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보다 더 짙어진 운주산 대자대비 법문

 

인도 보타락산 같은 성지서 
정토 세상에 다시 태어나길 
염원했던 백제유민 생각하며

기와불사, 군장병에 초코파이
소년·소녀가장들에겐 장학금 
108약사여래 보시금도 전해

‘53기도도량’ 제28차 순례법회는 지난 6월8일, 9일 양일간 대웅전과 극락보전이 함께 있는 세종특별자치시 비암사에서 여법하게 봉행됐다.

‘53기도도량’ 제28차 순례법회가 지난 6월8일, 9일 양일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운주산 비암사에서 여법하게 봉행됐다. 눈부신 신록(新綠)이 녹음으로 짙어지는 유월 초순, 우리 회원들은 세종 비암사로 순례를 떠났다. 한 차례 소낙비가 지나간 숲길에는 풀꽃과 나뭇잎들이 아름다운 물방울을 머금고 있었는데 유월의 끝에는 장마가 시작되고 칠월이 되면 신록들은 더욱 풍성해지기 마련이다. 

비암사로 걸어가는 동안 날이 더워 온몸엔 땀이 배어들었다. 잠시 길에 앉아 쉬었더니 운주산 정상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이 몸을 씻어준다. 53기도도량 순례의 기쁨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게 바로 순례이다.

비암사는 높은 산에 있는 절과 달리 드문드문 펼쳐진 농가의 호젓한 길을 지나 운주산 산자락에 아래 나지막하게 앉아 있다. 우리 순례자들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비암사 계단 옆에 서있는 800여 년 된 느티나무. 무려 높이가 15m, 둘레는 어린아이의 키만큼 될 정도로 웅장했다. 물기를 잔득 머금은 느티나무의 푸른 잎들이 지친 나그네들의 쉼터가 되어주었다. 

비암사는 2000여 년 전 삼한시대의 절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사적(史蹟)은 남아 있는 것이 없고 조선시대 때 쓴 사적지에만 비암사라는 사명(寺名)이 나온다. 일설에 따르면, 통일신라 말기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대웅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1960년 이 탑의 꼭대기에서 발견된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은 국보 제106호로 지정됐다. 이밖에 영산회 괘불탱화와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이 있는데 17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비암사 입구에 도착하자 주지 노산스님과 대중들이 부처님과 같은 미소로 우리 회원들을 마중 나왔다. 원래 비암사는 백제의 왕들과 백제부흥운동을 펼치다 죽은 이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백제가 멸망하고 12년 후 유민들에게 백제의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조성한 사찰이다. 

비암사를 기점으로 산줄기를 타고 올라가면 백제 부흥 최후의 산성인 운주산성을 만나게 된다. 정상에는 ‘백제의 얼’ 탑이 있다. 백제군은 운주산 줄기에 성을 쌓고 최후까지 백제 부흥을 위해서 버티다가 결국 그 꿈을 버렸던 곳이다. 멸망 후 백제 유민들은 당나라로 끌려갔다. 그 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죽은 백제 왕족과 유민들의 떠도는 영혼을 위로할 방법을 찾다가 연기 지역의 주민들과 조금씩 정성을 모아 운주산 자락에 절을 세우고 그들의 혼을 달랬다고 전해지는데 이곳이 바로 비암사이다.

우리 회원들은 비암사 대웅전 마당을 기도처로 잡고 육법공양, <천수경>과 사경, 안심법문, 나를 찾는 108참회기도를 여법하게 봉행했다.

그리고 선묵혜자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비암사로 오시는 동안 여러분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풀꽃과 나무들이 짙푸르죠. 유월은 한 해의 절기 중에 나뭇잎과 풀꽃들이 가장 왕성한 신록의 계절입니다. 이 유월이 끝나면 장마가 옵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화엄경> 입법계품의 28번째 선지식인 관자재보살님을 친견하기 위해 왔습니다. 관자재보살은 관세음보살님을 가리킵니다. 줄여서 관음보살이라고도 하지요. 관세음(觀世音)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본다는 뜻이며, 관자재(觀自在)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자재롭게 관조(觀照)하여 보살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인지 관세음보살님은 우리 중생들에게 매우 친근한 보살로서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화엄경에 따르면 선재동자는 이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기 위해 걷고 걸어서 인도의 남쪽에 있는 보타락산(補陀落山)에서 친견하게 됩니다. 보타락산은 팔각형의 산으로, 꽃과 흐르는 물이 향기를 내는 곳이라고 합니다. 아마 오늘 여러분들이 오신 비암사도 보타락산과 다름없습니다. 선재동자는 이곳에서 관세음보살로부터 설법을 듣고 자신이 중생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선재동자처럼 관세음보살을 친견하러 왔습니다. 열심히 기도를 하시고 많은 공덕을 쌓기를 바랍니다.” 선묵혜자스님의 법문이 끝난 뒤 비암사 주지 노산스님의 법문이 이어졌다.

“53기도도량 순례기도회 선묵혜자스님과 회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비암사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의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불교는 마음을 찾아가는 종교입니다. 고즈넉한 사찰에 들려 바람을 타고 울리는 풍경소리, 마음을 울리는 목탁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마음속 작은 울림이 내 몸 전체를 울리며 정화(淨化)되는 감동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매달 전국의 기도도량을 찾아 정진하는 53기도도량 회원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원력이 놀랍기도 합니다. 

네팔 룸비니에서 채화해온 ‘평화의 불’을 분등하는 회주 선묵스님(오른쪽)과 비암사 주지 노산스님.

특이하게도 우리 비암사에는 극락보전과 대웅전이 함께 있습니다. 주불인 극락보전의 아미타불은 650년 경 삼한(三韓)에 유행했던 정토신앙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백제부흥운동의 발길이 닿은 사찰이 모두 정토도량인 것을 보면, 처절하게 저항하며 시달림을 받던 백제 유민들이 ‘아미타불’을 되 뇌이며 정토세상에 다시 태어나길 염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극락보전 불단아래에 커다란 함이 하나 있었는데, 금기(禁忌)처럼 열어보지 않다가 열어보니 그 속에 석가모니불인 괘불탱화가 있었습니다. 이 부처님을 모시기 위해 근래에 대웅전을 새로 조성하였던 것입니다. 

비암사에서는 백제유민의 혼을 달래기 위해 매년 4월15일이면 괘불탱화를 봉안하고 ‘백제영산대재’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세종시 대표 문화행사인 ‘백제영산대재’에 오셔서 괘불탱화도 보시고 오늘 맺은 비암사와의 인연을 세세생생 이어가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회원들은 비암사 순례를 봉행한 뒤 기와불사와 직거래장터, 국군장병 초코파이보시, 소년소녀가장 장학금, 108약사여래 보시금 수여 행사도 가졌다.

이보다 더한 기쁨 그 어디에 있겠는가

 순례와 염주 

염주알은 108개이다. 한 알 한 알, 그 속에 담긴 뜻은 헤아릴 수 없이 깊고 오묘하다. 염주 속에는 부처님의 마음과 우주의 진리가 모두 들어있으며 지극 정성으로 올리는 불자들의 서원(誓願)이 깃들어 있다. 

스님이 ‘108산사 순례’ 와 ‘53기도도량 순례’ 회원들에게 염주를 나누어 준지도 벌써 1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세월이 유수 같다. 순례 때마다 염주보따리를 어께에 매고 다니면서 무려 70여만 개의 염주알을 스님이 직접 회원들에게 일일이 나누어 주었다. 우리 회원들 중에는 108염주를 거의 완성한 회원도 있고 ‘53기도도량 순례’를 나서면서 다시 ‘108염주’를 완성해가는 회원들도 있다. 스님은 오늘도 불자들에게 그 한 알의 염주를 나누어 주며 부처님의 법륜(法輪)을 굴리기 위해 길을 나선다. 

천년 간다는 시주공덕 잊은 채
70만 염주알로 자비행 이어온 
우리 회원들 정말 자랑스러워 

일각에서는 산사순례를 두고 불교신행(信行) 문화의 장을 연 대장정(大長征)이라고 표현한다. 그로부터 12여년이 지난 지금, 전국의 많은 절에서 순례를 나서고 있다고 하니 그 소리를 들으면 정말 기쁘다, 우리의 산사순례가 신행문화로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선(善)한 마음으로 국토를 꾸미고 훌륭한 공덕을 쌓아 몸을 장식하고 악한 것으로부터 몸을 삼가니 이보다 더 좋은 신행이 어디 있겠는가. 

어디 그것뿐인가. 최근 전국의 산사 중 7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런 아름다운 산사를 나서면서 자신이 지은 업장을 지우고 세파에 시달려 ‘잃어버린 자신의 마음을 찾아나서는 우리 회원들을 보면 정말 자랑스럽다. 

또한 고고한 시간의 흐름 속에 이끼 앉은 탑신(塔身)으로 혹은 아름다운 단청(丹靑)을 머금고 있는 웅장한 전각(殿閣)들을 만나는 일만큼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불타(佛陀)의 정신은 2500여년이 흐른 지금에도 한국의 산자락 깊숙이 남아 흐르고 있다. 그러므로 순례는 수많은 인연공덕을 쌓는 일이며 하나의 보현행의 실천이다. 옛 조사의 말씀에 ‘시주공덕은 천년을 간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산사순례를 하면서 시주를 올리는 공양미 속에는 공덕(功德)이 무궁무진하게 들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부처님이 계신 산사에 올리는 공양미와 기와의 공덕도 지대하다. 더구나 부처님이 계신 우리나라의 모든 전각들 속에 자신이 시주한 기와가 들어 있다는 생각을 해보라. 이보다 더한 기쁨과 공덕은 그 어디에 있겠는가.

부처님께 올리는 시주는 많고 적음에 있는 게 아니라 ‘심념(心念)’을 담고 올리는 공양이어서 그 공덕은 매우 크다. 그래서 우리가 한 달에 한 번씩 순례를 나서는 것은 세세생생 동안 쌓는 공덕임을 명심해야 한다.

선묵스님 군종특별교구장ㆍ도안사 회주

[불교신문3406호/2018년7월7일자] 

선묵 혜자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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