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들이 ‘동그라미(○, 圓相)’에 담으려 했던 의미는 …

마음 증득…‘깨달음’만으로 
성불이 완성되는 게 아니라 
실천, 교화 등을 함으로써
‘진정한 성불’ 된다는 주장

당나라 앙산혜적 법통 계승
위앙종 일원상 신라에 전해
견성성불 원리 3단계 17개
원상으로 표현…공감 부족 

고려 정각국사 ‘종문원상집’ 
편찬으로 선풍 드러나면서
서산 경허 숭산스님 등 거쳐
외국인 납자들 선방에 등장

순지화상에게 법을 전해 준 앙산혜적 선사 사리탑(중국 강서성 의춘 서은사).

순지(順之)화상의 행적은 <조당집>, <경덕전등록> 등 여러 중국 자료에 전한다. 생몰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략 전하는 바에 의하면, 평안도 패강 출신으로 속성은 박 씨이고, 지방의 호족 출신이다. 서운사화상(瑞雲寺和尙)이라고도 한다. 순지는 20세 무렵, 황해북도 개성 오관산(五冠山) 오관사(五冠寺)에서 삭발하고 속리산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858년 헌안왕 때 당나라에 들어가 바로 강서(江西)에 있는 애주(袁州) 앙산 혜적(仰山慧寂, 803~887년)에게 배우고 그의 법통을 이어받았다. 처음 앙산혜적과 순지가 만나 대화를 나누었는데, 조당집 제20권에서는 “마치 안회가 공자 곁에 있는 듯하였고, 가섭 존자가 부처님의 곁에 있는 듯하였다”고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 앙산은 어떤 선사인가? 선종의 5가 가운데 가장 먼저 흥기한 종파가 위앙종이다. 스승 위산(潙山)의 ‘위’자와 앙산(仰山)의 ‘앙’자를 따서 ‘위앙종(潙仰宗)’이라고 했다. 법맥은 마조, 백장, 위산, 앙산으로 이어진다. 앙산은 광동성(廣東省) 소관(韶關) 사람으로 6조 혜능을 흠모해 제자들에게 ‘조계의 심지’로 지도했다. 앙산은 당시 ‘선종 7조’로 불리었으며, ‘고불이 출현했다’고 추앙을 받았던 인물이다.

십우도의 여덟 번째 그림 인우구망(人牛俱忘), 원상으로 표현한 법당외벽 벽화.

위앙종의 사상은 시절인연을 자각하는 주체인 불성(佛性)을 여여불(如如佛)이라는 선사상을 내세운다. 또 위앙종의 독특한 사상은 원상(圓相)이라는 선풍을 전개했다. 원상(○)을 그려서 사람에게 보이며, 그 법의 체용을 나타내어 그것을 증득해 알고 수행해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는 방편이다. 위앙종에서는 제자들을 제접할 때, 일원상을 사용했다.

최초로 위앙종 사상을 공부하고 법맥을 받은 성주산문의 대통(大通, 816~883년, 무염의 제자)은 선풍을 전개하거나 활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표상현법과 삼편성불론 

순지는 앙산의 법을 받고, 874년 16년 만에 신라로 돌아왔다.

순지는 원창왕후(元昌王后)와 그 아들 위무대왕(威武大王, 태조의 아버지)이 시주해 오관산에 산문을 열었다. 선사는 헌강왕과 경문왕, 진성여왕 등의 부름을 받아 경주를 방문했으며 그곳에서 65세에 입적했다. 호는 요오(了悟)이며, 탑명은 진원(眞原)이다. 오관산문의 순지가 고대 사회에서 선풍을 펼친 기간은 길지 않지만, 그의 선사상은 고대 우리나라 산문의 큰 특징이다.

조당집에 전하는 순지의 법문에는 표상현법(表相現法) 1편, ‘삼편성불론(三遍成佛論)’ 1편이다. 먼저 일원상(一圓相)에 대해 살펴보자. 일원상은 봉림산문의 선사상에서 한번 거론했던 내용이다. 일원상의 근본 의미는 어디에도 편착되거나 모자람이 없는 것으로, 불성(佛性)의 근본 자리를 상징하거나 무위(無爲) 사상을 표현한다.

하나의 둥근 원(○)을 그린 모습이며, 모자라는 것도 남는 것도 없는 완전하고 원만한 의미를 나타낸다. 일원상은 우주만상의 근원을 가리키는데, 완전무결하고 위대한 작용을 하는 우주의 모습을 원으로 표현한 것이다.

요오화상 진원탑비 탁본(황해북도 개풍 서운사지). 요오(了悟)는 순지화상의 호.

실은 원상은 6조 혜능의 제자인 남양혜충(南陽慧忠, ?~775년)이 처음 그렸다.

제자 탐원응진은 원상의 참뜻을 연구한 사람인데, 위앙종의 앙산혜적에게 이를 전했다. 신라의 순지는 앙산으로부터 원상 법문을 전해 받은 뒤 표상현법으로 정리했다. 표상현법은 견성성불(見性成佛)의 단계와 원리를 원상으로 표현한 것으로 3단계(四對八相, 兩對四相, 四對五相)인 총 17개의 원상으로 나타내고 있다. 즉 순지는 독창적으로 원상에 다양한 변화를 부여하여 원상으로 법을 나투는 선법을 펼쳤다.

조당집에 의하면, “선사는 원상을 그려 법을 나타내 학인들에게 진리를 증득함에 빠르고 더딤이 있음을 제시했는데, 사대(四對)와 팔상(八相)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17개 원상(○)은 각기 그 법을 표한 비밀한 뜻이 있으나, 너무 인위적인 것으로서 오히려 실질적인 법어나 선구(禪句)만큼 사람에게 감명을 주지 못해서인지 널리 일반화되어 전해지지 않았다. 다음은 삼편성불론(三篇成佛論)이다.

삼편성불론이란 증리성불(證理成佛), 행만성불(行滿成佛), 시현성불(示顯成佛)이다. 증리는 깨달음, 행만은 실천, 시현은 교화를 말한다. 증리성불이란 어떤 수행자가 선지식 법문을 듣고, 곧 자기 스스로 본성(자성)을 구족하고 있음을 알고, 깨닫는 돈오적인 성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행만성불은 비록 자신이 불성을 구족하고 있음을 알고, 깨달았을지라도 보현보살이 중생을 위해 서원을 세우고, 자비를 행한 것처럼 대자대비가 원만해진 것을 말한다. 시현성불은 지혜와 자비를 완전히 갖춘 상태로 열반한 뒤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도솔천으로부터 내려와 태(胎)에 들어 열반에 들기까지 8상(八相), 곧 중생에서부터 부처에 이르는 모습 그대로를 나타내 보인 것이다.

곧 한 생각 돌이켜 자기의 마음 바탕에 본래 한 물건도 없음을 확연히 깨닫는 경지가 증리성불 단계이고, 이미 진리를 터득했으나 보현행원에 따라 보살의 길을 널리 실천하여 자비와 지혜가 원만하게 되는 경지가 행만성불의 단계이다. 마지막으로 깨달음의 실천을 통해 성불하였으니 이제는 중생을 위해 교화하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 경지가 시현성불의 단계이다. 세 성불론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로 연결되어 있으며, 자각각타(自覺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이 되는 셈이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항목이 세 번째 시현성불이다. 곧 한 생각 돌이켜 자기의 마음 바탕에 본래 한 물건도 없음을 확연히 깨닫는 증리성불의 과정, 이미 진리를 터득했으나 보현행원에 따라 보살의 길을 널리 실천하여 자비와 지혜가 원만하게 되는 행만성불 과정, 깨달음의 실천을 통해 성불하고 나서 이제 중생을 위해 성불하고 교화하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 시현성불이 그 과정이다.

즉 마음을 증득하면, 그 깨달음만으로 성불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다음의 실천, 교화 등을 함으로서 진정한 성불이 된다는 것이다.

교선융합 선사상 정립

순지는 선사상 체계를 일원화했으며, 그의 성불론은 교선융합(敎禪融合)적인 면이 두드러진다.

즉 순지는 교학적인 받침을 토대로 한 바탕 위에 선사상을 정립했다고 볼 수 있다. 신라 때 개산조(開山祖)들은 선(禪)을 중심으로 선 우위를 강조한 선사도 있고, 선교일치를 주장한 선사도 있지만, 순지의 성불론은 선교의 융합적인 면이 드러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 순지가 전개한 일원상 선풍은 일관성이 결여되어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거나 후대 보편화되지 못했다.

그런데 고려 시대, 원상을 주목한 선사가 있었다. 순지의 표상현법이 고려 시대 정각국사 지겸(志謙, 1145~1229년)에 의해 다시 한번 드러났다. 지겸이 조당집에 전하는 ‘오관산서운사장’을 <종문원상집(宗門圓相集)>에 그대로 옮겨와 위앙종의 선풍을 선양했다. 지겸이 활동할 당시는 보조 지눌(1158~1210년)과 진각 혜심(1178∼1234년)의 간화선이 풍미할 때이다. 바로 이런 때, 지겸이 ‘종문원상집’을 편찬해 위앙종 선풍을 드러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한국의 선사상이라고 본다.

순지화상의 원상을 본받아 고려후기 지겸이 원상을 모아 엮은 책 <종문원상집(宗門圓相集)>. 보물 888호다.

지겸이 순지의 표상현법을 가일층 확대시킨 점도 있지만 지눌의 선사상에 대한 일종의 반발이 담겨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위앙종의 일원상에 관한 서지학적 자료는 순지 화상과 지겸국사의 ‘종문원상집’뿐이다. 종문원상집은 당대의 남양 혜충부터 북송의 목암 선경에 이르는 46명의 조사들에 의한 원상의 기연을 모은 것이다. 이 모음집은 지겸이 중국 문헌에서 원상에 얽힌 기연을 발췌한 것이므로 지겸의 사상이 직접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지겸의 사상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원상이 활용된 경우를 보자. <금강경>의 5가해(五家解) 가운데 한분인 송대 야부 도천도 금강경 제목을 소개하면서 원을 그렸고, 야부송에는 원상이 세 번 등장한다. 원상은 한국 선사들의 법문이나 열반송에 드러나기도 한다. 조선시대 서산 휴정(1520~1604년)은 <선가귀감>의 앞머리에서 원상을 표시하고 해설하기도 했다. 원상을 통해 깨달음의 선적 경지를 드러낸 선사가 구한말 경허(1849∼1912년)이다.

경허 선사가 입적할 무렵, 붓으로 글씨가 아닌 동그라미(○)를 그리고, 게송을 읊기를 “마음 달이 홀로 둥그니, 그 빛 만상을 삼켰도다. 빛과 경계를 모두 잊으니, 다시 이 무슨 물건인가?(心月孤圓 光呑萬像 光境俱忘 復是何物)”라고 했다. 한편 현대의 선사 숭산(1927~2004년)은 국제포교에 앞장섰던 분인데, 서양의 제자들에게 둥근 원을 가지고 선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이런 영향으로 숭산 입적 후 어떤 제자들은 자국의 선원 선방에 원상을 그려 놓기도 했다. 

[불교신문3398호/2018년6월9일자] 

정운스님 동국대 선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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