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원망 앞서 스스로 정진하는 자세 갖춰라”

 

전 국민ㆍ인류ㆍ중생의 불교화
신라불교 중흥 3대불사 발원
잔잔한 미소에 불심 가득히…

부처님말씀 우리말 번역 간절
용성 진종조사 ‘유지’ 되살려
신수대장경 영인 등 한창

우리 종단 사회적 국제적으로 
어려운 시기 놓여 있음 ‘자각’
사부대중이 오로지 화합·단결

부처님의 거룩하신 가르침 
실현위해 호법정신 길렀으면 

동헌태현(東軒太玄)스님은 평생 용성조사의 유지를 계승하고 종단을 반석에 올려놓기 위해 정진했다.

5월의 하늘은 맑고 푸르기만 하다. 경주에서 상경한 동헌 노스님을 뵈려 말죽거리에 있는 꽃마을의 우면산 대성사를 찾아갔을 때는 더할 수 없이 깨끗이 정돈된 도량이요. 만나는 스님마다 환한 얼굴이다. 노스님을 뵙는 순간 얼굴 가득히 넘쳐흐르는 잔잔한 미소에 불심이 동안(童顔)을 닮아 노안(老顔)에 어려 81세의 고령임을 잊게 하였다(대담=편집국장 향봉스님). 

- 노스님의 근황이 알고 싶은데요? 

“근황이랄 게 뭐 있어야 이야기하지, 그저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을 뿐이야. 건강은 이렇게 보는 대로지만 오래전부터 신경통이란 놈을 그림자처럼 끌고 다니지” 

찾아간 기자의 당돌한 질문에 시종미소로 답해주시며 차담이나 들으며 이야길 하란다. 스님께서는 경주 낭산의 중생사에 계시며 요즘에 와서도 조석예불에는 물론 대중울력에도 제일 먼저 앞장서신다는 도문스님의 말씀이시다. 

- 신라불교의 중흥에 대하여 한 말씀해주시지요? 

기자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스님께서는 매우 관심 깊으신 표정을 지으시며 옆에 있는 도문스님께 신라불교의 중흥불사에 대하여 대답을 일임하신다. 

“신라의 찬란했던 불교문화와 살아있는 조상들의 얼을 오늘에 이어받아 전 국민의 불교화, 전 인류의 불교화, 전 중생의 불교화의 3대 불교화를 발원하고 부처님 가르침으로 씨 뿌리고 가꾸어 오로지 불교정신으로 꽃 피우고 잎 길러 알찬 열매를 맺을 때까지 신심을 더욱 견고히 하고 대원력과 발원으로 마음이 청정하면 국토가 청정하다는 신념으로 이타행의 보살도를 구현하자는 것이 곧 신라불교의 중흥이요. 대작불사가 아니겠느냐?”는 도문스님의 열변이시다. 

그 누구의 추종도 불허하는 스님 특유의 설득력과 웅변술이 그대로 화엄법문이 되어 질문한 기자를 완전히 매료시키고도 남는다. 다시 동헌 노스님께 여쭈어 볼 차례이다. 

1976년5월9일자 불교신문 2면에 실린 동헌스님 인터뷰 기사.

- 종단의 3대사업에 대하여, 특히 역경불사에 대하여 관심이 깊으신 것을 알고 있는데요? 

“뭐 스님치고 어떤 스님이 나만큼 못한 스님이 있겠어요? 그저 종단의 장래를 위하여 도제양성의 인재양성불사가 제일이요 포교부재의 종교는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니까 포교전법하기 위해서는 부처님말씀을 알기 쉽게 우리말로 번역하여 일반대중에게 골고루 익히도록 하고픈 생각이 간절할 뿐이지.” 

노스님께서는 이미 신수대장경 불사의 인쇄검수비용으로 50년 동안 검소 절약하여 모아둔 200만원을 쾌히 희사하셨다는 도문스님의 귀띔이시다. 또한 노스님께는 혈육의 정을 나눈 형제분은 한분도 없는 독자로서 부모님 제사를 동헌 노스님의 생신일에 지내시는데 선망부모를 위하여 이미 오래전에 위패답(선망부모의 왕생극락을 발원하여 절에 들여놓은 논이나 밭)을 마련해 낭산 중생사(주지 보문스님)에 시주하셨다는 말씀이시다. 스님들은 본디 가난하기만 하여 모아둔 돈도 없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검소 절약하고 조금씩 저축하여 불우한 이웃을 돕고 진정한 의미의 불사에 아낌없이 희사하며 땅이라도 몇 평씩 마련하여 팔아만 치우는 그런 풍토에서 한 스님이 몇 십 평씩이라도 땅을 구해 불답(佛畓)으로 시주해주었으면 싶은 게 도문스님과 기자와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 부처님오신날의 공휴일 제정 2주년을 맞아 노스님께서 현 종단 및 사부대중에 하실 말씀이라도…

“종정 스님의 건강이 좋으시다니 매우 다행입니다. 우리 종단은 사회적이나 국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에 놓여 있음을 자각하여 타인을 원망하는 마음보다는 스스로 정진하는 자세와 기도드리는 마음으로 어른을 모실 줄 알고 화합이 제일임을 깨달아 종정 스님을 중심으로 사부대중이 오로지 화합·단결하여 부처님의 거룩하신 가르치심을 몸으로 실현시켜 민족과 나라를 위해 호법정신을 길렀으면 합니다.”

담담히 그러면서도 힘주어 말씀하시는 노스님의 티 없이 맑은 동안(童顔)엔 이미 서라벌 하늘에서 옮겨온 듯 청정무구(淸淨無垢)의 불심이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자비와 평화로움이 깃드신 얼굴에 미간 백호상이 있어 기자도 어린애인양 노스님 얼굴의 백호상(白毫相: 부처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으로 화두를 옮겨 보았다. 

“아! 이게 백호상이라니 원, 백호상이 아니라 흑호상(黑毫相)이지 -하하…” 마치 <전등록(傳燈錄)>의 한 구절을 읽고 있는 듯 대답에 마냥 즐거워 문득 창밖의 오월하늘을 바라다보니 가섭 이전의 염화미소(拈花微笑)가 또 한 송이 꽃이 되어 날아가고 있었다. 

우리나라 불교발상지로 알려진 경북 선산에 아도화상과 모례장자의 유적을 찾아 불국토 건설을 위하여 2000여 평을 마련했으며 서라벌 땅에 신사 중흥불사의 실현을 위해 수십만 평의 땅과 서울 말죽거리에도 불교장래의 크나큰 불사를 위하여 1만여 평의 땅을 불교재산으로 마련하신 것으로 알고 질문하였으나 노스님께서는 극구 모든 일이 원력대로 원만히 회향된 다음에 밝히기로 하자시며 미소로 답을 대신하신다. 

대중불교장학회(대표 김원일화)의 기금이 수 천 만원 마련되어 예금되어 있으나 1억원을 목표로 하여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동산의 성역화 성업에도 참여하실 뜻을 비치신다. 쌍용그룹 김미희(善生華)신도님과 쌍용그룹 회장인 김양원 거사의 지대한 원력과 발원에 의해 모든 불사가 순조롭게 진행 중이란다. 질당(帙當) 7만2000페이지요, 질당 111권인 <신수대장경>은 <고려팔만대장경> 이래 약 700년 만에 처음으로 나오는 역경사업의 대작불사에도 쌍용 가족 불자의 원력이었음을 옆에 계신 스님 한 분이 말씀해 주신다. 

- 노스님께서 가장 하시고 싶은 불사가 있으시면 신라불교중흥 다음으로 무얼 추진하고 계신지요? 

이번 또한 노스님께서는 자애로우신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시며 옆에 도문스님을 가리키신다. “스님께서는 불교한의원을 말씀하십니다. 머잖아 스님의 크신 뜻이 실현되리라 확신하며 스님의 뜻을 받들어 저희는 노력하고 정진하여 대발원, 대원력과 대신심의 환희심으로 용성스님의 유지(遺志)를 되살려 우리민족의 잘 살기 위한 길을 마련하고 불타의 가르치심으로 화합단결하여 불국토 건설에 매진할 뿐입니다.”

도문스님의 말씀을 뒤로하며 하산하는 기자의 발걸음보다도 노스님의 눈빛이 몇 걸음 앞서가며 우면산 대성사의 추녀 끝 풍경을 울리고 있었다. 오월의 하늘은 푸르고 노스님의 눈빛은 밝고…. 

■ 동헌스님은…
1896년 6월14일(음력) 충남 대덕군(현재 대전시 대덕구) 기성면 산직리에서 태어났다. 속명은 이완규(李完圭). 1903년부터 부여 서당에서 한학, 1910년까지 충남 연기 광동학교에서 신학문을 공부했다.
1918년 청나라 5대 순치황제의 출가시를 읽다가 발심, 서울 대각사에서 용성스님 은사로 사미계 수지하고, 교학을 연찬하는 한편, 1923년 용성스님에게 화두를 받고 금강산 장안사에서 정진했다. 1926년 4월 장성 백양사에서 금해(錦海) 율사에게 비구계를 수지하고, 오대산 상원사에서 정진했다. 1927년 용성스님을 모시고 함양 백운산에 화과원(華果院) 설립. 1930년 4월부터 선암사, 화엄사, 직지사, 대각사, 마하연, 범어사 등 제방 선원에서 후학을 지도하며 정진했다. 1941년부터 용성스님 시봉하다, 은사 입적 후 만주에서 독립운동, 1954년 불교정화운동에 이바지했다. 울산 문수사, 속초 신흥사, 김제 금산사, 전북종무원장, 부산 범어사, 경주 분황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1969년 대각회를 설립하고, 1971년 조계종 원로의원 추대, 1971년부터 공주 마곡사, 의성 고운사, 장성 백양사, 구례 화엄사 등 선원에서 조실로 납자를 지도했다. 1983년 8월4일(음력) 화엄사에서 법랍 66세 세수 88세로 입적했다.

[불교신문3401호/2018년6월20일자] 

 

정리=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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