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주지 않는 것을 가지지 않기를 넘어서서 아낌없이 주기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일터에서 일을 슬기롭게 하고
지친 이들이 다시 일어서도록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도 좋지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을 주는 것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일이지. 그리고 뭘 팔아야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에게 물건 사주기가 있지. 일터에서 일을 슬기롭게 하는 것도 좋은 주기라 할 수 있어. 지치고 힘든 이에게 용기를 북돋워주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해주기도 좋은 본보기지. 
여러 해 전, 몹시 추운 겨울날이었어. 용산역에서 왕십리를 가려고 경의중앙선열차를 탔어. 용산역이 기점이라서 올라타고도 몇 분을 더 기다려야 했지. 열차 안으로 돌개바람이 몰려 들어와서 난방이 소용없었어. 그즈음 문이 닫혔어. 다 닫힌 게 아니라 드문드문 열린 문이 있었지. 알고 봤더니 기관사가 차 안에서 떨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해서 사람들이 내려오는 계단 앞에 있는 문만 열어놓고 나머지 문은 닫았던 거야. 그 뒤로 이태 지난겨울에 “이 열차는 죽전역까지만 가는 열차입니다. 수원 쪽으로 가실 분들은 이곳 오리역에서 갈아타시기 바랍니다. 죽전역은 지상이라 몹시 춥습니다”하는 소리를 듣고 부랴부랴 열차에서 내린 적이 있었어. 일깨워주지 않았더라면 오들오들 떨며 열차를 기다려야 했을 텐데.
덧붙여서 소년법정에서 일어난 일을 하나 들려줄 게. 부장판사가 범죄를 저지른 16살 난 소녀를 일으켜 세웠어. 그리고는 “자, 나를 따라 힘차게 외쳐 보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생겼다!”라고 했어. 느닷없는 말에 어리둥절해 하던 이 아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는 세상에서…”하고 입을 뗐어. “더 큰 소리로 따라 해 봐.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다!” “이 세상에 나 혼자가 …” 큰 소리로 따라 하던 소녀는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어.
이 아이는 친구들과 오토바이를 훔쳐 달아난 혐의로 법정에 섰던 거야. 한 해 전 가을부터 절도·폭행을 14건이나 저질러 이미 한 차례 소년 법정에 선 적이 있었어. 간호사를 꿈꾸던 이 아이는 남학생들에게 끌려가 집단성폭행을 겪은 후유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고,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몸이 마비되기까지 했어. 저 때문에 어머니가 그렇게 됐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엇나가기 시작하더니 거친 아이들과 어울려 범행을 저지르고 말았던 거지. 법대로 하면 ‘소년보호시설감호위탁’처럼 무거운 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었지. 그러나 판사는 이 아이에게 저렇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아무 처분도 내리지 않는 ‘불처분 결정’을 내렸어.

[불교신문3402호/2018년6월23일자] 

변택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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