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수행하고 있는지 돌아보라”

가해 25년간 공부하며 빠알리어, 산스크리트어, 티베트어를 익힌 스님은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를 아우르는 학자다. 오랜 시간 부처님 법을 공부해 온 스님은 초기와 대승불교, 한국불교의 수행의 현실을 즉문즉설했다. 김형주 기자

“내가 초기불교를 사랑하는지, 대승불교를 사랑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가진 견해를 놔버리고 나하고 가깝지 않은 사상이나 사람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릇된 견해를 올바르다고 집착하는 견취(見取)를 깨뜨리고 다스리는 것이 곧 수행이다.”

제16교구본사 고운사 화엄승가대학원장 등현스님은 초기불교를 전공한 스님이다. 스님은 출가해서 25년간 스리랑카, 인도, 미얀마 등을 다니며 초기불교를 공부했다. 빠알리 경전, 산스크리트 경전과 티베트경전을 읽으며 초기와 대승불교를 이해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2년 전 한국으로 돌아온 스님은 화엄승가대학원장을 맡으면서 후배 스님들을 가르치고 있다. 스님은 초기, 대승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대신, 불교사상사를 바탕으로 초기와 대승불교의 간격을 매우는 탁견을 보여줬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에서 초기불교는 외도에 가까웠다. 30년 사이 한국불교도 많이 변했다. 초기불교가 대중화 된 것이다. 보수적인 승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재가자들 사이에 더 확산됐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에서 초기와 대승불교는 불편한 관계다. 스님은 “한국에 와서 느낀 게 초기와 대승불교 사이가 불교와 기독교 사이보다 나쁘다”며 “적대적인 모습을 보고 잘못됐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한다.

그 이유로 스님은 대승불교에 대한 오해를 꼽았다. 종교는 철학과 수행이라는 실천, 종교행위를 하는 일반 신도들로 이뤄진다. “일반 신도들의 종교행위, 방편적인 것으로 종교의 본질을 호도하고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승가교육 현장에서도 모순은 발견된다. 스님은 “초기와 대승불교가 필수과목이지만, 사상적으로 연결돼 있지 않다”며 “사자와 호랑이를 한 우리에 넣어 놓은 형국이라 혼란만 가중되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초기불교에서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사상적으로 어떤 식으로 발달했는지 흐름을 짚어줘야 한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 그 연구가 충분치 않다. 스님은 “깨달음은 대승경전에서, 선에서, 초기불교에서도 나온다”며 “다만 현대교육을 받은 사람은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공부를 했기 때문 초기불교 방법론을 친근하게 여길 수 있다. 쉽고 어려움의 차이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초기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이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초기불교시대처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계율만 봐도, 오늘날 한국 스님들은 초기불교에서 말했던 것처럼 돈을 가지지 않고, 소금을 소지하지 않고, 12시 지나면 밥을 먹지 않는 등을 실천할 수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마음은 초기불교를 지향하지만, 실천할 수 없기 때문에 수행하는 방법도 변용이 돼야 한다”며 “그것이 바로 대승”이라고 설명했다.

대승불교를 어머니라고 말하는 스님은 “어머니는 어머니인데, 죄를 지은 어머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검사다. 죄 지은 어머니를 그냥 단죄할 것인가, 아니면 나를 키우기 위해 어떤 죄를 어떻게 짓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진 않았는지 관찰해볼 것인가.” 질문을 던진 스님은 자신은 후자의 입장이라고 했다. 단죄를 하기에 앞서 본질적으로 좋은 점이 무엇인지, 변형된 것은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중론’ 선종 핵심사상으로 꼽혀
저자 용수보살 최고의 논리학자
우리나라 선 논리적 바탕 없어
100명 공부해도 깨달음 다 달라

철학적, 논리학적 기초 갖추고
선수행하면 공부 진척 있을 것

계 지키고 공덕 쌓아 마음공부
7선 실천 7악 다스리는 게 수행

스님은 초기대승에 주목했다. “인도는 세계 논리학이 발생한 두 나라 중 한 곳으로, 빠알리어 경전이나 산스크리트어 경전은 논리적이고 분석적”이라며 “초기대승 역시 논리적이었으나 중국을 거쳐 오면서 모호해졌다”고 말했다. 문장 전체 속에서 단어의 맥락을 이해해야 하는 중국어의 특징과, 기원후 5세기부터 등장한 인도불교보다 중국불교가 더 위대하다는 사상을 가진 사람들 때문이다. 11세기가 지나면 이 사람들은 인도불교와 단절하고 중국만의 불교를 지향한다. 인도티베트불교에서 대승하면 유식과 중관이 최고봉인 반면 중국불교에 와서는 유식중관보다 기신론이나 선종 돈교, 화엄경 원교 등을 으뜸으로 꼽는 것과 같은 차이를 보여준다. 대승불교 자체가 중국에서 왜곡된 부분이 있다 보니 우리나라도 오랜 세월동안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았다. 스님은 “유식중관을 공부한 사람이 대승을 얘기하면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며 “우리가 초기대승의 유산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지 대승불교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인도 바라나시 티베티안 불교대학서 강사를 초청해 <입중론> 강의를 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용수보살의 <중론>에 들어가기 위한 월칭대사의 해석서 <입중론>은 우리나라나 중국에선 번역되지 않았다. 중론은 선종 핵심사상이라 할 수 있다. 중론은 우리나라처럼 선종으로 꽃필 수 있고, 티베트에서처럼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접근해서 입무아, 법무아를 깨닫기도 한다. 스님은 “티베트 방법으로 하면 공부하고 나서 모든 사람이 동일한 이해, 동일한 토대를 가질 수 있다”며 “우리나라 선종은 논리적인 바탕이 없기 때문에 100명이 공부하면 100명 다 다른 깨달음이 나온다. 중론이 가진 논리성을 전수받지 못해서다”라고 지적했다.

선수행을 하는데 있어서 논리적 이해는 중요하다. “서양학자들 사이에서 용수보살은 지구상에 나타난 최고의 논리학자로 꼽히는데 철학이나 논리를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일생동안 선을 파고든다면 어떨까” 하고 반문한 스님은 “노력은 가상하나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철학적으로, 논리학적으로 기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선을 할 자격이 있다”며 “수학적 바탕이 없는 상태에서 인수분해를 하고 지수와 로그를 하니까 어렵기만 하고, 이상하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바탕을 갖춘 사람에게 선은 엄청나게 매력적인 가르침임에 틀림없다. 지식인들이 선에 매력을 느끼고 들어오는 이유기도 하다. 스님은 “위빠사나가 정점에 이르면 선종의 자세와 만난다”며 “위빠사나의 정점이 바로 선”임을 역설했다.

초기와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을 무아(無我)로 꼽는 스님은 “위타위기수미선(爲他爲己雖微善) 개시윤회생사인(皆是輪回生死因)이라 남을 도와주고 하는 게 다 윤회의 원인이라 남을 도와줄 것도 없다고 해 무아는 자칫 이기적일 수 있는데 이를 막는 게 바로 대승의 이타(利他)”라고 설명했다. 사회에서 종교를 존중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나 혼자 번뇌가 없고 나 혼자 편안하게 신선처럼 살면 존경받을 이유가 없다. 그것은 그 사람의 이익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가 됐던 자기 자리를 희생하고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사람들 도와주는 것이 있을 때 사람들은 존경한다. “종교의 근본적인 원리는 이타에 있다. 도교, 요가, 상키아와 불교의 차이점”이라는 스님은 “부처님이 존경받는 이유는 수없이 많은 중생들에게 대기법문을 설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부처님께서는 출재가를 막론하고 어떤 사람이 적정한 선의 상태에 이르고, 공덕을 짓지 않으면 수행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며 “도덕적 수준에 이르지 않으면 사이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상당수 사람들은 깨닫기 위함보다 자기 견해를 고집하고, 그것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수행한다. 이들이 진리를 찾는 것 같지만, 실상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수행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초기, 대승불교, 밀교, 기독교, 천주교에 가도 자신의 종교만 좋다고 내세울 가능성이 농후하다.

스님은 “공덕과 계율을 충분히 닦지 않으면 수행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얼마나 닦아야 수행할 수 있는지를 묻자 스님은 “지옥, 축생에 태어날 원인으로 몸과 입으로 짓는 7가지 악업을 행하지 않고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날 7선을 행하면 그게 곧 수행”이라고 말했다.

몸으로 하는 잘못된 행위 살생 투도 사음, 입으로 잘못된 행위가 거짓말, 이간질, 거친 말하는 것을 다스려야 한다.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연민하는 마음으로 바뀌고, 남의 것을 훔치려는 마음을 보시하는 마음으로 바꿔야 한다. 삿된 음행을 하는 것을 다른 생명들이 청정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죄를 밥 먹듯이 지으면서 수행하러 간다 하면 상내는 것일 뿐”이라며 “공덕을 짓고 보시를 하고 계율을 지키고 인간, 수라, 천에 태어날 수 있는 자량이 됐을 때 마음을 닦으라”고 당부했다.

등현스님은

근일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86년 사미계를, 1989년 구족계를 수지했다. 출가 후 선에서 구체적인 행로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스님은 1993년 스리랑카로 떠났다. 스리랑카, 인도, 미얀마 등에서 20년이 넘게 공부만 했다. 스리랑카 비구대학에서 7년을 공부하고, 인도 뿌나 대학, 바라나시 사르나트 티베티안 불교대학에서 공부했다. 빠알리어, 산스크리트어와 티베트어 외에 영어도 능숙하다. 해외서 오랫동안 공부하다보니 통역이나 강의가 가능하다. 

12개국 스님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태국 IBC(International Buddhist College)에서 3년간 강의했다. 지난 2016년 고운사 화엄승가대학원장 소임을 맡으면서 스님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화엄승가대학원 커리큘럼도 스님이 직접 구성했다. 초기불교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대승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갖는 데 초점을 맞췄다. 불교사상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1학기에는 초기불교, 2학기에는 불교역사 속에서 청정도론과 구사론이 어떻게 발달돼 왔는지 가르친다. 3학기 4학기에는 대승의 핵심인 유식중관을 가르친다.

후학들을 위해 산스크리트어 <십지경> <입중론>을 우리말로 번역 중이며, 최근에는 산스크리트어 티베트어 사전을 번역을 끝냈다. 스님의 탁마는 지금도 이어진다. 겨울이면 인도 바라나시로가 산스크리트어 경전 강의를 듣는다. 대승을 바르게 알려면 20년은 더 공부해야 한다며 웃는다.

[불교신문3402호/2018년6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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