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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머문 그 곳] <42> 군산 임피역 & 발산리 석탑·석등일제 수탈의 거점, 그곳에 덩그러니 남겨진 성보

 

군산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일제 수탈의 생생한 현장들
성보조차 예외이지 않았다. 

맨 앞이 보물로 지정된 빼어난 조각의 석등이다. 오른쪽이 발산리 5층석탑과 발산초등학교가 보인다.

지방 어디든 저마다 지역적 특색이 있다. 하지만 배경지식이 없는 이에게 조차 각인 될 만큼 강한 무언가가 있다면, 더욱이 그것이 수백 년도 넘은 기억저편 흐릿한 시간의 흔적이 아니라면 그 특색은 더욱 도드라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생적 생명력을 가진 거대한 도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헐고 다시 짓는 도시재생 과정이 쉼 없이 이어져 옛 흔적은 서서히 지워진다. 하지만 군산이라는 곳은 일제가 수탈을 위한 세운 항구와 철도가 유기적으로 맞물린 당시의 신도시였다. 그러기에 해방으로 그 필요목적이 사라진 이후 군산은 일제강점기의 근대화와 맞물린 수많은 흔적이 시간이 멈춰선 공간처럼 펼쳐진다. 

①임피역사 내부. 두루마기와 한복을 입은 실물크기의 동상들이 있다.

이번 여정은 그런 모습이 잘 알려진 군산 시내가 아닌 외곽에서 찾았다. 먼저 도착한 곳은 임피역(등록문화재 제208호). 군산시 임피면에 자리하고 있으면 현재도 한적한 농촌마을이다. 연한 파스텔 톤의 역사(驛舍)는 이제 막 촬영을 마친 영화 세트장처럼 단정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흔적은 머물다 돌아 설 때까지도 발견할 수 없었다. 마치 시간이 멈춰진 곳을 홀로 거니는 것 같았다. 역사 안에는 열차시간표 옆에 시간마다 종이 울리는 괘종시계가 멈춰진 상태다. 물론 설정이지만 예스러운 분위기는 충분히 돋운다. 역사 곳곳에는 두루마기에 중절모를 쓴 아저씨, 머리를 쪽지고 보따리를 들은 아주머니, 기차표를 파는 정복 입은 역무원 등의 실물 크기의 동상들도 자리하고 있다. 

②막 촬영이 끝난 영화 세트장 같이 단정한 임피역 전경.

1990년대 후반 다른 교통수단으로 인해 군산선의 이용객은 급격히 줄어들고, 2006년에는 역무원이 사라지고 2008년에는 열차운행이 완전히 중단됐다. 1912년에 문을 연 임피역은, 일제가 쌀을 수탈하기 위해 만든 군산선 중간 간이역 역할을 담당했다. 현재의 역사는 1910년대 후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1936년 개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서양의 간이역과 일본식 가옥을 결합시킨 모습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등록문화재 제208호로 지정되었다. 

방치되던 역사는 2013년부터 군산시가 이곳을 ‘일제 수탈의 역사’를 담은 역사문화공간으로 재정비했다. 한 쪽으로 새마을호 열차 2량을 객차전시관이 있다. 내부로 들어가면 일제감점기 수탈의 거점이 되었던 군산의 이야기, 군산선의 아픔, 임피역의 역사 등을 만날 수 있다. 

③객차전시관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쌀을 수탈해 군산항으로 향하는 임피역의 모형이 있다.

이어 도착한 곳은 차량으로 15분 거리의 발산초등학교다. 학교 뒤편으로 주차장과 화장실이 따로 마련되어있다. 이유는 군산 발산리 오층석탑(보물 제276호)와 군산 발산리 석등(보물 제234호)를 비롯한 여러 성보들이 학교 뒤편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석탑과 석등은 원래 완주 봉림사터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일본인 농장주에 의해 본인의 농장 정원으로 옮겨 놓은 것으로 발산 초등학교는 이후에 이곳에 자리 잡았다.

오층석탑은 고려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는 2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이나 현재는 탑신의 한 층이 없어지고 4층만 남아있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균형미가 돋보이며 고려시대 탑의 간결한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기단은 신라 석탑 양식을 계승하여 2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군산 발산리 석등(보물 제234호)은 불을 켜두는 화사석(火舍石)에는 4개의 창 사이에 악귀를 밟고 있는 사천왕상을 새겨, 부처님 법등을 꺼뜨리지 않겠다는 고려인의 불심이 담겨있다. 이 빼어난 조각은 둥글게 다듬은 기둥돌에서 다시 확인 할 수 있다. 승천하는 용의 모습이 큼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일반적인 석등의 기둥돌은 이처럼 크고 화려한 조각이 없다. 그래서 그 가치가 더욱 돋보이며, 보는 이들에게 환희심을 불려 일으킨다. 

④옛 일본인농장 창고. 튼튼한 잠금장치와 두꺼운 철문이 일반적인 창고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 옆으로 불과 30m 정도 거리에 군산 개정면 구 일본인농장 창고(등록문화재 제182호)가 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구조다. 단순한 곡물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가 아니다. 입구에는 미국에서 들여온 금고문이 달려 있고 창문에는 이중 잠금 장치가 되어 있다. 무언가 귀중품을 보관하기 위한 별도의 장소인 것이다. 

빼앗은 것들을 군산에 모아 배에 실려 일본으로 보내지던 시절, 군산은 일제가 보인 탐욕의 현장이 생생히 남겨져 있었다. 그 탐욕에는 성보도 예외일수 없었다.

⑤발산리 5층석탑 주변에는 어디서 가져왔는지도 불분명한 주초석과 석조들도 함께 있다.

[불교신문3405호/2018년7월4일] 

군산=신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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