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북미 정상회담 목전
70년만의 한반도평화 기대
평화 중요 통일 과업이지만
자유 민주 원칙 가치 지켜야

요즈음 한반도 상황을 보고 있으면 의사결정 모형 중 하나인 ‘쓰레기통 모형’(garbage can model)이 떠오른다. 쓰레기통 모형은 문제와 해결책과 의사결정 참여자가 무수히 변하고 흐르는데도 주어진 여건에서 의사결정 기회는 만나지 못하다가 예기치 않은 상황에 의해 합리적이라 할 수 없는 우연에 의해 또는 독특한 참여자들이 특정한 공간에서 각자 자신의 이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결정이 이루어진다는 이론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 편에 서서 망국의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나름대로 역할을 했음에도 패전국인 일본이 아니라 우리가 분단의 고통을 떠안은 세월이 70년에 이른다. 오랜 세월 분단의 비극을 떠안고 미 중 러 일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남북이 긴장하고 갈등하며 흘러왔다. 그 과정에서 분단을 해소할 결정적 기회도 없지 않았다. 6·25 전쟁은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민족사의 불행이었지만 중국의 개입이 없었다면 당시 군사적 힘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통일 까지는 아니라해도 남북 간에 상호 왕래하며 적대적 관계는 청산할 수 있었던 크고 작은 해결책들도 있었다. 

문제가 발생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도 함께 드러나는 일련의 흐름 속에 참여자 또는 결정 주체들도 등장했다가 사라졌다. 북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우리 측의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등이 그 참여자들이다. 분단의 고통 속에서도 문제와 해결책과 참여자들이 등장하는 이러한 흐름이 계속 이어져왔지만 문제해결의 결정적 계기와 기회를 맞지 못한 것은 대단히 안타깝다. 

그런데 문제와 대안, 독특한 결정자 그리고 타이밍이 우연히 만나서 한반도의 운명이 드라마처럼 숨가쁘게 전개되는 현 상황은 현실이 아니라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어리둥절하면서 불안하다. 사방이 어두운 이런 때 일수록 우리는 삼불선화(三佛禪話) 조고각하(照顧脚下)의 자세로 더욱더 냉철하게 자신의 위치와 지켜야할 가치를 바로 잡고 올바른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 

지켜야할 가치와 올바른 방향은 다름아닌 자유민주주의다. 한반도 평화가 중요하고 통일이 우리 민족의 과업이라 할지라도 자유민주주의 원칙과 기준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의 존립근거다. 19세기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인간의 개별성이 사라지는 바로 그때가 인류의 진보가 중단되는 순간이라고 했다. 우리 민족의 번영과 발전은 국민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사상과 언론의 자유, 취향과 탐구를 위한 행동의 자유, 진리와 결사의 자유가 보장될 때 가능하다. 한반도 평화를 통해 이루고자하는 통일된 나라도 곧 그런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이어야 한다.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은 ‘CVID’가 아니라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보유국’의 지위를 얻고자 한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이런 지적이 나올 때 마다 걱정이 앞서고 합리적이라기보다 자기이해에 충실한 트럼프와 김정은 이지만 바람직한 의사결정을 도출하기를 절실히 기대한다. 이 땅에 발 딛고 살아왔고 또 후손들이 살아가야하는 땅이기에 하루에도 몇 번 씩 감정이 오르내리는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으리라. 그러므로 자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가치를 지켜내야 할 중차대한 시기에 여당의 허황한 자화자찬도 야당의 근거 없는 딴지도 국가의 존망 앞에 큰 죄를 짓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불교신문3399호/2018년6월13일자]

하복동 논설위원·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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