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경硏 김경호 명예회장 ‘한국의 사경’ 특강

김경호 한국사경연구회 명예회장.

국가 왕실 귀족 고승들의
지원과 동참으로 寫經 탄생
찬란히 빛나는 문화유산
조명하고 계승, 발전시켜야

20∼25일 13회 전시회 열고
전통사경 30여 점 전시

불교국가였던 고려(918~1392)건국 1100주년을 맞아 한국사경연구회(회장 행오스님)가 지난 20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인사동 미술세계 갤러리 제1전시장(5층)에서 열세 번째 전시회를 열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불교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전통 사경을 연구하고 있는 한국사경연구회의 회원작품 30여 점이 전시됐다. 전시회 개막식이 열린 지난 20일에는 김경호 한국사경연구회 명예회장이 ‘한국의 사경-고려예술의 정수, 사경(寫經)’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열었다. 한국 전통사경의 역사를 조망한 특강내용을 요약했다.

“작제건이 바위 가에 길이 있음을 보고 그 길을 따라 1리쯤 갔다. 더 나아가니 또 하나의 바위가 있고, 그 위에 궁전이 있는데 문이 환히 열려 있었고 금자(金字)로 사경하는 곳이 있었다.” <고려사> ‘고려세계 4’

위와 같이 고려(918-1392)는 태조 왕건의 조부 작제건(作帝建)의 사경 공덕에 힘입어 건국되었음을 적시하고 있다. 이렇게 불교를 국가의 정신적 지주로 삼아 건국된 고려는 이후 약 500년 동안 수많은 불사를 했다. 그 가운데서도 사경 불사를 첫 번째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봉암사 정진대사원오탑비에는 태조가 대사에게 “대장경 1부를 다시 사경하여 양도(兩都-개경과 서경)에 안치하려는데 스님의 의향은 어떠하십니까?” 하고 묻자 “경전을 홍포한 인연으로 불은과 왕화가 길이 빛나고 천장지구(天長地久)와 같으며 그 복됨이 가이 없고 공명이 영원할 것입니다.”라고 답을 한 데서 알 수 있듯 고려 초부터 사경 불사가 국가와 왕실에 무한한 공덕이 됨을 강조하고 있다.

보원사 법인국사보승탑비에는 “혜종이 보위에 올라 3본 <화엄경> 사경을 마치고 대사를 초청하여 경을 강설하고 열람하는 한편 사경에 대한 경찬을 위해 널리 보게(寶偈)를 선양하였다” 하니 건국 초부터 왕이 직접 사경을 하고 사경의 선양에 심혈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봉암사 정진대사원오탑비문에는 또 “정종이 즉위한 후에는 정진대사가 직접 진본(晉本) <화엄경> 8질을 사경하여 송증送贈하였다”하니 국왕뿐만 아니라 국사, 왕사를 비롯한 고승대덕들 또한 사경에 적극 참여하고 선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영국사 원각국사비를 통해 대사가 의종 4년(1150)에 손수 금자 사경을 하였음을 알 수 있고 영통사 대각국사비를 통해서는 대사의 귀국(1086) 후 금서(金書) 대장경 3역본 180권을 송나라에 보내 성수(聖壽)를 빌었음을 알 수 있으며 정각승통(正覺僧統) 묘지명을 통해 대사가 사경하여 유전(流傳)시켰음을 알 수 있듯이 국사, 왕사, 승통 등 고승대덕들이 직접 사경을 하고 존숭하며 선양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사경 유물의 사성기를 통해 학문과 지위가 높은 승려들이 금자, 은자사경 사업에 참여하였음과 국가, 왕실, 권문세가 귀족들의 발원으로 사경이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에 무수히 등장하는 화엄경도량, 반야경도량, 인왕경도량, 금광명경도량, 장경도량, 경행(經行), 윤경(輪經), 전경(轉經), 금은자경의 경찬(慶讚) 등은 모두 사경과 관련된 행사라 할 수 있다. 이밖에도 역대 국왕들이 금자대장원(金字大藏院), 금경사(金經社), 금자원(金字院)에 행차하여 경찬하였으며 주요 사찰에 수없이 행차하여 대장경을 전경한 기록이 전한다.

1300년대 중반부터는 상지금자경(橡紙金字經, 종이에 도토리로 물들여 금가루로 쓴 경전)과 상지은자경이 출현하는데 이들 사경은 국립중앙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 호림박물관, 기림사성보박물관, 대흥사성보박물관, 동화사, 동국대학교박물관 등이 소장하고 있다.

이밖에도 <화엄경>, <법화경>, <금강경>, <수능엄경>, <정토삼부경>을 비롯한 여러 경전들이 감지, 상지, 백지에 금자로, 혹은 은자로, 혹은 묵서로 개별 사성되어 산질로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기록까지를 포함할 때 많게는 16회에 걸쳐 금은자 대장경이 사경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고, 여기에 원나라에서 고려로부터 가져간 금은자대장경과 관리를 파견하여 고려에서 제작해 간 금은자 대장경을 합하면 그 횟수는 더욱 늘어나며 고려의 사경승들이 원나라에 파견되어 제작해 준 사경까지를 합한다면 고려 왕조의 금은자 대장경의 사경 횟수는 더욱 늘어난다.

고려왕조를 한 마디로 '사경왕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야말로 국가와 왕실, 귀족, 고승대덕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수희동참의 바탕 위에서 불교 전래국 중 최고의 성취를 이룬 찬란했던 고려사경이 탄생했던 것이다.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고 선조들이 남긴 사경(寫經)이라는 찬란히 빛나는 문화유산을 조명하고 계승, 발전시켜야 하겠다.

지난 20일 김경호 명예회장의 특강을 경청하고 있는 대중들.
한국사경연구회장 행오스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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