 어린이들이 오랫동안 마음껏 뛰놀며 꿈을 가꿀 수 있는 터전이 될 것이다. 한 나라를 이끌어갈 미래의 재산인 어린이들을 소중하게 잘 키워내는 일은 국가와 민족의 차이를 떠나 우리 인류가 수행해야 할 공통의 의무이며 사명”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월 1만원을 후원하면 쓰레기 더미에서 살아가는 한 가족의 보름 밥값이 해결됩니다. 불자님들의 관심과 후원을 기다립니다”라며 인사했다.

좁고 어두운 골목 위로 보이는 밝고 투명한 하늘, 굿월드가 어둡고 암담한 현실에서 밝은 미래로 안내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필리핀 산페드로=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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