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불기 2562 (2018).7.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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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듣는 사자후] <32> 범어사 고암대종사, 대담 : 무산스님 본지 논설위원“대도는 무문이야, 뒤로 볼 때 열려 있지”
“수행자가 명리에 떨어지면 공부 늦어져”

오랫동안 종정(宗正)으로 있으며 조계종의 선지(禪旨)를 높이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은 고암(古庵) 대종사. 평생을 오직 선수(禪修)로 일관, 많은 납자(衲子)들을 제접(提接)한 스님을 찾아 나섰다. 나주 다보사(多寶寺) 시절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직 수선(修禪)과 일상청규(日常淸規)로 몸을 맑혀 나온 고암대종사는 그 티 없는 미소와 밝은 직심으로 무언의 계도(啓導)를 펴 제접하는 모든 이의 마음에 진실과 가식이 어떻게 다른가를 분명히 대비시켜준다. 노사의 미소는 만법의 뿌리가 진심에 있음을 열변으로 말하는 듯하며, 계략이나 책략이 섞이지 않는 지침(指針)은 염화미소의 깊은 도리를 분명히 밝혀준다. 오늘을 살면서 우리 모두가 문제로 안고 있는 것은 진정한 인간성의 회복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진실로 부처님 근처에 이르는 정진을 할 수 있는 요체(要諦)는 무엇인가. 고암대종사를 범어사로 찾아 오늘을 사는 부처님의 법손(法孫)들이 어떻게 있어야(存在)하며, 무슨 일을 하고 가야할지 그 깊은 경지를 알아보았다. 

제3대에 이어 4대 종정을 지낸 고암대종사. 불교신문 자료사진

“조심히 잘살아라 인과가 분명하니” 

고암스님은 1899년 10월5일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식현리 425번지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윤문 선생, 모친은 하원행(河原幸)여사. 스님의 속명은 지호(志豪 또는 之壕). 어려서 한문을 익힌 스님은 적성 공립보통학교를 마치고, 합천 해인사에서 제산스님을 은사로 불문(佛門)에 들었다. 1917년 세수 19세 때였다. 해인사 강원에서 공부하던 스님은 1919년 3ㆍ1운동 당시 독립만세 비밀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해인사 불교강원을 졸업하고, 1922년 용성스님에게 구족계와 보살계를 수지했으며, 훗날 용성스님에게 전법게를 받았다.
스님은 1923년 7월 해인사에서 수선안거 한 이래 직지사 천불선원, 통도사 극락선원, 덕숭산 정혜선원, 도봉산 망월선원, 백양사 운문선원, 천성산 내원선원, 오대산 상원사선원 등에서 정진했다. 이때 제산, 혜월, 만공, 용성스님 회상에서 공부의 깊이를 더했으며, 유점사, 표훈사, 마하연, 묘향산 등 북녘 선원에서도 정진했다. 고암스님은 해인사, 백련사, 표훈사, 직지사, 범어사 선원의 조실, 그리고 나주 다보선원장, 해인사 용탑선원 조실로 대중을 제접했다. 스님은 1967년 7월 제3대 종정, 1972년 7월 제4대 종정으로 취임하는 등 한국불교 최고의 어른으로 후학을 인도했다. 
스님은 1988년 10월25일(음력 9월15일) 오후8시 가야산 해인사 용탑선원에서 원적에 들었다. 법랍 71년, 세수 90세로 입적해 드는 순간까지 “조심해서 잘 살아라. 인과가 분명하니라”는 말을 남기며 후학들을 위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진실로 묘한 뜻은 
말이 끊어졌으나
글과 말을 빌어서 
그 뜻을 말하고 
참종지가 그 모양은 아니나
이름과 모양을 빌어서 
그 종지를 표방한다
 

근세 한국불교사는 격동과 혼란으로 점철되어 왔다. 조선조의 억불, 일제의 왜색 불교화, 한국전쟁 전후의 격동은 이 나라 불교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하였다. 그러나 1600여 년 동안 우리민족과 그 운명을 같이 해온 이 나라 민중 속에 뿌리박은 민족 종교가 쉽게 맥이 끊어질 수는 없었다. 조선조에도 훌륭한 고승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이들은 구국의 선봉이 되기도 하였다. 일제 때도 우리는 백용성, 한용운스님과 같은 구국선사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돌이켜 보면 6ㆍ25사변 때 피난을 갔던 정부가 환도했을 때 한국불교사의 대전환이 전개된다. 이른바 진리파지(眞理把持) 운동이라고 일컬어지는 정화불사가 곧 그것이다. 고암대종사는 근대의 선지식으로 이러한 와중 속에서 살아오신 산 증인으로서 제3대, 4대 조계종 종정을 역임하셨다. 필자가 금정산 범어사를 찾아갔을 때 큰스님께선 언제나 처럼 악수(握手)를 청해 오시면서 자비스러운 미소만 머금고 계실뿐 어떠한 물음에도 “다 그런 거여, 다 그런 거여” 하실 뿐, 다만 악수와 미소로만 대답하실 뿐 더 말씀이 없었으나 마감시간에 쫓기는 편집자의 얼굴이 떠올라 두서없이 서둘지 않으면 안 되었다. 

- 큰스님께서 해외 불자들을 위해 해외에 머물다 오신 줄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국력신장과 함께 해외로 나가는 교포가 날로 늘어나고 따라서 우리 스님들도 교포사회의 포교를 위해 해외 특히 구미지역에 나가 노력하는 스님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초창기라 여간 어려운 점이 많지 않을 텐데 큰스님께서 직접 돌아보고 느끼신 소감부터 듣고 싶습니다. 

“그곳 스님들은 한마디로 말해 모두가 불보살의 화신(化身)들이야. 여기서 생각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어. 우리는 저마다 정진만 잘하면 뜨뜻한 방에 앉아서 공양을 받지만 그곳 스님들은 잠시도 쉴 시간이 없는 것 같아. 교포신도들의 생업에서부터 자녀들 교육에 이르기까지 늘 관심을 갖고 보살펴 주고 있는데 행원스님과 법안스님, 도안스님, 대원스님 같은 스님은 변호사(?) 소임까지 맡을 때가 많았어. 왜냐하면 처음 간 교포들이 무슨 교통사고와 같은 불미스러운 사건이 생기면 말도 통하지 않고 그곳 법들도 잘 모르기 때문인 것 같았어.”

- 큰스님 말씀을 들으니 입전수수(入廛垂手)란 말이 떠오릅니다. 자리(自利)의 수행을 마치고 6도(度)의 저자골목에 들어가 자유자재하게 이타교화(利他敎化)하는 우리 스님들의 장한 모습 말입니다. 그런데 평소 큰스님을 존경하는 많은 불자들은 언제 큰스님께서 출국해서 귀국하셨는지 그것까지 모르고 큰스님의 근황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이 많습니다. 신문의 동정란에 알리고 싶어도 큰스님께 누가 될까 싶어 알리지 않습니다. 

“그런 거 앞으로도 알리지 않는 게 좋아. 신문에 이름 자주 나오면 유명해져. 승(僧)이 유명해지면 명리(名利)에 떨어지기 쉬워. 따라서 명리에 떨어지면 공부 잘하기 어렵지. 부처님이 아라한에게 말씀하시되 ‘미륵의 발심이 나보다 42겁을 앞섰으나 내가 그 후 발심하여 대정진을 일으켜 마침내 그보다 9겁 앞서서 무상정각을 이루었노라’고 하셨지. 무슨 말인가 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은 후진이로되 42겁 선배를 뛰어넘은 것은 정진과 해태가 그러한 것이었단 말이지. 경(經)에 이르기를 미륵은 명리에 탐착하여 높은 문벌 사람과 사귀기를 좋아했다 했으니 미륵이 먼저 배웠으되 뒤에 이루게 됨은 그 까닭이 결코 다른 데 있지 않았다는 뜻이지. 부처님은 명리를 버리고 산림에 들어가 국왕 대신들과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륵을 앞섰다는 해석이 되는 것이지. 그러므로 고대 인도의 수행자들은 국왕의 예경까지 거부했다는 거야. 헌데 언제부턴가 출세간인이 세간법에 얽매여 있는 느낌이 들어. 출세간법보다 더 좋은 법이 없는데….”

1982년 2월21일 불교신문 3면에 실린 신춘탐방 ‘고암대종사를 찾아서’.

- 큰스님의 말씀은 결국 명리승이 되면 공부가 그만큼 늦어진다는 경책이겠습니다만 이 순간 저의 마음이 그 무슨 매를 맞은 것처럼 아파옵니다. 

“그건 마음이 동요한 탓이지. 심생즉(心生卽) 종종법생(種種法生)이요, 심멸즉(心滅卽) 종종법멸(種種法滅)이라, 마음이 동요하면 가지가지 현상이 생기고 마음이 가라앉으면 가지가지 현상이 사라지는 것이지. 그러므로 명리에 떨어지기 전에 도(道)공부를 해야 하지. 그렇다고 해서 도를 먼 곳에서 구할 생각은 버려야해. 달마대사는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라 했거든. 여래의 8만4000의 법문 그 모두가 마음을 설한 것이란 의미지. 그러므로 <화엄경>에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하라 했어. 중생이 하는 말, 그것이 여래의 말이며, 중생의 마음 그것이 여래의 마음이야. 더 나아가 생산하는 일, 기술공예 이 모두가 여래보광명지(如來普光明智)가 운위하는 상(相)과 용(用)이지 절대로 다른 아무것도 아니지. 그러나 말과 글을 따라다니면 안 돼. 말은 뜻대로 다 하지 못하고(言不盡意) 글도 뜻대로 다 쓰지 못한다(書不盡言) 했거든.” 

- 제가 공부를 하지 못한 탓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방금 큰스님께서 하신 말씀에 말은 뜻대로 다하지 못하고 글도 뜻대로 다 쓰지 못한다는 말씀은 오로지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만 통한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무식한 생각을 여기서 말씀드리면 요즘 대중불교라 하여 시대의 변천추이에 따라 불교서적도 많이 나와야 하고 대중을 상대로 설법도 많이 해야 한다고 하고 마땅히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언어문자를 사용하지 않고 어떻게 대중불교를 전개하겠습니까? 저는 선방에서 정진을 해보지 못한 탓인지 선방 스님들이 언어문자를 배격하는 것을 볼 때 안타깝습니다. 이에 큰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물론 선문(禪門)에선 지해(知解)는 금물이야, 옛적 덕산(德山)은 모든 경교(經敎)에 통달했지만 특히 <금강경>의 권위자로서 그의 성을 따서 주금강(周金剛)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사람이었어. 하루는 주금강이 말하기를 경(經)에 보살이 성불하려면 십천겁(十千劫) 정진을 거쳐서 육도만행(六度萬行)을 닦아야 한다고 하였는데 소위 남방의 선객들은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오직 한 찰나에 성도한다고 하니, 이런 해괴망측한 일이 있을 수 있느냐 하고 남선돈오배(南禪頓悟輩) 토벌(討伐)의 길을 떠났는데 마침 한 고갯길에 접어들어 주막에서 점심을 청하자 주인노파가 그의 보따리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지. 주금강은 의기양양하게 자기가 저술한 금강경소(金剛經疏)라고 대답하자, 그 노파가 묻기를 금강경에는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 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이라고 분명히 쓰여 있는데 스님은 지금 그 어느 마음에 점심을 하시려고 하느냐 하고 물었지. 그때 말문이 막힌 주금강은 노파의 지시에 따라 용담숭신(龍潭崇信)스님에게 가서 머무르게 되었지.

어느 날 밤늦도록 숭신을 모시고 있다가 자기 처소로 돌아가려 할 때 밖이 캄캄하고 길을 분간하지 못하겠는지라 다시 돌아보니 숭신화상이 촛불을 켜주었어. 헌데 그가 촛불을 받아들이자마자 화상은 그 불을 확 불어서 꺼버렸지. 그 찰나에 주금강은 문득 깨치고 그가 귀중히 여기던 <금강경소>를 불당 앞에서 불살라버렸다는 이야기가 있고, 또 대혜보각(大慧普覺)선사는 공안(公案)에 대한 의해(義解)의 시폐(時弊: 그 시대의 잘못된 폐단)를 광구(匡救: 잘못된 것을 바로잡음)하기 위해 원오극근(圓悟克勤)선사가 편찬한 <벽암록(碧巖錄)>을 모아 모조리 불살라버렸다는 고사(故事)가 있지. 이것이 어구의해(語句義解)가 득도에 얼마나 장애가 되는가를 역력히 보여준 것이지.”

- 그렇지만 방금하신 큰스님 말씀도 사실은 언어문자가 아니십니까? 

“그리니까 아까 말과 글을 따라 다니지 말라 했지. 그렇게 가까이 일러줘도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금강경소나 벽암록을 태운 것은 언어문자에 집착하지 말라는 경책이지. 그 언어문자 자체를 배격한 것은 아니야. 진실로 묘한 뜻은 말이 끊어졌으나 글과 말을 빌어서 그 뜻을 말하고(然而妙旨絶言 假文言以詮旨) 참 종지가 그 모양은 아니나 이름과 모양을 빌어서 그 종지를 표방한다(眞宗非相 假名相以標宗) 했거든.” 

- 언젠가 정휴스님이 옮긴 큰스님의 친견기를 보았습니다. 거기에 ‘윤회를 믿느냐?’고 물은 어느 신문의 설문을 말씀드렸을 때 큰스님께선 ‘나는 확신해 중생계에 그런 거 없으면 정말 섭섭해’라고 하신 말씀을 읽었습니다. 

“내가 언제 정휴수좌에게 그런 말을 했나 몰라. 그렇지만 인과는 말에 그치는 것만도 아니지. 선인후과(善因後果) 악인후과(惡因後果) 여영수형(如影形)이라. 선한 원인은 낙의 결과요, 악한 인연은 고(苦)가 되고 그것은 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거와 같다고 했지. 또 이런 시구(詩句)도 있어. 다행히 불법 만나 사람 몸을 얻어서(幸運法得人身) 여러 해 수행하여 성불하게 되었더니(歷劫修行近成佛) 진심을 한 번 내고 뱀의 몸을 얻었네(一起瞋心受蛇身) 마음은 있지만 말 못하는 입이라(合情口不言語) 꼬리로 글을 써서 이 사정을 말하니(以尾成書露進精) 원컨대 스님께서 염부제(인간세계)를 가거든(願師還向閻浮提) 이 형용 말씀하여 뒷사람을 깨우치소(設我形容誠後人). 이건 옛날 홍도(弘道)라는 비구가 있었는데 그가 죽어 뱀이 되었는데 그 뱀의 꼬리가 쓴 시야.”

중생이 하는 말
그것이 여래의 말이며
중생의 마음 그것이 
여래의 마음이야

그러나 말과 글을 
따라다니면 안 돼

- 앞서 큰스님께서 중생의 마음 그것이 곧 여래의 마음이요, 생산하는 일, 기술공예 그 모두가 여래보광명지가 운위하는 상(相)과 용(用)이라 하셨는데 그렇다면 굳이 인과를 생각할 필요도 없이 입득세간(入得世間)해서 자재무애로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에 큰스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합니다. 

“어디서 ‘입득세간’이란 말을 들었군. 그런데 그게 큰 잘못이야. 입득세간이란 음주(飮酒), 식육(食肉)도 무방하다는 유탕(遊蕩: 기분 내키는 대로 마음껏 놂)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야. 그런데 근래에 정당한 방편도 모르고 일종의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무명업전(無明業田)에 내맡겨져 온갖 조악(造惡)을 현행(現行)하는 것을 입득세간의 뜻으로 착각하고 있어. 세속적인 사람들의 그 날 그 날 생의 의욕 그대로가 지도(至道)니, 다시 더 깨침을 구할 바가 없다느니, 다만 마음 가는대로 생심동념(生心動念) 물욕의 세계에 집착도 무방하다느니, 하는 따위 충동적인 본능은 궁경(窮經: 경학을 깊이 연구)적인 진리로 믿는 집착(執着)에 불과해. 

원래 입득세간이란 환경이 나에게 유리하건 불리하건 간에 좋은 것 나쁜 것에 집착하여 취사선택을 하지 말고, 단견(但見)·단문(但聞) 좋은 것 나쁜 것으로서 대상의식의 기멸(起滅)이 없는 경지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이것을 일러 입득세간이라는 것이지. 무증무득(無證無得)이 진실로 미오(迷悟)의 차별상(差別相)을 여의는 것이요, 이것이 곧 유위변천(有爲變遷)의 생멸법(生滅法)을 벗어나는 것이지. 즉 유위(有爲) 생멸변천(生滅變遷)의 미감(迷感)의 세계로서 세간에 살면서, 그러나 무위변천의 생멸상으로서 대경(對境: 객관의 사물), 즉 대상적 사물의 유무와 진위 차별에 집착하지 않고 따라서 그것들에 의하여 거리낌 없이 무애자재하는 것이 출출간 즉 해탈의 의미가 되지. 그러므로 입득세간이 곧 출출간법(出出間法)이라 하겠는데 공부도 하지 않고 선지식 흉내부터 내면 안 되지. 헤엄을 배워야 바다에 가도 빠져 죽지 않는 거야.”

- 큰스님 말씀을 듣고 보니 문득 부처님은 이 현실에서 이 세계를 자기 자신에게서 이룩하였고 그는 그의 즐거움을 맛보고는 보리수하(菩提樹下)에서 다시 다른 나무 밑으로 자리를 옮겨 무량(無限)한 기쁨에서 떠나지 못했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때 부처님이 얻은 정각의 내용이 되고 있는 이 세계의 풍광을 상상하면서 극히 상식적으로만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큰스님께서 한 번 더 일러 주셨으면 합니다. 

“불교가 희구하는 이상세계는 물질적인 세계가 아니라 그 정신적인 세계에 바탕을 두지. 그 세계는 희(喜)·노(怒)·애(哀)·락(樂)의 지적인 세계가 아니라 대상적 대립을 떠난 깊고 넓은 영묘한 무분별의 세계야. 비유하여 현실세계는 감각과 지(知)에 의하여 분별 속에서 고뇌를 받는 세계라면 이 영묘한 무분별의 세계에는 감각이나 지성보다는 차원을 달리하는 영성적주체(靈性的主體)라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나 감각이나 지성에도 불성(佛性), 영성(靈性)이 따르지. 그러므로 이들 감각이나 감성과는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고 할 것이니 불성의 세계를 본체계의 법계라 하면 감각의 지적 세계는 현상계라고 할 수 있어. 

영성이란 말이 적당치 않으면 부처님의 깨달음의 그 마음인 만큼 각성 또는 불성이라 해도 좋을 테지. 이 불성은 인간적인 모든 심의활동(心意活動)이 멸각(滅却)된 후에 나타나는 절대적 근원적인 것이지. 이러한 불성은 분별하는 주체가 되는 무분별 지(智)라고 하는 것이니 그것을 또한 청정세간지(淸淨世間智)라고도 할 수 있지. 그러나 이것을 어떤 특수한 개체(個體)나 실체(實體)로 보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야. 만약에 특수한 개체나 실체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지성으로 분별하는 것이므로 자성(自性) 곧 불성은 이런 분별지(分別智)가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있다’ ‘없다’ ‘이렇다’ ‘저렇다’ 하고 말을 붙일 수가 없어.” 

- 그러한 큰스님의 말씀을 일러 흔히들 말하는 종교세계의 불가사의(不可思議)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나 부처님을 믿는 사람이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있다’ ‘없다’고 따지지 말라는 말씀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부처님은 자기 자신의 근본에 있는 영성, 불성을 보았을 때는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있다’라는 말은 ‘없다’라는 말을 상대로 한 말이 아니라 ‘유무를 떠나서 그저 무조건 있는 것이다’라는 의미로 받아진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래 사람은 다 그 영성이 밝게 나타났을 때 참된 사람이 되는 것이지. 참선하는 수좌들이 먼저 심의식(心意識)을 지멸(止滅)시키는 것도 이 영성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한 것이요, 염불삼매에 들었을 때 불보살을 친견하는 것도 이 영성의 눈 심안으로 보는 것이지. 이 영성이 곧 무량광불이요 불국토야. 여기에는 시간적으로 영원한 것이요 공간적으로 무한하여 대립이 없고 생사윤회의 업보가 없는 것이지 하지만 이것도 다 말이야 아까 말을 따라다니지 말라고 내 분명히 일러 주었지.”

-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더 올리고 물러나가겠습니다. 큰스님께선 민족대표 33인의 한 분이신 용성스님으로부터 ‘부처와 조사도 원래 알지 못하고(佛祖元不會) 나도 또한 알지 못함이라(掉頭吾不知) 운문의 호떡은 둥글고(雲門胡餠團) 진주의 무는 길기도 하다(鎭州蘿菊長)’란 전법게를 전수받으신 줄로 알고 있습니다. 저 개인에게 하셔도 좋고 전 사부대중에게 하셔도 좋겠습니다. 당부의 한 말씀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당부라니 다 말했어. 그저 신심만 돈독하면 돼. 화엄회상(華嚴會上)에서 선재동자(善財童子)가 110성(城)을 다니면서 53선지식을 두루 참배하여 무상과(無上果)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신심에서 비롯된 것이요, 법화회상(法華會上)에서 8세의 용녀(龍女)가 구슬을 올린 공덕으로 무구세계(無垢世界)에 가서 성불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의 믿음에서 이루어졌거든. 이러한 불퇴전의 믿음이 확고해 요지부동하면 되지. 누가 뭐라 해도 오로지 신심이지. 이 신심만 확고하면 계행도 청정해지고 자비심도 베풀게 되고 자기 자신의 허물도 자연적으로 알게 되지. 따라서 참선하는 이는 견성하고 염불하는 이는 삼매를 얻고 주력하여 법신을 증득(證得)하고 간경(看經)하여 혜안이 열려 번뇌가 완전히 제거되지. 그러니까 화두를 드는 이도 철저하게 염불이나 관음주력을 하는 이도 철저하게 간경을 하는 이도 철저하게, 대도(大道)는 뒤로 볼 때 열려 있지, 앞으로 볼 때 무문(無門)이지.” 

“이 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

 무산스님<사진 아래>은 오현스님(속명)으로 더 알려져 있다. 193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1939년 입산했다. 성준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59년 직지사에서 성준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8년 범어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불교신문 주필과 제8, 11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과 신흥사 주지를 역임했으며, 종단의 최고법계인 대종사 법계를 품수했다. 종단의 원로의원과 신흥사 조실, 백담사 조실, 조계종립 기본선원 조실로 있으면서 후학을 지도해 왔다.
무산스님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시조시인으로 문학을 통해 부처님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 등 포교분야에도 지대한 업적을 쌓았다. 특히 지난 1996년 만해스님의 유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설립, 각종 포교사업과 문화예술, 학술사업 등을 펼쳤다. 
매년 8월 강원도 인제에서 만해축전을 개최해 불교계뿐만 아니라 전국의 문인, 지역민이 함께 하는 축전으로 만들었다. 또 평화 문학 학술 실천 포교 예술부문에서 만해정신 선양에 뚜렷한 업적을 남긴 이들을 발굴해 시상하는 ‘만해대상’을 운영해 세계평화와 문화교류에도 앞장섰다. 1968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으로도 잘 알려진 스님은 현대시조문학상(1992년), 남명문학상(1995년), 가람문학상(1996년), 한국문학상(2005년), 정지용문학상(2007년), 공초문학상(2008년)등 문학상을 휩쓸었다. 
지난 5월26일 주석처인 속초 신흥사에서 입적했다. 법납 62년, 세수 87세. 스님은 “천방지축(天方地軸) 기고만장(氣高萬丈)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살다보니 온 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 열반송을 남겼다.

[불교신문3404호/2018년6월30일] 

정리=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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