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무원장 스님 표창 받은 공양주 조옥선 씨

총무원장 스님으로부터 표창을 받은 보문사 공양주 조옥선 씨.

부처님오신날 퇴임식 가져
“법명 현명, 이름도 있지만
황포 보살 불리는 게 친숙”

“황포 보살님~ 나 밥 좀 줘. 아, 배고파 죽겠어~” “보살님 바쁜가? 고추장에 밥 비벼 먹게 그릇 하나만 찾아주셔요” “황포 보살님, 오늘 떡 맛이 기가 막히네. 더 먹을 것 좀 남았는가?”

강화 보문사 수륙용왕대재가 열리던 지난 17일, 용왕재가 끝나자 허기를 채우기 위해 공양간으로 몰려든 사람들이 입에서 저마다 ‘황포 보살’ 찾는 소리가 나왔다. ‘밥 달라’는 소리가 이토록 친근하고 익숙할 수 있을까. 신도들 부름에 한달음 달려가는 ‘황포 보살’, 140cm 달하는 작은 키, 백발 성성한 머리 위로 위생모를 꾹 눌러쓴 31년차 공양주 조옥선(84) 씨다.

강화군에서 ‘조옥선’은 몰라도 ‘황포 보살’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황포리에 적을 두고 산 지 반백년이고 “강화를 떠난 지가 언젠지도 모르겠다”는 그녀의 말마따나 고향을 지키며 보문사에서 30년 간 하루도 빠짐없이 스님과 신도를 비롯해 사찰을 드나드는 객들 밥상을 차려온 그녀다. 그런 그녀가 지난 5월22일 불기 2562년 부처님오신날, 곁에서 한시도 떼놓지 않던 밥주걱을 내려놨다. 공양주 보살 퇴임식을 가진 것. 그녀는 이날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으로부터 표창도 받았다. “30년간 공양주 직을 맡아 사부대중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했다”는 이유다.

총무원장 스님으로부터 받은 표창을 두고 “염치없는 일”이라던 그녀가 보문사에 들어온 때는 1988년, 아버지 위패를 보문사에 모시면서부터다. “마을 처사님이 절에서 밥 짓는 일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 하더라고. 마침 아이들이 많이 컸을 때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뭐하는지도 잘 모르고 보문사에 들어왔지. 그게 벌써 30년이야. 내가 있을 때만 주지 스님이 18번이나 바뀌었다니까.”

30년 전 보문사에 들어 온 후 매일 절밥 짓는 재미로 살았다. 동이 채 트지 않은 매일 오전3시30분, 예불이 시작되면 부처님께 인사를 드린 후 공양간으로 향했다. 아침 공양을 준비하고 나면 사시마지를 올리는데, 마지를 올리고 잠시 짬을 낼라치면 신도들이 금방 몰렸다. 

3대 관음성지답게 평일엔 적어도 200명, 조금이라도 큰 행사가 있는 날이면 4000명이 몰린다고 하니, 20인분 대형 압력 밥솥 8개가 쉴 새 없이 일을 해도 감당 안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그런 날은 인근 마을 방앗간으로 가 밥을 쪄 나르기도 수십번. “김치에 나물 5개가 전부인 보문사 밥은 특별할 것 하나 없다”면서도 “밥 한 톨 안남기고 싹싹 그릇을 비우고들 간다”며 자부심 가득한 그녀다.

내 입도 아닌 남 입에 밥 들어가는 재미로 살았다는 황포 보살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보문사 공양주는 3~4명이 상주하며 근무하는데 휴일은 1주일 단 하루. 황포 보살은 그 하루도 반납했다. 귀하디 귀한 여름 휴가도 한번 안갔다. 

“스님과 신도 입에 밥이 들어가면 내 배가 불렀다”는 황포 보살 법명은 ‘현명’, 전 보문사 주지인 덕관스님으로부터 받은 이름이다. “현명이고, 조옥선이고, 사람들이 그냥 황포 보살이라 불러요. 나도 이젠 그게 편하기도 하고. 보문사 들어와 쌀 씻고 나물 볶으며 하루가, 아니 30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살았답니다. 그래도 병원 한번 안 갔을 정도로 건강해요. 내 나이 여든넷인데 말이에요. 그러니 이게 다 부처님공덕이지요.” 

퇴임 한 지 한 달, 공양주 소임에서 물러난 뒤에도 매일 새벽3시30분이면 눈이 절로 떠지고, 절에 오면 자기도 모르게 주방에 들어가 이일 저일 참견하고 다니니 큰 일 이라던 황포 보살 얼굴이 꼭 보문사 관세음보살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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