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현장에서 우리 안의 '정상회담'을 합시다"

6월 16일, 마산 오동동 문화광장으로 시민들이 하나둘 모여듭니다. ‘은빛순례단과 함께 하는 평화문화제’가 있어서죠.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뛰노는 아이들의 발그레한 얼굴과 청량한 웃음소리는 그 자체로 자유입니다. 그러한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이웃들과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아빠들의 미소는 그 자체로 평화입니다. 더 바랄 것이 없이 자신으로 살아가는 이런 모습이 바로 평화가 아닐까요?

은빛순례단이 길을 나선지 4개월째입니다. 지난 3월1일부터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내년 3월 1일까지 일 년을 약속하고 나선 길, 그동안 서울-인천-충청남북도-대전-전라남북도를 걸어 현재 경남지역을 순례 중입니다. 은빛순례단이 하는 일은 아주 단순합니다. 걷고 듣고 대화하는 것입니다.

걷고 듣고 대화하는 것이 순례의 일상

걷기순례는 지역의 삶과 역사를 만나는 길입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3.1운동의 정신으로 하나 되자’는 뜻을 세운 만큼,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독립과 자유와 평화를 위해 노력했던 자취들을 찾게 됩니다. 동학과 의병전적지, ‘대한독립만세’를 목 놓아 외쳤던 장터들, 한국전쟁 당시의 교전 현장들, 그리고 남도에 오니 여순사건의 상흔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그런 현장을 대면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지만, 고통의 현장이 곧 발원이 있어야 하는 현장이고 성찰과 희망을 말하는 곳임도 깨닫습니다.

경청순례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생각들을 듣는 길입니다. 보수든 진보든, 노동자든 자본가든, 어른이든 젊은이든, 시민사회든 관이든 개의치 않습니다. 그동안 종교계의 어른들을 찾아 평화를 위한 길을 여쭈고, 3.1운동 때 그러했던 것처럼 종교계 어른들이 앞장서주실 것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지역의 시민활동가들과 함께 자유총연맹을 방문하여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연찬순례는 나를 내려놓는 수행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기억이나 편견으로 사건이나 사람을 단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가 옳은가’를 따지는 토론이 아니라 이 시점에서 ‘무엇이 옳은가’를 함께 탐구합니다. 그 안에서 내안의 평화, 일상의 평화, 세상의 평화가 둘이 아님을 배웁니다.

이외에도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강연순례, 평화를 주제로 한 문화행사를 하기도 합니다.

간절함이 깊어지면 길이 보인다.

순례는 간절함이 깊어지면 내가 비워지고 평화가 온다는 것을 배우는 길이기도 합니다.

서울에서의 첫 순례는 현충원 참배. 순례참여자 가운데는 전 대통령들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이 있거나 그들로 인해 고초를 겪은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부영 선생도 그 중 한 분이었는데 참배에 함께 했습니다. “마음이 복잡했지만 이것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우리 역사가 또 다른 질곡 속에서 갈등과 대결을 되풀이할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승만, 박정희 두 전 대통령 묘소에 참배하면서 제 마음속에서 무엇인가 씻겨 나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순천에서는 여순사건 유족들과 함께 군경충혼탑을 방문했습니다. 유족의 입장에서는 가해자라고 볼 수 있는 이들의 위령탑입니다. 유족들은 이곳에 오는 것이 괴롭고 복잡한 심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현충탑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본의 아니게 공권력에 의해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 자기가 살려고 어쩔 수 없이 학살에 가담해야 했던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라면서 “이제 동시대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로서 함께 위령을 해도 좋겠다.”고 마음을 여셨습니다. 우리 민초들이 그 어떤 정치인이나 전문가들보다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고 너그럽고 삶의 진실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한반도 평화, 우리 안의 정상회담이 바탕이 되어야

최근 일어난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은 물론 전 세계가 기뻐했고 감동했습니다. 그러나 외부에서 주어진 기쁨과 감동만으로 평화가 오는 것은 아니겠지요. 만약 내안의 평화, 일상의 평화가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설령 통일이 된다고 한들 그게 평화로운 새길이 될까요?

도법스님은 순례길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만약 북미 간에 험악한 ‘말폭탄’을 주고받을 때, 우리 정부나 국민들이 ‘우리도 이제 전쟁을 준비해야 돼’라고 함께 받아쳤다면, 우리에게 현재와 같은 희망이 주어졌을까요? 남북이 대립했던 과거문제를 일일이 따지면서 ‘이것이 먼저 해결되어야만 대화를 하겠다.’고 했다면,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했을까요? ‘어떤 이유로도 한반도에 전쟁은 안 된다’는 대통령의 확고한 신념,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는 국민들의 간절한 열망이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냈습니다. 평화를 이루려면 먼저 인내와 관용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 내 가족, 내 이웃, 내가 사는 현장에서 ‘우리 안의 정상회담’을 합시다. 내 삶에서 스스로 기쁨과 감동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내가 바로 평화가 되어야 합니다. 평화는 그렇게 옵니다.”라고.

※ 순례단은 7월까지 걷고, 9월부터 제주에서 시작하여 경북지역과 동해안을 따라 강원도로 향해 올라갑니다. 내년 3월 1일까지 진행될 은빛순례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인터넷에서 ‘은빛순례단’으로 검색)

수지행 실상사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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