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꽃 피면
앵두바람
살구꽃 피면 
살구바람

보리바람에
고뿔 들릴세라
황새목 둘러주던
외할머니 목수건

-박용래 시 ‘앵두, 살구꽃 피면’에서

앵두나무에게 바람이 불어가면 바람에는 앵두꽃의 향기와 빛깔이 실린다. 바람이 살구꽃 핀 살구나무에게로 가면 바람은 살구꽃의 향기와 빛깔과 모양을 한다. 또 어느 날에 바람은 보리바람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보리바람에는 따뜻한 빛과 기운이 덜 들어 있어서 어린 아이들은 고뿔에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보리바람이 불어오면 외할머니는 목수건을 가녀린 손주의 긴 목에 둘러준다. 
박용래 시인은 1925년 충남 논산군 강경읍에서 3남 1녀 중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눈물이 많았다. 소설가 이문구 선생은 “(박용래 시인은) 누리의 온갖 생령(生靈)에서 천체의 흔적에 이르도록 사랑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사랑스러운 것들을 만날 적마다 눈시울을 붉히지 않은 때가 없었다.”라고 회고했다. 그러한 성품이었기에 그의 시는 매우 자상하고, 속 깊고, 사람의 아픈 형편을 잘 알아 다독이고 위로한다.

[불교신문3402호/2018년6월23일자]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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