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꽃이 하얗게 필 동안
밤은 세 걸음 이상 물러나지 않는다

벌떼 같은 사람은 잠 들고
침을 감춘 채
뜬소문도 잠 들고
담비들은 제 집으로 돌아와 있다

박꽃이 핀다

물소리가 물소리로 들린다

-신대철 시 ‘박꽃’에서

바깥의 소요가 사라진 고요한 상태에 비로소 이르렀다. 캄캄한 밤의 가장 조용하고 잠잠한 한 순간에 희디 흰 박꽃이 홀로 가만히 피어난다. 잉잉거리는 벌떼와도 같은 분주함이 그치고, 근거 없이 이 사람 저 사람 입에 오르내리던 소문이 잦아들어서 세계는 순일(純一)한 상태에 놓여있다. 그리하여 물소리가 물소리로 또렷하게 들린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여실하게 보인다. 낮의 빛이 모두 가라앉은 때에, 활동이 멈춘 때에 티 없이 깨끗한 한 송이의 꽃이, 하나의 생명이 세계에 피어난다. 이 순백한 꽃은 우리 정신의 신성성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대립과 갈등이 극복된 이후에 얻게 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본래부터 있었던 교감과 평화의 그 정신이라고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불교신문3404호/2018년6월30일]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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