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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내몰린 청소년 품어 안는 ‘영희네집’ 이야기■부산 유일 여자 중장기 청소년 쉼터
부산 금정구에 위치한 여자 중장기 청소년 쉼터 ‘영희네집’ 아이들이 생활하는 방. 여름을 맞아 새로 빨아 넣은 교복이 눈에 띈다.

서영이(가명·19)가 버림받은 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사이가 좋지 못했던 부모는 서영이를 텅 빈 집에 홀로 남기고 떠났다. 1주일 뒤 집으로 찾아온 외할머니 손에 이끌려 겨우 끼니는 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거처를 옮기며 고아 아닌 고아로 살던 서영이를 아빠가 다시 찾은 건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같이 살자’는 말에 흔쾌히 따라나섰지만 아르바이트로 새 가족들 월세를 홀로 감당해야 하는 고된 나날이 계속됐다. 하루가 다르게 계모 학대도 심해졌다. 스스로를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니 어쩔 수 없다” 말하던 서영이는 “태어나서 ‘영희네집’에서 먹고 자는 지금이 가장 편하다”고 말했다.

부산 금정구 남산역에 내려 주택단지를 한참 오르다보면 단출한 건물 하나가 나온다. 복작복작한 상가 건물 사이 큰길가 한쪽에 위치한 지하1층, 지상3층 규모 낡은 건물, 부산광역시 내 단 한 곳 뿐인 여자 중장기 청소년 쉼터 ‘영희네집’이다. 상가처럼 보이는 건물 뒤편 철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면 일반 가정집 현관문이 손님을 맞는다. 문을 통과하고 나서도 지도 교사들이 있는 사무실을 거쳐야 생활감이 묻어나는 공간과 만날 수 있다. 깜찍한 곰돌이 인형, 서툰 솜씨로 빨아 널어놓은 교복, 아기자기한 소품에 화장품까지, 영락없이 감수성 풍부한 10대 여학생 물건들이다.

지난 10일 찾아간 ‘영희네집’은 주말을 맞아 제각기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로 분주했다. 아르바이트 갈 준비로 솜털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에 분을 바르느라 여념 없는 스무살, 보드게임을 하며 언니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느라 웃음이 만발한 중학생, 그 와중에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문제집 풀기에 전념하는 고3까지, 청소년 특유의 생기가 넘쳤다.

보드게임에 열중하고 있던 지혜(가명·18)도 서영이와 함께 얼마 전 단기 쉼터에서 9개월을 지내다 영희네집으로 옮겨왔다. 맞는 건 이제 아무일도 아니라고 덤덤히 말하던 지혜가 집에서 견딜 수 없었던 건 불안과 초조. “엄마가 저를 정신병자라고 불렀거든요. 아침에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머리채를 잡아 바닥에 내던진 적도 있다니까요. 그렇게 몇 년을 살다 보니 그냥 집에 있기 싫었어요.” 하루에도 수십번, 언제 당할지 모르는 부모의 폭력 앞에 하루도 마음 편히 쉰 날 없었다던 지혜다.

서영이, 지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정의 아이들 8명이 영희네집에 산다. 가정 폭력을 견디다 못해 거리로 나온 아이들이다. 경제 사정이 충분한데도 부모가 양육을 포기했거나, 계부나 계모로부터 지속적으로 학대를 받은 아이도 있다. 

매일 폭력의 불안 속에 시달리던 아이들에게 영희네집은 단순히 먹고 자는 곳만이 아니다.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학에 진학 할 수 있을 때 까지, 최대 4년 동안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영희네집 사랑방 책상 위 모습. 화장을 하는 아이, 보드게임을 하는 아이 등 저마다 주말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나마 영희네집에 머무는 아이들은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집에 갈 수도 없고, 쉼터 존재를 모르거나 단체 생활을 견디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다음 선택지는 범죄다. 아이들은 휴대전화를 훔치고 성을 파는 식으로 생존을 모색한다. “가출한 여자아이들은 백이면 백 성매매 생각을 한번쯤 해 봤을 것”이라는 지혜 말처럼 가정 폭력을 버티다 못해 길거리로 내몰린 여자 아이들은 성매매에 쉽게 노출된다. 

먹을 것을 주고 숙소를 제공한다는 핑계로 따라간 곳에서 어플을 이용한 성매매 알선에 이용되기도 부지기수. ‘남자가 화장실 간 사이 지갑을 훔쳐오면 된다’는 말에 끌려 모텔까지 따라갔다가 성폭행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 상황이 오면 그냥 어쩔 수 없다”며 냉소를 짓는 아이들 얼굴이 쓰다. 

허일수 영희네집 소장은 “남자아이들에 비해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이 여의치 않은 여자아이들은 성매매 유혹에 빠지기 쉽다”며 “가출 청소년을 위한 쉼터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허 소장 말처럼 대도시 부산에도 청소년 쉼터는 단 6곳에 불과하다. 이 6곳을 보호 기간에 따라 일시, 당기, 중장기로 나누고 남자와 여자로 다시 구분하면 여자 아이들이 9개월 이상 머물 수 있는 쉼터는 결국 영희네집 단 한 곳 뿐이다.

사회복지법인 범어가 설립한 재단법인 범어청소년동네가 위탁해 2007년부터 운영해온 영희네집은 교과서에서 한번쯤 등장할 법한 ‘철수와 영희’라는 흔하디 흔한 이름에서 따왔다. 누구든 쉽게 올 수 있도록 친근함을 심어주기 위해서란다. 만9세부터 24세까지의 청소년이 머물 수 있고 기본 3년, 심의를 통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추가로 1년을 더해 최대 4년까지 머물 수 있다. 제한된 정원은 8명. 4개 방 2인1실로 직원 4명이 돌아가며 아이들과 함께 살림을 맡는다.

아이들 사정도 딱하지만 교사들 사정도 별반 다르진 않다. 365일 상주하며 아이들과 함께 먹고 자는 교사들에게 ‘근로시간 단축’은 꿈같은 일이다. 여성가족부와 부산시로부터 지원을 받는데 첩첩산중이라고 최근엔 그 지원 예산마저 줄었다. 범어사 금강암 감원 정만스님, 계명암 주지 선재스님 등이 지난 10년 동안 때마다 아이들에게 장학금과 용돈을 지원해주고 있지만 운영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12명 인원이 먹고 자며 교사 월급까지 부담하는 청소년 쉼터 한 해 예산은 1억5000여 만원. 얼마 전에는 미용학교에 진학한 한 아이를 위해 교사들이 없는 월급을 십시일반 모아 100만원 짜리 미용박스를 구입해 주기도 했다.

없이 살아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 외부 사업에 응모해 아이들이 원하는 가전제품을 구하고 방송댄스 강사를 초빙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온 허 소장은 “예산도 부족하지만 관심도 적은 것이 더 문제”라고 했다. “정해진 기한이 되면 강제퇴소를 하거나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이 안되도 다시 길가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담배 피는 거, 술 마시는 거는 당연히 안 되는 거 알겠는데, 염색은 좀 밝은색으로 하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단체생활 규칙이 너무 많아요. 그래도 엄마아빠랑 살던 것보단 백배 낫지만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선생님한테 말하면 돼요. 뭐든 만들어주시는데 그래도 가끔 먹고 싶은 건 제가 만들어먹어요”, 듣기 좋은 칭얼거림이 하루가 멀다하고 왕왕, 특수분장사, 웹툰작가, 공무원을 꿈꾸는 영희들이 모여 사는 곳, 영희네집이다.

가출 청소년을 위한 쉼터는...

가출 청소년이 가정이나 학교, 사회로 복귀해 생활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보호하며 상담, 주거, 학업, 자립 등을 지원하는 시설이다. 청소년기본법에 따라 만9~24세까지, 지역과 상관없이 원하는 쉼터를 골라 입소할 수 있다.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에 따르면 현재 전국 청소년 쉼터는 127곳 존재한다. 보호 기관과 제공하는 복지 서비스에 따라 △일시(24시간~7일, 조기 발견 및 일시 보호) △단기(3개월~9개월, 상담 및 사회 복귀 프로그램) △중장기(3년에서 1년 단위 연장, 자립 지원) 쉼터로 나뉜다. 127곳이라 하더라도 성별이나 보호 기간 등에 따라 제한을 받게 되면 막상 머물 곳은 많지 않다. 정해져 있는 보호 기간이 만료되면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하는 경우도 많다.

현재 불교계에서 운영하고 있는 쉼터는 경상남도중장기청소년쉼터(한가람청소년문화재단), 남양주일시청소년쉼터(파라미타청소년연합회), 부산광역시여자단기청소년쉼터(불국토청소년도량), 부산광역시여자중장기청소년쉼터(범어청소년동네), 아산옥련청소년쉼터(충남옥련청소년육성개발원) 등 채 10곳이 되지 않는다.

부산=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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