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재된 불심 깨운 ‘참 좋은 인연입니다’

김상훈 봉은사 신도회장은 신도회장을 맡고 난 뒤 ‘나만의 불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불교를 알게 됐다며 평생 맡은 최고의 직책이라고 말했다.

신심 깊은 조부모 손 잡고
도리사 다니며 불심 키워
고향 떠나도 도리사 찾아가

미국생활 중 교회 나갔다가
‘마음빚’ 신도회장 거절못해
직책 수행하며 불교에 눈떠

“지금 하는 봉은사 신도회장
평생 맡은 직책 중에 최고”

할머니, 할아버지 손을 잡고 가던 절은 걸어서 40리길이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할머니는 흙먼지 수북한 신작로와 굽이굽이 산길을 걸으면서도 손자의 손을 놓지 않았다. 골을 따라 걷다가 돌탑을 쌓고 정성껏 소원을 빌라고 했다. 몇 달 전부터 비린 음식은 일체 하지 않았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구미 도리사였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정성스레 공양물을 올리고 불공을 올렸다. 어린 시절이지만 불심 깊은 조부모의 모습은 너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할머니의 그 불심을 5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어렸을적 일들이 또렷이 뇌리에 남아 있는 이유는 그 사람의 가치관을 형성한 주요한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훗날 고향을 떠나 살면서도 그 절이 그리웠던 그 아이는 힘든 일이 있을 때, 마음이 헛헛할 때, 직원들과 성취감을 나누었을 때, 인생에서 쓴맛, 단맛을 느낄 때마다 바로 그 절, 도리사를 찾았다. 김상훈 서울 봉은사 신도회장에게 부처님은 조부모에게 배운 것처럼 가장 먼저 찾아가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봉은사와의 인연은 무척 오래됐다. 젊은 시절, 운수업에 첫발을 내딛으며 사업을 시작한 뒤 자리를 잡은 곳이 서울 개포동이었다. 봉은사 앞에 한국종합무역센터가 건립됐을 때 무역회관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지척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봉은사를 찾았다. 그렇다고 봉은사를 원찰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저 절이 좋아서 찾아와 참배하고 가는 정도여서 신도라고 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신도는 아니었다. 조용히 절에 다녀가길 반복하던 김 회장을 붙잡은건 한원덕 전임 신도회장이었다. 건강 때문에 신도회장을 계속할 수 없어 원명스님에게 김 회장을 추천한 것이다.

그가 사찰에서 신도회장을 맡은 것은 처음이다. 10년 넘게 미국에서 살적에는 가족과 함께 교회에 나가기도 했다. 교포사회에서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을 정도의 환경이었다. 하지만 늘 마음의 빚으로 남았다. 마음의 고향 같은 불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데 감사함을 느꼈다. 주지 원명스님으로부터 신도회장 제안을 받았을 때 주저없이 맡겠다고 나선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김상훈 회장은 “제가 신도회장을 맡을 만큼 도량이 넓지 않은데 마음의 빚이 있다는 것을 마치 알기라도 한 것처럼 주지 원명스님이 제안을 해왔다”며 “부처님이 이 곳으로 이끈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상훈 봉은사 신도회장.

김상훈 회장은 법당에서 부처님과 마음의 대화를 즐겼다.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자로서 직원들 급여 밀리지 않고 제때 줄 수 있길 부처님에게 길을 묻곤 했다. 구미에 있는 도리사까지 찾아간 적도 수없이 많았다.

패기가 넘쳐 흘렀다. 처음 회사를 차렸을 때 이름 없고 몇 명 안되는 회사에 와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나와 같이 간다면 이력서에 경력 인정 받을 회사, 이름만 대도 사람들이 다 아는 회사로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일했다. 그 회사가 석유저장업과 특수운송업을 하는 주식회사 동특이다. 김상훈 회장은 1981년부터 동특 대표이사 회장을 맡아왔다. 2001년 코엔펙 회장을 거쳐 지금은 합성수지 제조회사인 호만테크 회장을 맡고 있지만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

시련도 있었다. IMF사태의 직격탄을 맞고 회사가 분사되는 아픔을 겪었고, 경영 일선에서도 잠시 물러났다. 예상치 않았던 배신은 김 회장에게 큰 아픔으로 남아 있다. 시련은 인과응보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김 회장은 이를 굳이 입 밖에 내려하지 않았다. 봉은사에서 ‘참 좋은 인연입니다’라는 문구를 접하고 삶이 뒤바꼈다. 무명에 가려져 있던 불성이 드러나듯 불심이 깨어났다. 그는 “가장 믿었던 30년지기로부터 배신을 당했을 때 치밀어오르는 분노는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면서 “부처님 앞에서 마른 눈물을 많이 흘렸는데, ‘참 좋은 인연입니다’라는 문구를 접하고 업장이 모두 녹아내리는 듯 했다”고 고백했다.

지난 3월 봉은사 신도회장을 맡고 적지않은 변화가 있었다. 다른 사찰과 달리 봉은사 신도회장은 상근하다시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사찰에서 신도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찰 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회사일이나 사업, 정계에서 활동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시간이다.

그동안 겉으로 접했던 불교와 직접 안으로 들어와 겪는 불교는 너무나 달랐다. 그동안 절에 가는 것은 내 기도를 위한 것이었는데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며 신도회장을 잘 맡은 것 같다고 했다. 김 회장은 “절에 다니는 것이 내 기도라고 생각했던 기존의 생각이 참으로 작은 그릇이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됐다”며 “내가 평생 맡은 직책 중에 신도회장이 제일 좋은 직책”이라고 했다.

신도회장이라는 직분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의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요즘은 직접 붓글씨로 쓴 ‘하심(下心)’을 책상에 두고 생활의 가르침으로 되새기고 있다. 김 회장은 “쉬운 단어이지만 실천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가르침”이라며 “요즘은 지역어르신 나눔활동이나 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화두처럼 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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