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썩은 이 밖에 보여줄 게 없는 
돌이켜 자꾸만 헝클어지는 
시간 속의 나를 뉘어 놓고 
아주 맑은 손끝으로 사랑 대신 
내 삭은 사랑니를 뽑는 그 여학생

담담한 표정의 그 여학생
아니 그 원장은 
내 주저의 근원을 모른다 

“후회스러운 어느 지점으로 돌아가 거기 못다 한 어떤 몸짓 하나라도 풀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마음만 졸인 사랑 같은 것, 생각이 행동 뒤에서 자꾸 꾸물거리기만 했던 것…. 그러면 나는 거기서부터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냈을까?”

작년에 낸 시집 <어쩌다 침착하게 예쁜 한국어>에 실은 ‘그 여학생’이라는 제목의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돌아가 거기 못다 한 어떤 몸짓 하나라도 풀어보고 싶을 때’란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과는 조금 다르다. 가지 않았던 다른 길을 가보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갔으되 자신 없었던 내 소심함에 대한 후회이다. 

나는 대체로 무슨 일에건 자신감보다 주저(躊躇)가 빨랐다. 가만 돌이켜보니 꽤 괜찮은 스펙을 쌓아놓고도 그것이 내게 상당한 무기라는 사실을 몰랐다. 좋게 말하면 겸손이지만, 실은 손에 든 떡이 제 것인 줄 몰랐다는 무지와 무감이었다. 기적이라도 일어나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잽싸게 자세를 바꿔 자신 있게 살 수 있을까.

‘그 여학생’이라는 시를 쓸 때, 아픈 이를 참다 참다 찾아간 치과에서 나는 똑같은 생각을 했다. 원장은 ‘짝사랑했던 여학생/ 치대에 다니던 여학생/ 수석 졸업했다던 여학생/ 지금은 내가 사는 가까운 동네에 개업해 있는 여학생’이다. 시적 효과를 노려서 이제 와 짝사랑이라 썼지, 내 고질적인 주저의 기억 속에 있을 뿐인 사람이다. 친한 후배가 그 여학생의 치대 동기생이었는데, 가끔 학교 앞 주점에서 동석하는 정도였다. 늘 수석인 그 여학생과 달리 내 후배는 방학마다 늘 재시(再試)를 치러야 했다. 재시가 끝날 즈음 방학도 끝났다. 

일등이라고 고민이 없을까. 주점 한 귀퉁이에서 꼴찌는 일등의 상담사였다. 눈물겨운 장면의 그림자처럼 나는 그 옆에 앉아 있었다. 짝사랑이라도 해볼까 말까 주저하면서.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겨울이었으니, 졸업하고 못 만난 지 30여 년이 흘렀다. 나의 이는 수명을 다해가고, 남은 것은 통증밖에 없는데, 가까운 동네에 개업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웠으나, ‘정말 썩은 이만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이의 통증을 넘어서는 수치스런 고통이다. 그러나 치통의 극에 달해 본 사람은 알리라. 육신의 통증이 정신의 고통을 끝내 이기고야 만다는 사실을. 

“사박사박 눈발 날리는 네거리 지나/ 그 해 겨울처럼/품속의 편지는 어느새 내 가슴 속 어디론가 사라지고 마는데/ 밤새 치통에 시달리다 찾아가는/ 짝사랑했던 여학생”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30여 년 전 졸업식 날도 눈발이 흩날렸던가. 졸업 축하하는 편지를 써놓고 전하지 못했던 기억은 아스라하다. “이제 썩은 이 밖에 보여줄 게 없는/ 돌이켜 자꾸만 헝클어지는 시간 속의 나를 뉘어 놓고/ 아주 맑은 손끝으로/사랑 대신 내 삭은 사랑니를 뽑는/ 그 여학생.”

담담한 표정의 그 여학생, 아니 원장은 내 주저의 근원을 모른다. 한 사람의 환자로 나를 대하며, 수석 졸업의 솜씨로 깔끔히 내 사랑니를 뽑을 따름이다. 썩은 이를 보이기가 수치스러운 고통이라고 생각한 것은 온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짝사랑도 아니고 주저하는 사랑에 지나지 않았으나, 마지막 사랑니를 뽑고 나면 이제 그마저 끝이다. 병원을 나선 길거리에 눈발은 좀 더 거세졌다.  

[불교신문3399호/2018년6월13일자]

고운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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